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본 미용실 유리창에 형광색으로 쓰인 문장이다. 처음엔 재밌다고 낄낄거리고 그냥 지나쳤는데, 종일 그 문장이 머릿속에 맴맴 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짧은 문장 안에 비밀 같은 생활의 지혜가 꽁꽁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흔히 편하다고 생각하는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한다. “너 왜 이렇게 살쪘니? 내가 운동 좀 하라고 했잖아.” 마치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처럼 한마디를 툭 던진다. 듣는 사람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딴에는 상대를 걱정해 주는 선한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그런 얘기를 듣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떨까? “지가 언제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훈수 질이야”. 반감만 생길 뿐이다. 살을 빼기 위한 의지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도 똑같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자신이 경험한 기분 나쁜 느낌은 스치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누군가에게 “성적이 그게 뭐니, 내가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자신이 분명히 말했음을 강조한다. 듣는 사람은 “너나 잘하세요.” 할 텐데, 지적 질을 받을 때 생겼던 반감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점점 관계의 흐름이 나빠진다.
도대체 왜 그럴까? 본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느낌을 생각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꼬집어 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상대에게 시원하게 한 마디 하는 것이 원하는 바면 그렇게 하고 말면 된다. 대신 좋은 관계를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반면에 상대가 변하기를 원한다면 지적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만으로는 안된다.
변화를 원한다면 상대가 좋은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 비판적이고 훈계 투의 말은 나쁜 느낌만 준다.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조언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솔직한 표현이라고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때때로 진의가 왜곡돼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우선 그 사람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고, 아쉬운 점을 얘기하면 변화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머리 쓸 것 없이 “넌 충분히 ~해, ~만 ~면”을 잘 활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