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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Mar 03. 2020

'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아기에게 방을 내어준 여자는 어떻게 자기만의 방을 찾았나

내 방을 갖고 싶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과 같이 방을 썼고, 커서는 동생과 같이 방을 썼다. 결혼하고 나서는 작은 집이라 내 방을 만들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쭉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는데 30대가 될때까지도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재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드디어 내 방을 갖게 되었다. 늘 꿈꿨던 내 방을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갖게 되다니. 이사도 좋았지만 내 방이 생긴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큰 책상을 놓고 옆자리에는 책장을 두었다. 편안한 의자는 새로 구입했다. 책상 위에는 그동안 소소하게 사 둔 문구들을 정렬했다. 이게 다이다. 작은 방에 책상, 의자, 책장, 책상 위 문구들. 


자신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 중에 시간이 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나이에 따라 달라진 것보다  사는 곳을 바꿨을 때 달라지는 것이 훨씬 더 컸다.(나는 소도시에서 읍으로, 그 다음 면으로 이사를 했다.) 시간은 못 해도 공간은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내 방이 있을 때 나는 가장 많은 글을 썼다. 공책에 쓴 일기, 인터넷에 남긴 글, 메모 그 무엇이든. 글쓰기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일인데, 이것을 가장 많이 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내 방에서 나는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다.


내 방, 내 책장은 이제 아기 물건들로 채워졌다.


이사를 하고 얼마 안 되어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아기방은 자연스럽게 남향의 따뜻한 내 방으로 결정됐다. 내 방이었던 방에는 아기침대가 놓이고, 아기 물건들로 채워졌다. 내 책상은 아기 기저귀 갈이대가 되었고, 내 책장에는 아기 장남감들을 보관하게 되었다. 아기와 함께 정신없이 100일을 보내고 이제 아기를 돌보는 일에 적응이 좀 되고 나니 다시 내 공간이 갖고 싶어진다. 남편이 자기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부러웠다. 나는 이제 내 방이 없다. 이제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부엌 식탁 위에서 해야 하나? 글을 쓰기엔 너무 개방적인 공간이라 별론데. 거실은 티비가 있어 불편한데. 


안방 한 쪽에 내 공간을 만들었다. 이제 여기가 내 방이다.


나는 다시 내 공간이 갖고 싶다. 내 방이 계속 없었을 때는 그냥 갖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만 이미 한 번 경험해본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방을 반드시 가져야겠다. 고민하다가 안방 한 쪽에 벤치의자를 놓고 책상으로 쓰기로 했다. 등받이가 없어 불편했던 벤치의자는 그럴듯한 책상이 됐다. 원래 내 책상 위에 두었던 연필꽂이와 문구들도 옮겼더니 더 그럴듯하다. 좌식이라 불편하고 원래 의자이다 보니 높이도 안 맞지만 그래도 좋다. '나만의 방'이 다시 생겼다. 앞으로 나는 새로 생긴 나의 방에서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실 것이다. 이전의 방을 아기에게 양보했고, 지금 마련한 공간도 다른 뭔가를 위해 양보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내 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내 공간이 있어 나는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한 세기쯤을 더 산다면 그리하여 각자 연간 500파운드와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습관과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공동 거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인간을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면, (중략) 그때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버지니아울프,《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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