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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 Oct 18. 2023

슬픔 되찾기 : 139번 훈련병에게

14일차

 139번은 처음 봤을때부터 걱정이 되는 훈련병이었다. 그는 말수가 없고 행동이 굼떴는데 이는 훈련소에서 득이 될 일 없는 특성이었다. 그의 자리는 내가 있는 이층침대에서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특별히 시선을 둘 데가 없어 고개를 떨구면 보이는 곳이었다. 8평이 채 안되는 곳에 16명의 인원이 층을 높여가며 생활하는 생활관에 유일하게 보장된 개인공간인 침상을 마음대로 본 것은 미안하지만, 139번의 행동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들이 많았다. 이미 개워둔 옷을 꺼내 다시 만지거나, 모포 위에 붙은 먼지를 몇십분이고 하나하나 떼어내고 있는 모습이 그랬다. 그렇다고 정리를 잘 하는 타입도 아니라서 자리는 대체로 지저분했다.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가만히 앉아있는 때도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139번은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기본 보급품을 받는 기간에는 자기가 못 받은 물품을 점검하지 않다가 한참 후에 알아채서 조교에게 혼이 났다. 다른 사람 몫의 보급품을 잘못 가져간 채 모르고 있다가 보급 담당자가 생활관 전 인원의 관물함 뒤지는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활에서 지적을 당하는 것은 개인의 일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체로 하는 일에서 문제를 일으킬때는 파급이 컸다.


 139번은 행동이 느려 샤워나 식사를 남들보다 늦게 하고 나올때가 많았다. 단체로 집합하고 이동해야 하는 일정들이라 한명이 늦으면 전체의 이동이 늦어졌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훈련병은 원성을 사기 마련인데 139번은 그 빈도가 다른 훈련병들보다 현저히 높았다. 당장 다음주에 있을 단체 사격술 시험도 139번이 가장 미숙한 부분이 많아 동기들은 걱정 반 불만 반인 상태였다.


 이렇다 보니 139번에게 핀잔을 주고 굼뜬 언행을 놀리는 동기들이 점차 생겨났다. 때로는 그런 태도가 공격적으로 변해서 139번이 실수를하면 일부러 저렇게 행동한다며 화를 내는 동기들도 있었다. 나는 139번이 일부러 그렇게 행동할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분위기가 안좋아지면 그를 변호하곤 했다. 다행히 나 외에도 137번 훈련병이 139번의 부족한 부분들을 챙겨주기도 하고 충고하기도 하며 그를 도왔다. 훈련소 생활이라는게 자기 할 일만 해도 벅찬 생활이라 139번을 방치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나 역시 그를 도우려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139번은 아주 가끔씩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부분 과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대화의 양상이 좀 달랐다.

-“형 약사 일 하다 오셨다면서요? 저희 둘째 누나도 약대 나왔어요.”

강의실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139번이 나에게 꺼낸 말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의 대화였다. 나는 그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했지만, 그래도 나를 의지할 대상으로 여기나 하는 마음에 친절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와, 정말? 어디 약대 나오셨니? 건너 건너 알수도 있겠다. 지금은 일하고 계시려나?”

-“약대 졸업하고 의대 갔다가 저 중학교 때 자살했어요. 큰 형이랑 부모님도 다 의사에요.”

편지를 쓰다 연필심이 툭 부러지며 찾아오는 정적처럼 나는 139번의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비극적인 가정사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어떤 감정의 여운도 담겨있지 않은, 이미 잉크가 다 말라버린 글씨처럼.  


 나는 139번의 전공이 의료와 관련된 쪽이었던 것을 다급히 떠올려 집안과 잘 어울린다고 대답했고, 대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의 진로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누나의 이야기를 하던 그의 태도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후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더 어색할 지경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극복한 사람의 말투라고 하기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소중한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등져 떠나보낸 적이 있다. 웬만해서는 대화의 주제로 삼고 싶지 않을 뿐더러 수년이 흘렀지만 편하게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139번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139번과 사적인 얘기를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39번은 이후에도 자잘한 문제들을 일으켰고 미움을 받았지만 착한 동기들의 도움 덕택으로 그럭저럭 생활했다. 그는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나는 그가 적극적으로 자기 감정을 어필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날 가정사를 얘기했을 때 그의 태도는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139번의 생활에는 감정이 절제되거나 제외되어 있었다. 나는 엄격하게 들렸던 그의 집안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맞이한 비극이 낳은 충격에 대해, 비극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이루어졌을지에 대해, 의사나 약사는 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의료업과 관련된 전공에 진학한 그의 선택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이순간에도 갑작스러운 자기 소개로 옆에 앉은 사람을 당황시킬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대부분 슬픈 것이었다.


 어딘가에서 복무를 마치고 다시 자기의 삶을 시작할 139번에게 시 한편을 읽어주고 싶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한없이 슬픈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 되리니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1799~1837)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의 전문이다. 삶이 우리를 속인다고 알려주는 시의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시이다. 희망을 주는 1연의 내용도 좋지만 나는 139번에게 2연의 내용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마음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변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마음이 먼저 먼 미래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먼저 가버린 마음을 따라잡기 위한 과정은 언제나 순탄치 않았다. 그 미래에 우리가 온전히 다가설 수 있을지조차 현재의 우리 알 수 없다. 삶도 우리의 마음도 현재를 사는 우리를 속인다. 슬픈 일이지만, 슬프지 않으려 해서는 안된다. 흐르는 눈물을 느끼며 우리가 보내둔 마음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그 여정에서 슬픔들은 하나 하나 그리움이 되어 갈 것이다. 그건 우리가 잘 지나왔다는 뜻이다.


 끌어안다가 놓아버린 슬픔을 네가 되찾기를 바란다. 온전히 담기에는 너무 무거운 감정이 두려워서 껍데기만 남아버린 너의 사연이 슬픔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 전에, 무탈하고 몸 건강히 전역했기를 가장 바라고 있겠다.


(대화 내용에는 개인신상 보호를 위한 약간의 각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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