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신체검사 날, 그날 이후부터 나의 길고 긴 안경잽이 인생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 반 친구가 안경을 쓰고 왔었는데, 나도 그 친구처럼 안경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tv도 앞에서 보고 컴컴한 곳에서 책도 읽고 했더니, 정말시력이 나빠졌다. 엄마는 안경을 벌써 쓰면 어떡하냐고 걱정했지만, 그때의 나는 사실 내심 안경을 쓴다는 게 좀 신났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시작된 안경은 내 평생 달고 다니는 혹이 되어버렸다. 안경 거의30년, 렌즈 20년 (서클렌즈5년) 그동안 시력교정에 쓴 돈만 해도 얼마인지, 계산도 하기 싫어진다.돈도 돈이지만, 0.5에서 시작했던 시력은 30년간 차곡차곡 나빠져 어느새 -5.0이 되어버렸다.
-5.0 이상의 중고도근시를 가진 안경잽이들은 반드시 겪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부득이하게 안경을 쓰고 나갔는데 구썸남이나 전남친을 마주쳐줄행랑을 친다거나, (나의 경우 안경을 쓰면 얼굴 라인이 안경 안으로 들어올 만큼 축소되고 눈 크기도 반으로 작아져 찐따 얼굴이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렌즈를 착용한다.) 공들여 화장해도 안경을 쓰고 회사에 가면 어디 아프냐,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냐.. 고 여쭤보신다. 도수 높은 안경잽이인 나에겐 쌩얼보다 못한 얼굴이 안경 쓴 얼굴이었다.
휴직이 시작되고 나선그 간 렌즈로 혹사시킨 눈을 쉬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쌩얼에 도수 높은뺑뺑이 안경까지 끼고 있으니 내 얼굴이 너무 쳐다보기가 싫었다. 15년 전쯤 시력교정술을 하려고 검사를 받았지만, 수술 당일 노쇼를 했을 만큼눈에 손을 댄다는 것이겁이 나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젠 시력교정술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더 무서워지는 지경에 이르니 용기가 생겼다.
15년 간의 긴 고민을 뒤로하고, 남아도는 시간으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시점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부터 먼저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께선 출산을 하면 시력이 약간 떨어질 수는 있지만 그 현상도 일시적이고 다시 시력이 회복되기에 아이를 가지기 전에 미리 하는 것이 좋고, 요즘 시력교정술은 스테로이드 계열 안약을 1주일만 넣어주면 되어서 그 기간만 지나면 아이를 갖는 것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씀 주셨다.
제일 불안했던 부분을 해소하고 나니 조금은 더 용기가 생겼다 (검안도 무난히 통과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술날짜를 잡으니 세상 이런 괴로움이 없었다. '잘못되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안 하겠다고 할까.' 그 간 방치했던 온갖 불안과 걱정이 밀려들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프로 걱정러의 최악까지 생각하는 버릇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불안은 말하거나 전할수록 더 큰 불안이 된다는 걸 수 차례 셀프임상을 통해 배웠기에 남편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을 다 잡았다. '걱정도 염려도 불안도 다 내 마음의 문제다. 나를 못 믿겠으면 의사 선생님이라도 믿자'라고-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의사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에 세상 안정감이 들었고, 호들갑을 떤 긴 시간이 민망할 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다. 회복 과정에서 약간의 통증과 불편함은 있었지만 (앞으로 노안이 오기 전까지는) 안경을 안 써도 된다는 편리함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만한 정도였다. 지금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눈의 변화가 느껴질 땐 불안하고 무섭고 걱정되는 마음이 스멀스멀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고, 내가 관리를 잘하고 있고 (잘할 거고), 전자기기 사용도 최소화하고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자' 되뇌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은 현재의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결정할 것인가로 조금은 컨트롤할 수 있으니.
최근에 미간 주름이 살짝 생겼었는데, 그 주름이 확연히 옅어졌다. 무의식 중에 눈을 찡그리면서 생긴 주름이 조금씩 펴지게 되었나 보다. 안경과 렌즈의 도움 없이 맨눈으로 보는 하늘, 나무, 건물, 간판 그리고 내 얼굴도 생경하다. 더 쨍하게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진작 할 걸 - 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 용기가 생긴 지금에서야 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