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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Jul 07. 2021

‘엄마처럼’ 다음에 어떤 말이 연상되세요?

[민정님께] 전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요.

민정님,

제가 민정님을 좋아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민정님이 창고살롱 레퍼런서 살롱에서 “나와 비슷한 또는 나보다 힘든 상황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은 대단한 창작소’를 만들었다.”라고 말했을 때였을까요? 아니면 저만 사투리 쓰는 것 같아 주눅 들어 있을 때, 서울에 산지 20년이지만 여전히 경상도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민정님의 말투를 처음 들었을 때였을까요?     


우린 실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2020년 12월에 창고살롱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났을 뿐인데요. 지금 이렇게 자주 카톡으로 대화하고 심지어 편지까지 쓰게 되다니요.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인연입니다.     


민정님과 줌으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수록 궁금한 것들이 자꾸 생겼어요. 어떨 땐 물어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혼자서 궁금해하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민정님과 같이 편지를 주고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편지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요. 홍밀밀님과 서홍시님의 교환일기를 보면서 저도 주고받는 편지글을 한번 써보고 싶었었거든요. 민정님 덕분에 잠자고 있던 마음속 소망이 다시 떠올랐고, 민정님이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편지를 써내려 가봅니다.     


'엄마처럼' 다음은?


민정님, 혹시 검색창에 ‘엄마처럼’을 치면 자동완성으로 뭐가 나오는지 아세요? 정답은 “엄마처럼 살기 싫어.”예요. 제가 임신출산육아교실에 가서 이걸 맞히고 사은품을 받았다는 거 아닙니까. 민정님이라면 ‘엄마처럼’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 거라고 대답했을까요? 엄마처럼 멋지다? 엄마처럼 좋다?     

'엄마처럼'의 자동완성. 몇 년 새 엄마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나봐요.


저는 어릴 땐 커서 시집 식구들에게 시달리는 불쌍한 엄마를 지켜주겠다고 생각했었고요. 성인이 되어서는 ‘왜 짜증내고 화내면서 키워서 나를 눈치 보는 성격으로 만들었냐.’고, ‘우리집은 왜 다른 집들처럼 화목한 가정이 아니냐’고 엄마를 원망하고 탓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늘 죄책감이 있었어요. 엄마를 원망하는 것 그리고 엄마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요.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가면 늘 경험하지 못했을 엄마를 떠올리고 죄책감이 들었어요. ‘엄마는 못 해봤는데 나만 해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에요. 해외여행도 처음에는 망설여지더라고요. 엄마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나만 가면 안 될 것 같고. 엄마랑 같이 가야 하나 싶지만 막상 같이 가는 건 부담스럽고. 나중에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갈 때마다 괜스레 엄마 눈치가 보이고 미안했어요. 또, 결혼하고 행복해졌는데 엄마는 행복하지 않은데 나만 행복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되네요.      


어릴 때부터 저의 큰 소망 중 하나는 엄마가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이건 엄마를 위한 마음이기도 하지만 더 큰 건 엄마가 행복해야 내가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전 늘 죄책감을 느낄 테고, 마음에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는 어디로도 갈 수가 없으니까요.     


저만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었어요


책 전체에 다 밑줄을 그을 뻔 했어요.


참 이상한 마음이죠? 이 죄책감은 엄마가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고, 제가 워낙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욕구들> “2장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이 부분을 발견하고 놀랐어요. ‘나만 이런 게 아니었다니. 많은 딸들이 이렇게 느낀다니.’하면서 말이에요.     



킴 처닌은 『허기진 자아』에서 여자는 딸로서 자신의 인생이 반드시 자기 어머니의 인생을 반영하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 어머니에 대한 의리와 “새로운 여성 존재”가 되고자 하는 전념의 양극단 사이에서 괴로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확실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 배신에 대한 모호한 두려움, 그리고 죄책감이 배어 있는 질문이다. ‘어머니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어?’                     


캐럴라인 냅, <욕구들>


아니, 그게 가능하다고?


제가 <욕구들>을 읽고 느낀 점을 단체카톡방에 공유하니 민정님은 엄마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 본 적이 없어서 생소한 감정이라고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죠. 민정님의 그 말에 저는 꽤 충격을 받았어요. 엄마와 비교하지 않고 사는 딸도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거든요. 며칠 동안 계속 혼자 중얼거렸었네요. “아니, 그게 가능해?”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에 많은 힘을 들이고 있거든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큰딸은 살림 밑천(네, 큰딸입니다.)’,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 예요. 엄마와 사이가 좋은 경우는 봤지만, 엄마와 딸인 자신을 별개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라 놀랍고 부러웠어요. 그만큼 엄마와 독립된 존재로 살고 있다는 말일 테고, 부모에게 얽매이지 않아 자유롭다는 것일 테니까요. 민정님의 “내가 잘 사는 것이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한다.”는 말에서는 홀가분함까지 느껴졌어요.     


평소에 민정님을 보면서 ‘건강하게 잘 자란 어른’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타인의 좋은 점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이 저한테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제가 민정님께 받은 이런 인상과 엄마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는 삶이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민정님은 어떻게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엄마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은 제 평생의 화두인데요. 민정님의 이야기가 저에게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답 기다릴게요.     


2021.7.7

호우특보와 산사태위기경보가 발효 중인 지리산 자락에서 은진 드림


지리산 천왕봉이 비구름에 가려서 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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