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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Oct 18. 2023

누가 슬픔을 보았나요?

13일차

 본인이 입대한 경험이 있거나 지인을 군대에 보낸 경험이 있다면 훈련소에서 찍은 독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진 속 인물은 아직은 빳빳해서 잘 접히지 않는 새 베레모를 쓰고 어색한 경례를 하며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결의에 찬 것인지 불만이 있는 것인지 모를 애매모호,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살이 빠지긴 했지만 아직 입대 전에 찌워온 살이 남아 둥근 턱선도 특징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전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 왜 하나같이 애매한 사진들을 찍어 오는지를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관람할 티켓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방법은 단 하나, 직접 입대하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 티켓팅에 성공해 천명이 넘는 인원이 하루만에 사진 한장씩을 남기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관람했다. 나도 그 중의 하나가 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아무리 포장해도 놀이공원 가듯 설레는 감정이 글에 담기지 않는 것은 실제로 일말의 설레는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모든 훈련병이 생활복이 아닌 군복을 입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훈련용 군복이 아닌 새 군복을 꺼내 입었다. 훈련소에는 여러기수에 걸쳐 공용으로 사용하는 훈련용 군복이 있다. 전역한 사람들이 반납한 군복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훈련을 받다 보면 옷이 찢어지거나 상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훈련소에서는 훈련용 군복을 입고 생활하고, 보급받은 새 군복은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에 가기 전까지 아껴둔다. 오늘은 사진을 찍는 날이기에 특별히 아껴둔 새 옷 꺼내듯 새 군복을 꺼내 입었다.


 동기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바빴다. 다 똑같아보이는 군복을 입고는 서로 각을 살려주겠다고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모습이 보기에 흐뭇했다. 특별히 멋져 보일 마음은 없었지만 (실은 멋져 보일 방법도 없었다.) 깔끔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기에 나도 옷깃과 바지 밑단을 신경쓰며 계속 만졌다. 오늘 찍은 사진은 훈련병 카페에 개시될 사진이었고 현상되면 가족들과 여자친구에게 편지로도 보내줄 사진이었다. 최대한 씩씩하게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나는 사진을 자주 찍는 사람은 아니지만 찍을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사회에 있을 때 친구들과 이미지 사진을 찍거나 졸업사진 등의 촬영이 있을 때면 몇 주 전부터 고민에 빠지곤 했다. 무슨 옷을 입을지 어떤 헤어스타일을 할지 고민하고, 밀가루 음식을 줄이며 피부 관리도 열심히 했었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는 체중을 7kg가까이 감량했을 정도로 열성을 기울였다. 그러나 훈련소에서 찍는 사진에는 노력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은 모두 통일이니 나의 개성을 담을 방법은 없었다. 사회에서와 달리 훈련소에서 찍는 사진은 나를 위해서 보다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찍는 사진에 가까웠다.


 수많은 인원이 하루만에 사진을 찍을 방법은 한 사람당 촬영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동아시아, 2013)이 떠올랐다. 책에는 산타클로스가 어떻게 하루만에 모든 선물을 나누어주는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담겨있었다. 산타클로스는 1억 6천만kg의 선물을 106만 마리의 사슴이 이끄는 썰매에 싣고 0.0007초만에 한 가정에 선물을 나르는 초인적 인물이었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와 사진을 찍고, 울음을 참으며 보낸 한 해를 자랑도 하고 싶었겠지만, 산타에게는 산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가끔 정체를 들켰던 곳은 기록을 단축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들린 마지막 가정이었으리라. 훈련소에 방문한 사진사는 산타의 먼 후손정도 되는 사람 같았다. 야외 개인사진, 실내 개인사진, 생활관 단체사진을 한장씩 촬영했는데 개인사진의 경우 채 3초도 걸리지 않아 촬영이 끝났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군대에서 잘 지내는 모습이 뭘까를 계속 고민했다. 군대는 어리버리한 신병에게 가장 괴로운 장소이기 때문에 일단 어리버리해보이면 안됐다. 잘못 접힌 곳 없이 군복을 반듯하게 입는 것이 첫번째였다. 군화 끈을 바지 밑단 아래로 단정히 집어넣고 옷깃이 잘 졉혔는지를 여러번 확인했다. 두번째는 각잡힌 베레모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 베레모는 잘 접히지 않고 어떻게 해도 끝이 붕 떠서 여러번 노력하다가 포기해야했다. 마지막은 앙 다문 입과 결의에 찬 표정, 각진 경례 자세였다. 어느정도 연습으로 실현 가능한 부분이었다. 앞 뒤로 선 동기들과 서로 경례자세를 봐주며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촬영은 훈련병이 바닥에 테이프로 표시된 선 앞에 서서 경례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사진사가 알아서 찍어주는 방식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기에 미리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지만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거기에 서.”, “다음” 이 두마디가 빠르게 스쳐가는동안 나는 머릿 속이 하얘져서 어정쩡하게 손을 올렸다가 내리며 촬영을 마쳤다. 다른 동기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촬영 후에는 다들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애매하고 엉거주춤한 사진은 이렇게 촬영된 것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나 그정도 표정밖에 짓지 못했을 훈련병들을 이해해달라. 사실 그 표정 안에는 멋져보이고 싶은 자기애 외에도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노력, 나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 그리움, 그리고 슬픔이 모두 들어 있다.    


 아래는 영국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Christina Rossetti, 1830~1894) 의 시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Who has seen the wind?)의 전문을 번역한 것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죠
그러나 나뭇잎 매달려 떨고 있을 때
바람은 사이로 지나가고 있지요

누가 바람을 보았나요?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죠
그러나 나무들 고개 숙일 때
바람은 곁을 스쳐가고 있지요


 아주 오래 전에 쓰여진, 수풀 우거진 곳에 바람이 부는 풍경을 묘사한 시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나무의 움직임이 잘 드러나 있다. 오래된 시인만큼 다양한 곳에서 반복적으로 봤을 표현이라 큰 감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시를 여전히 읽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는 일에 대한 시의 태도 문이다.


 바람은 당신도 나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뭇잎이 매달려 떠는 것을 보며, 나무들이 고개 숙이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안다. 시는 어떤 순간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지 말해준다. 바로 우리가 시선을 주고 마음을 줄 때이다. 나뭇잎이 떠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무들 고개 숙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을 때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런데 하필 바람은 왜 나뭇잎을 떨게하고 나무들을 고개 숙이게 했을까? 나에게는 바람이 슬픔으로 읽혔다. "누가 슬픔을 보았나요?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죠. 그러나 나눠가진 마음 붙잡고 떨고 있을 때, 슬픔은 사이로 지나가고 있지요." 어쩌면 시는 이런 말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오늘 슬픔은 훈련병들의 경직되어 엉거주춤한 자세와 경직된 표정을 지나고 있었다. 웃어 넘기거나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사진 한장에서 당신은,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느꼈을까? 나는 바람과 햇살과 나를 스쳐가는 많은 것들에 집중하며 다음 차례로 사진을 찍는 훈련병들의 표졍을 가만히 살폈다. 저 자리에서 내가 느낀 것 이상으로, 나보다 더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요즘은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모르고 살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에는 이유가 없어 보이는 들이 참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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