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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May 20. 2020

리틀 포레스트

지지고 볶고 먹는 - 보고 듣고 말하기 #5

우리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하루치의 먹을 것을 필요로 한다. 백 년 전과 오늘날을 비교해도 그 본질을 여전히 동일하다. 마찬가지로 백 년 후에도 인간은 하루치의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할 것이다. 허기를 채우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일이기에, 우리는 종종 먹는 행위 자체를 삶과 연결하고는 한다. ‘인생이 살 맛 난다.’, ‘사는 재미가 없는 게, 입맛도 영 별로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요리라는 건 인생과 닮은 구석이 참 많다. 먼저 재료를 손질하고, 알맞은 양념을 만들고, 순서에 맞춰 재료를 지지거나 볶는, 혹은 찌거나 튀기는. 접시 하나를 채우고 또 비워내기 위해 필요한 수십 번의 분주한 움직임처럼,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 눈을 뜨고 눈을 감기까지 우리는 수십 수백 번의 분주한 움직임을 요구 받으니 말이다. 물론 이때 지지고 볶이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지만.


무언가 입으로 가져가 먹는 일이 고단하고 피로하게 느껴질 때,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팍팍한 인생살이에 관해 돌아보게 된다. 온갖 별미를 가져다대도 입맛이 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입맛의 기원을 더듬어 올라가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는 동명의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주인공 혜원은 오랜 서울 생활과 수험 생활에 지쳐 고향에 돌아온 청년이다. 이 영화는 혜원이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는, 사는 재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는, 그래서 매일같이 주어지는 오늘 하루를 고역과 번뇌가 아니라 기쁨과 확신의 세계로 만들어 가는 영화이다. 


혜원이 고향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하는 요리는 배추전이다.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배추 밑동을 밭에서 캐어내 눈과 흙을 터는 그의 손길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배추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내어 밀가루 반죽을 묻힌 다음, 기름에 튀겨내는 그 모든 과정이 혜원에게는 능숙한 일이다. 자주 해봤기 때문에, 자주 먹어봤기 때문에, 자주 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혜원에게 있어 배추전은 어머니 덕에 ‘자주’ 접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삼삼한 맛이 그에게는 인생의 입맛을 찾는 첫 여정으로 제격인 까닭이다.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금 겨울이 찾아들 때, 혜원은 겨울 내내 찬바람에 흔들릴 감을 보며 홀로 말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영화사 수박

“겨울이 와야 정말로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가 있다.”


겨울을 버텨낸 배추와 함께 시작한 여정은 겨울을 버텨낼 감과 함께 끝을 향해 간다. 허기진 배는 어떤 음식으로도 채울 수 있지만, 허기진 마음은 쉽사리 채워지지 않는다. 


며칠 전 어린 아들과 함께 우유 한 개, 사과 여섯 개, 과자 몇 봉지를 훔치다 적발된 한 사내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보았다. 사내의 딱한 처지가 알려지면서 부자(父子)를 향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는 미담이었다. 그걸로 충분한 걸까. 그 가족이 며칠과 몇 달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온정이 지나가고 나면, 그들은 또 어떤 하루를 맞이해야 하는가. 그들의 허기진 마음은 언제야 채워질 수 있는 것일까. 삶이란 어째서 이리도 고단해야 하는가. 지지고 볶고 먹어치우는 일련의 과정이 누군가에는 왜이리 치사하고 부당해야 하는 걸까.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그들도 잃어버린 입맛을 찾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더욱 서글픈 까닭은 누구의 허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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