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1
<2002-03-04-월> 민지야 엄마의 첫인사를 받아주렴....
어느 날 훌쩍 우리 곁을 떠나 버린 미운 아가,
먼 길 떠나보내야 하는데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그냥 가버린 미운 아가...
넌 웃으면서 갔는데 이곳에 남아 있는 엄마는 웃을 수가 없구나.
네가 너무 그리워, 보고 싶어 눈물만 흐른다...
마치 잠깐 먼 곳에 다니러 보낸 것 같아.
예고도 없이 훌쩍 떠난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엄마~> 하면서 달려올 것 같아 자꾸만 문쪽을 바라보게 된단다.
이제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너지만
이곳 어딘가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그 예쁜 입으로 엄마에게 입 맞추고 있을 것 같아서 자꾸만 두리번거리게 된단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 가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네가 떠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구나.
우리 아가가 곁에 없다는 것 말고는 어느 것 하나 변한 것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네.
당장이라도 너에게 달려가고 싶은데 오늘도 건강한 엄마의 육신이 밉기만 하구나...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숨 쉬고, 먹고, 자고... 이럴 수 있는 엄마가 너무 밉구나. 아가야...
아가야, 엄마 품에 안겨 잠들던 너의 그 고운 숨결, 포근한 살내음...
너무 그리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단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널 안아볼 수 있다면, 업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다시는 널 보내지 않을 텐데...
다시는 그 외롭고 무서운 먼 길을 혼자 떠나게 하지 않을 텐데...
아가, 왜 엄마를 두고 혼자 갔니?
겁 많은 우리 아가 그 먼 길을 어떻게 혼자 떠나 버렸니?
남겨진 이 엄마는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살아가라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가버렸니...
내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민지야 지금 네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춥지는 않은지, 이제 아프지는 않은지...
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미운 아가야. 밤이면 꿈에서 만나자고 간절히 기도 하고 자는데 넌 한 번도 오지 않는구나...
미운 아가야..............
그래서 엄마는 이곳을 만들었단다. 이곳에서 우리 민지랑 이야기 많이 하려고..
엄마가 여기서 민지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넌 엄마 곁에 있을 거야. 그지?
지금도 엄마 곁에서 엄마이야기 듣고 있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는 거지?
너와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그동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그냥 왔다가 가기를 여러 번...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너와의 대화를 시작했단다. 듣고 있는 거지? 아가야...
어제는 엄마 생일이었단다. 아침에 아빠가 cake에 불을 켜 주었어.
네가 있었다면 이 초에 몇 번이나 불을 켜야 했을까...
우리 민지가 좋아하는 거잖아 촛불 끄는 거... 그지?
우리 아가... 너의 축하 노래가 너무나 듣고 싶구나... 너의 목소리가...............
저녁엔 작은 고모네랑 할머니 할아버지랑 식당에 갔었어.
그런데 그 식당은 말이야... 널 중환자실에 보내 놓고 갔던 곳이란다.
그땐 곧 좋아져 입원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앉았던 곳인데...
그런데 넌 다음날 우리 곁을 떠났었지... 작별인사도 없이......
아가야... 어느 한 곳이라도 너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구나.
그래서 엄마가 너무 힘들어. 가슴이 아파서, 네가 보고 싶어서 엄마는 너무 슬퍼.................
엄마는 그 식당에 가고 싶지 않았어 정말 가고 싶지 않았어...
그래... 여기서 울기만 하면 안 되지...
너에게 하루를 이야기하려고 만든 곳인데 매일 슬퍼서 울기만 하면 우리 민지가 더 이상 엄마 이야기 들으러 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지?
그래... 이제 조금만 울게. 아주 조금만........
그럼 어제 언니 때문에 웃었던 이야기 해줄게.
식당에서 언니가 이를 두 개나 뽑았단다.
하나는 조금 흔들리던 어금니였는데 사탕을 먹다가 빠졌고,
또 하나는 많이 흔들렸지만 잘 안 빠져서 오늘 병원에 가려고 했던 건데 언니가 살짝 돌리니까 빠지더란다...
