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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Apr 30. 2024

중환자실 입실 17시간 만에,,, 입원 셋째 날 정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4




<2002년 1월 25일 금요일>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낮 12시와 저녁 6시 30분입니다. 씩씩한 모습의 민지를 그리며 정오의 면회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5분 10분,,, 봐도 봐도 시간은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 애타는 마음 쓸어 담던 중 또 민지 엄마를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아침 8시였습니다. '아직 면회시간은 멀었는데...' 또 덜컹 내려앉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전화를 건네받았습니다. 중환자실로 올라오라는 호출이었습니다. 순간 불길한 생각이 스치며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급히 중환자실 벨을 누르고 우리 민지가 있는 침대로 갔습니다. 아... 가여운 우리 아가의 입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었고, 양손은 침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양손을 묶인 아이는 입에 걸어둔 마스크를 벗으려고 몸부림치며 입으로 힘겹게 힘겹게 그것을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를 본 민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엄마, 이것 좀 빼줘. 빼줘..."  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올려 주었습니다.
- 우리 민지, 누가 그랬어...
- 간호사 언니가 그랬어..
가여운 우리 아가가 헉헉대며 대답했습니다.

- 민지야 조금만 참자 응... 민지야...
- 엄마 이거 빼 줘... 엄마 집에 가고 싶어...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오더니 마스크를 다시 아이 입으로 가져가며 이래서 엄마를 부를 수가 없다며 화를 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숨이 가쁜데 마스크를 떼면 어떻게 하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저는 마치 죄인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 우리 애가 왜 이러죠... 왜 이렇게 숨이 차는 거죠??

미칠 것 같았습니다. 어제보다 더 안 좋아 보이는 아이를 보자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민지는 계속 몸부림을 치며 마스크를 벗겨 내려고 입을 움직이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 우리 민지가 너무나 힘들어했습니다.
'제발, 제발 우리 아가를 버리지 마세요. 제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 의사가 왔습니다.
- 아빠는 어디 계시죠?
- 회사에...
저쪽에서 이야길 하자고 했습니다.

의사와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중환자실 입구로 나가야 하는 나는 민지에게 화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면 버둥대는 몸짓을 그만둘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민지가 덜 힘들 것 같아서 그렇게 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민지야. 간호사 언니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얌전히 있어야 해...
그러자 옆에서 의사는 "엄마 그러고 나가시면 안 되지요. 아이를 달래주셔요"라고 말을 하더군요.

아마도 이것이 엄마와 마지막 인사라는 걸 의사는 짐작하고 있었나 봅니다. 차마 나에게는 그렇게 말을 못 했지만, 이것이 우리 모녀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 민지가 의식이 있을 때, 말할 수 있을 때,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이 엄마를 만나게 해주었나 봅니다..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얌전히 있어야 빨리 나을 텐데..
저렇게 발버둥 치면 힘들 텐데...

- 민지야. 얌전히 간호사 언니 말 잘 듣고 있으면 엄마가 또 올게. 알았지?

다음에 올 때 엄마가 뭘 사 올까? 민지 뭐가 갖고 싶어?
-......
숨이 가쁜 아이의 말이 잘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점점 숨이 가빠졌습니다. 가슴이 저렸습니다.

- 뭐라고? 민지야?....
- 엄마 마음대로...
- 그래, 엄마가 색종이랑 풀이랑, 공부책이랑 가져올게. 쵸코렛도 가져올게. 민지 착하니까 조금만 참고 있어 알았지? 빨리 나아서 집에 가자. 우리 민지 착하지...........

그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나왔습니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대화가 우리 민지와 마지막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겠습니까...
그런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민지가 원하는 대로 마스크도 빼주고, 주사도 빼주고 꼭 안아 주었을 것입니다. 마음껏 업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냥 그렇게 돌아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민지...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주지도 못한 채 그냥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환자실 입구에서 의사가 말했습니다.
- 밤새 혈압이 안 잡히고, 이미 모든 장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앞으로 2~3일이 고비일 것 같습니다..

