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는 정부 산하 직업기술훈련원이라고 할 수 있는 TTC(Technical Training Center)가 전국에 약 70여 개 있다. 그중 하나가 BG TTC(Bangladesh-German TTC)이다. BG TTC는 1965년 독일 정부의 재정과 기술 지원을 받아 설립된 직업기술훈련원이다.
나는 이번 여름, 방글라데시의 TTC를 지원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현장 조사를 목적으로 4개 TTC를 방문했다. 그중에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는 BG TTC를 방문하면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1965년 독일로부터 지원받은 실습 장비가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2019년에 그대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장비는 그 수명을 다해 위치만 차지하고 있었다. 일부는 아직도 작동되지만, 현장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장비가 되어 실습 장비로 활용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이런 모습은 방글라데시 직업기술훈련원의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소수지만 시설과 장비가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TTC도 있다. 그중 하나는 KOICA에서 지원한 BK TTC(Bangladesh-KOREA TTC)이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역시 1965년이라는 사실이다. 독일의 1965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과 20년이 지난 때이다, 독일은 전쟁으로 무너진 산업과 경제를 일으켜야 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자생이 급한 때에 다른 나라를 지원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전범 국가로서 세계에 사죄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최근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도로 경제 보복을 서슴지 않고, 세계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본 정부와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한민국의 1965년은 한일협정을 체결한 해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부는 경제 개발 자금 확보를 명분으로 비밀리에 한일회담을 준비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은 거세게 반대했고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진압한 후 마침내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마무리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피해자인 국민을 배제한 채 정치적 이익을 좇아 졸속으로 처리했고, 일본 정부 역시 진정한 사과 없이 골치 아픈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간악한 거래를 한 것이다. 그 후유증은 2019년에 폭발했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그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 에서 진정한 성공을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는 게 바쁘고 힘든 것이 세상살이지만 내가 있었던 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세계 시민 의식일 것이다. 국가의 품격도 다른 나라와 함께 성장하려는 태도와 문화에서 완성될 것이다.
방글라데시는 최근 매년 7%~8%대의 성장을 하고 있다. 짧은 기간 내 눈에 비친 방글라데시는 많은 면에서 무질서해 보이고,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그러나 더위와 함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방글라데시의 희망적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30년 이내 선진국 진입이라는 당찬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원조를 받는 국가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두 번째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