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꾸준함을 동경한다. 빠르고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요즘, 한결같은 부지런함과 끈기를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이어갈 땐 여러 가지의 유혹도 이겨내야 하고, 자신의 한계도 자주 느끼게 되는데, 그런 불안 속에서도 가장 알맞은 것을 찾아 묵묵히 지속한 기억은 또 다른 꾸준한 경험을 도전하게 한다.
스스로에게 참 인색한 편이지만,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꽤 꾸준한 사람인 것은 맞다. (팀 이동은 몇 번 있었지만) 한 회사를 10년이나 다닌 것도, 마음에 드는 글귀를 만나면 곧잘 메모해 두는 오랜 습관도, 더 나은 삶을 위해 8년째 받고 있는 심리상담도, 가벼운 몸이 필요할 때 한 번씩 하는 100일간의 밀가루 단식도. 꾸준함의 기준을 높인다면 별 것 아닌 것 일 수 있지만, 모두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꾸준함이다.
최근 나의 꾸준함은 필라테스 레슨과 요가 수련이다. 필라테스 레슨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해서 이제 1년이 조금 넘었고, 요가는 휴직을 시작하며 집 근처 체육센터의 오전 8시 클래스를 등록해서 다니고 있다. 수업이 없는 날은 집에서 요가소년 채널을 통해 모닝요가와 명상으로 수련한다.
지난해, 승진 첫 해의 나는 새로운 직급에 맞는 역할행동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에 걸맞게 스트레스도 함께 따라왔다. 어릴 때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마음이 힘들거나 잠을 못 자는 정도였는데 언제부턴가 몸에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목과 어깨의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깨 엉엉 울 정도가 되고 난 뒤, 살기 위해 필라테스 레슨을 시작했다.
주 1회 주말 오전 레슨은 40시간 동안 모니터와 씨름하던 거북목, 말린 어깨, 휘어진 척추를 바르게 정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시작한 레슨이기에 인플루언서 언니 (아니 동생..) 들처럼 우아하고 있어 보이는 동작을 해 내고 싶은 욕심이 딱히 생겨나지도 않는다.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결석하지 않는 나의 성실함, 선생님의 "이제 어깨에 힘 덜 들어가는데요?"와 같은 기분 좋은 피드백, 5일 내내 모니터의 노예로 방치한 내 몸을 일주일 한 번이라도 균형 있는 상태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다행스러움. 레슨비가 아까워서 억지로 수업을 듣는 수동의 마음이 아니라, 변화되는 모습이 좋아 내 몸이 저절로 레슨을 원하는 능동의 마음이 되었다.
나에게 필라테스가 몸을 정돈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요가는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두 운동 다 몸과 마음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나의 경우는 필라테스가 몸, 요가가 마음 쪽에 가깝다.) 월수금 아침 8시 요가 수업은 40명이 정원인데, 결석이 거의 없다. 다들 참 성실하고 꾸준하다. 특히 맨 앞줄의 포스 있으신 어머님들은 나보다도 아니 20대보다도 더 유연한 동작들을 잘하신다.
요가 수련은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과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라테스처럼 어떠한 도구나 기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내 몸 만으로 집중해서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내 몸이 가능한 선까지만 동작을 하는 것. 잔잔한 음악 속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신체와 정신을 가지런하게 하는 시간, 자극적이지 않고 차분하며 무리하지 않는 그 매일매일이 좋다.
일과 일을 뺀 나머지, 과함과 모자람, 편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 52kg과 54kg, 자극과 지루함, 조급함과 무기력. 그 속에서 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과거의 습관들은 오차가 발생하는 순간 오히려 더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보다, 균형을 잃어도 다시 돌아오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볕이 잘 드는 식탁 앞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쓰는 지금의 이면엔,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왔던 내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같지만, 늘 지향하는 모습의 내가 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는 요즘. 균형을 지키는 것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여전히) 훈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