아니, 감기인 줄 알고 왔는데 하룻밤 사이에 2~3일이 고비라는 선고를 받다니요. 기가 막히고 숨이 막혔습니다. 의사 선생님 손을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 제발 우리 민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선생님....
꿈인 것 같았습니다. 내 입으로 우리 민지를 살려 달라고 매달리는 이 모습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 저희는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의사는 사라졌습니다.

중환자실을 나오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았습니다.
'드라마에서, tv에서나 보았던 그 장면이었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이건 꿈이야. 이건 절대 현실이 아니야. 빨리 꿈에서 깨고 싶어.....'

아무리 울어도,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어봐도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고, 2~3일이 고비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엄청난 사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달려 온 가족들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여기저기 도움을 받고자 전화를 해 보아도 지금 민지의 상태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정오 면회 시간만 기다렸습니다.

11시 40분쯤 중환자실 앞으로 갔습니다. 12시 면회시간만 기다리며 모두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12시가 채 되기도 전에 민지 보호자를 찾았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우리를 부른 그 스탭이 다른 문쪽으로 와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서로가 말은 안 했지만 이미 마지막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면회시간이 되기도 전에, 더구나 다른 문 앞으로 오라고 했으니 심상치 않은 상황이 분명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습니다. 잠시 후 의사가 나왔습니다.

- 쇼크가 와서 인공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 안 돼요... 제발 우리 민지 살려주세요. 안 돼요 안 돼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가 매달렸습니다. 의사 팔에 매달려 간절히 빌었습니다.

-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의사는 나왔습니다.
- 30분 이상 인공호흡을 해도 심장이 뛰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아......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 제발 제발 우리 민지를 살려주세요. 포기하지 말고 제발 살려 주세요. 2~3일을 보자고 했으면서 이제 겨우 몇 시간 지났는데 이게 무슨 말이에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러나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났습니다.
이미 우리 아가는 천사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원망스럽습니다.
그럴 거라면, 그렇게 보낼 거였다면 조금만 더 일찍 우릴 불러 주었어야지요.
그래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주게 했어야지요.
왜, 왜, 이제야, 이렇게 모든 게 끝나고 나서야 내 아가를 만나게 해 주신 겁니까!!!
너무합니다... 너무해요...

의사의 지시대로 민지를 보러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여러 명의 의사가 우리 민지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민지의 다리는 굳어 있었습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있는 우리 민지가 고운 두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제 그만 모든 기계를 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 안돼. 자기 무슨 소리야. 안돼. 포기하면 안 돼. 선생님 끝까지 해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만두면 안 돼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하지만 이미 늦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너무 늦었음을....

입에서 호흡기를 빼고,
주사 바늘을 빼고,
오줌관을 빼고...
우리 아가가 그토록 빼달라고 애원하던 것들을 이제야 빼 주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고통도, 아픔도, 그 무엇도 느낄 수 없게 되고 나서야 빼 주었던 것입니다.

그 어린것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그 어린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웠을까...
세상에...

마지막 가는 길에 낯선 사람들만 옆에 있게 하다니...
민지야 미안해. 미안해...
이렇게 갈 줄 알았다면 좀 일찍 모두 다 빼주고 엄마 아빠 품에 안긴 채 편안히 가게 했을 텐데...
먼 길 떠나는 그 길을 지켜 주었을 텐데...
미안해 민지야 미안해 미안해...

이미 몸이 굳어 있는 아이를 안았습니다. 가족 모두가 한 번씩 그렇게 마지막으로 안아 주었습니다.
- 민지야... 민지야... 안돼. 눈 좀 떠 봐... 제발 눈 좀  떠 봐 민지야...
- 아이고 민지야, 이게 웬일이니. 아이고 민지야...
- 민지야... 좋은 곳으로 가서 더 이상 아프지 말거라... 민지야...

통곡 소리는 높아만 갔지만 사랑하는 우리 민지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목놓아 우는 엄마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을까요.
가슴 치며 우는 아빠의 모습을 볼 수는 있었을까요.

호흡기를 뺀 아이는 웃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예쁘게 웃고 있었습니다.
온몸이 부어 있었지만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너무나 예뻤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우리 민지를 안아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환자실로 옮긴 지 17시간 만에 민지는 아가 천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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