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지내던 중, 삼주정도 여름 휴가를 간 적이 있다. 삼주간의 휴식이라니.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이렇게 긴 휴가는 처음이었다. 고등학교땐 보충수업을 듣느라, 대학생 때는 대외활동을 하느라. 회사에선 여름 휴가로 일주일 쉬는 것도 눈치보였고,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 퇴사하고서는 다음날 다른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일주일에 걸쳐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풀리아 지방으로 천천히 내려간 후 풀리아에서 이주 정
도를 머물렀다. 풀리아는 부츠 모양을 닮른 이탈리아 지도에서 부츠 굽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풀리아에서 내가 머문 곳은 그야말로 깡시골로, 낮은 언덕에는 올리브 나무 과수원이 펼쳐졌고 그 사이사이 띄엄띄엄 집들이 있었다. 풀리아의 전통 가옥은 하얀 벽에 동그란 원뿔형 지붕을 얹었는데, 지붕들이 올리브 나무들 사이에서 우뚝 솟았다. 차로 십분쯤 가야 마을이라고 불러야할 것 같은 작은 도시가 나오고 대문 없이 마당과 집이 있는, 그런 동네였다.
그 동네 초입에 오래된 카페가 하나 있었다. 내가 머물던 곳에서는 걸어서 십분정도가 걸리는. 오래된 카페는 골목의 끝이자 시작, 어느 이차선 도로에 생뚱맞게 놓여있었는데 항상 사람이 바글댔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다가 이제는 자식들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아침에는 커피를, 점심에는 수다와 테이블축구를 즐기며 아페롤, 맥주를 마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샛길을 따라 카페로 갔다. 나는 그곳의 유일한 외부인이라 처음엔 모두의 눈길을 받았다. 그들도 나도 곧 익숙해졌지만. 나는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에 잼이 든 브리오쉬(크로아상과 비슷한 빵으로 이탈리아에서 아침식사로 주로 먹는다)를 먹었다. 2유로. 커피는 0.5유로, 빵이 1.5유로. 가끔은 커피에 우유를 조금 넣어 먹었는데, 그건 무료. 느긋하게 빵과 커피를 음미하고나면 그때부터가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는 천천히 하루를 계획하고 그보다 더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근처 바다에 놀러가기도 하고, 작은 도시에 놀러가기도 하고. 그냥 지붕위에 앉아 올리브 나무를 구경하거나 마당에 걸린 해먹에 앉아 낮잠을 잤다.
그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도시는 걸어서 한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을만큼 작았지만, 나는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가게들과 레스토랑을 구경하느라 몇시간을 보고도 도시를 다 구경할 수 없었다. 고 작은 도시에 미슐랭 레스토랑은 얼마나 많은지, 처음보는 디저트는 얼마나 많은지. 나는 작은 갤러리를 한참동안 구경하기도 하고, 간간히 열리는 시장에서 쓴맛이 나는 나뭇가지를 맛보기도 하고, 기념품을 고르기도 했다.
이런 삶도 있구나 했다. 삼주간 휴가를 가는 것이 당연한 삶도, 평생 살아온 작은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을 속속들이 아는 삶도, 지겹도록 똑같은 곳에 가서 매일 같은 아침을 먹으며 느리게 보내는 휴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