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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1. 2024

응급실에 온 지 39시간 만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5




감기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급실에 온 지 39시간 만에 민지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천사처럼 예쁘고 사랑스럽던 우리 아이가 정말 아기천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병명은, 아니 병명을 찾기도 전에 민지는 떠났습니다. 그래서 임상적 추정이라고 했습니다. 그 임상적 추정은 '패혈증과 범말성 혈액 응고 장애'였습니다. 이름 모를 지독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혈액이 혈관 내에서 응고되는 것 이랍니다. 패혈증과 범말성 혈액 응고 장애가 합병으로 오면 치사율이 높다고 합니다.

의사가 그러더군요.
- 지독히 재수가 없어 그런 병이 걸렸다고 생각하세요...

'처음 아프기 시작할 때부터 큰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아 이런 엄청난 일이 생긴 걸까... 결국은 내가 우리 민지를 보내 버린 걸까...'

큰 형님이 이런 제 마음을 대신해 의사에게 물어보았답니다.
- 처음 아프기 시작했던 일요일에 데리고 왔으면 우리 민지 괜찮았을까요?
- 아닙니다. 언제 오셨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정확한 원인도 알 수 없고, 어떤 바이러스인지도 알 수 없고, 그러므로 예방도 없는 무서운 바이러스랍니다.
그런 병이 왜 우리 민지에게 달려들었을까. 왜 가엾은 우리 민지여야 했어. 차라리 나를 데려가지, 차라리 나를..............

같은 날 오후. 영안실에 우리는 있었습니다. 대답 없는 민지 사진을 모셔놓고 그렇게 허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넋을 놓은 채 흐르는 눈물 닦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유난히 사랑을 많이 받은 우리 민지.
길 가던 사람들도 이쁘다고 한번 만져주고, 처음 본 사람들도 정이 간다고 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민지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였습니다.

민지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엄마들이 많이 와 주셨습니다. 저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우리 민지를 알고 와 주셨습니다. 그렇게 민지는 마지막 가는 길을 자기를 사랑해 준 사람들, 자기의 손님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2002년 1월 26일 토요일>


밤새 스님의 염불 소리에 민지의 영혼은 편안해졌을까요. 갑자기 다른 세상에 발을 놓은 우리 아가가 무서워 떨지는 않았을까요.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우리 민지도 얼마나 울었을까요...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 엄마, 무서워...' 이렇게 어디선가 민지가 엄마 아빠를 부르고 있는데 내가 못 듣고 있는 것 같아 미칠 것 같았습니다. 어디엔가 민지가 서 있을 것 같아 자꾸만 두리번거렸습니다.


민지야...
엄마가 민지랑 못해 본 것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니...
엄마가 민지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니...
민지 보고 싶어 어떡하니...
이건 모두 꿈이라고 해줘.
제발 엄마가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 줘.
믿어지지 않아.
이제 널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제 널 안아볼 수 없다는 것이,
이제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우리 민지가 내 곁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가 있을까.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구!
민지야,,,
너무나 보고 싶은 내 아가야...

어제 두 번 세 번 확인한 민지의 모습은 여전히 따뜻하고 예뻤습니다. 금방이라도 다시 '엄마...' 하며 일어날 것 같이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었습니다. 예쁘게 웃으며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 민지야, 우리 민지야. 엄마는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예쁘게 웃고 있는데, 이렇게 아직도 따뜻한데 네가 천사가 되었다니 엄마는 믿을 수가 없구나. 민지야... 민지야 눈 좀 떠봐... 민지야......


아무리 불러봐도 민지는 그저 잠든 듯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살아생전 예쁜 드레스 한번 입어보지 못한 우리 아가, 늘 언니 옷을 물려 입어야 했던 우리 민지.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곱디 고은 새 하얀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이제야 자기를 위해 산 드레스를 입게 되었습니다. 진작에 이 옷을 입혀 주었으면 멋쩍은 듯 웃으며 얼마나 좋아했을까...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까...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 게 너무 늦었습니다. 내일, 내일... 내일로 미루던 모든 것들이 이제 다 소용 없어졌습니다. 땅을 치고 후회한들, 가슴치고 울부짖은들 이제 다 끝나버렸습니다.

민지는 새를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마지막 가는 길도 새들과 함께 했습니다. 절 앞산에서 민지를 보낼 때, 민지의 먼 여행을 지켜 주려는 듯 어디선가 많은 새들이 날아와 반겨 주었던 것입니다. 또, 눈과 비를 좋아하던 민지를 위해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주었습니다.

고운 천사옷을 입고,
좋아하던 비를 맞으며,
좋아하던 새와 함께
마지막 먼 길을 떠났습니다.

- 민지야,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는, 좋은 곳으로 가거라... 이 못난 엄마 그리워하면서 이곳에 맴돌지 말고, 행복만 넘치는 좋은 곳으로 가거라... 아가... 극락왕생 하길 엄마는 빌고 또 빌께.....


사랑하는 우리 아가는 그렇게 우리와 영원히 이별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는 민지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민지야...........

사랑한다.......

사랑해.......



민지는 우리 부부사이가 가장 힘들고 위태롭던 시기에 우리 곁으로 왔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사이를 다시 단단한 끈으로 묶어 주었고, 우리 가족이 너무나 행복할 때 그렇게 떠났습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민지는 우리 곁에 올 때부터 천사였다고...
이 세상에서 다 채우지 못한 시간만큼만 살고 갈 천사였는데,
어디로 갈까 둘러보다가,
위태로운 우리 부부를 다시 사랑으로 묶어주기 위해 우릴 선택한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고,
자기의 못다 한 시간을 채우고,
그렇게 떠난 것이라고....
처음부터 우리는 진짜천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이라고...

맞습니다.
민지는 아마도 처음부터 천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누구에게나 사랑만 받았던 민지는 천사였습니다.
지금,

그 천사는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해맑은 영혼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럽니다. 처음에 알았으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거라고... 왜 그 소아과 의사를 그냥 두냐고... 아니면, 혹시 **대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낸 것은 아니냐고...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 가득합니다. 그냥 아무나 붙잡고라도 너 탓을 하며 울부짖고 싶습니다. 너 때문이라고... 너 때문에 우리 아가가 떠나고 말았다고...

살려내라고... 다시 우리 아가 살려내라고 우겨 보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민지가 그걸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 온 민지는 떠날 때도 조용히 떠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만 남겨둔 채 소리 없이 떠나길 바란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지는 처음부터 아름다운 천사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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