그래서 모두가 웃었단다.
그래 웃었어...
하지만 엄마 마음은 웃지 못했어... 알지? 아직은 마음까지 웃을 수가 없구나.
웃으면 너에게 더 많은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웃어야 할 땐 가슴이 더욱 아파...
너 없이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용서가 안돼.....
미안해 아가야... 널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민지야. 이제 엄마 매일 너랑 이야기하러 올게.
이렇게 용기를 내어 시작을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사랑하는 아가야... 엄마 만나러 매일 이곳에 와 줄 거지?
또 만나자꾸나...
예쁜 내 아가야... 사랑해............ 사랑해..............
<2002-03-04-월>
민지야 오늘 언니가 들고 온 소식은 정말 엄마 가슴을 무너지게 했단다.
언니가 2학년이 되었잖니.
그리고 제일 먼저 사귀게 된 친구가,
같은 모둠에 있는 그 친구가
이름이...... 김 민 지...... 란..... 다...
엄마가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쿵쾅 거렸는지 이해하겠니?
엄마보다 의젓하게 동생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언니이지만, 매일 민지...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한 순간이나마 널 떠올리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럴 때마다 속으로 눌러야 하는 언니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목이 메는구나...
오늘 언니의 일기에는 너의 이름 석자가 적혔단다.
아가 천사가 된 동생 이름이 똑같이 <김 민지>라고. 그래서 속상하다고... 그리고 동생이 있는 애들이 제일 부럽다고..............
아가... 너의 빈자리가 너무 크구나. 어떤 것으로도 메꿀 수 없는 너의 빈자리를 어찌해야 하니. 민지야..........
오늘 언니랑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이야길 나누기도 했단다.
우리 민지가 건강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널 그렇게 보내진 않을 거라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미련 미련 미련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가... 오늘밤엔 엄마에게 와줄 수 있니?.................. 사랑해....... 민지야......
<2002-03-05-화>
우리 아가가 떠난 후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엄마는 일분일초마다 사랑스러운 민지 얼굴을 떠올렸단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녀석아.. 어젯밤도 엄마를 찾아오지 않았구나....."를 습관처럼 되뇌었어.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면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일부러 널 잊어 보려고 책도 잡고, 컴퓨터도 눌러보지만...
스산할 정도로 적막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널 잊는다는 것은 숨을 쉬지 않는 것과 같을 뿐...
한 순간도 엄마는 너를 지울 수가 없구나. 아가야...
너의 마지막 사진이,
유난히 쓸쓸해 보여 엄마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그 사진이,
소라색 서랍장 세 번째 칸에 고이 놓여 있지만
엄마는 그걸 열어 볼 용기가 안 난단다.
간신히 간신히 붙들고 있는 울렁이는 마음을 다시는 붙잡을 수가 없을까 봐... 그러면 언니마저 외로워질까 봐...
그래서 너무나 보고 싶지만, 무릎에 살며시 얹은 우리 아가의 포동포동한 예쁜 손을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오늘도 머릿속에서만 널 그려야 했단다.... 아가... 민지야......... 보고 싶어...........
오후엔 널 보낸 후 처음으로 특별히 외출을 했단다. 엄마 혼자 말이야.
언니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봄 옷이 없어서 그걸 사기 위해 나가야만 했단다.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싫어 한 군데서 왕창 샀단다. 그 가게는 오늘 횡재한 거야. 그지? 다 우리 민지 덕분인 걸 알까?...
오늘 읽은 언니 일기가 또 엄마를 울렸단다..
일요일에 언니에게 짱구 연극을 보여 주었거든.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내내 우리 민지 생각으로 가슴이 아팠었어.
그런데 말이야... 언니도 그날 민지 생각을 많이 했었나 봐. 항상 둘이 함께 연극을 보곤 했었는데 너 떠나고 처음으로 혼자 연극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 민지 생각이 나서 슬펐대.
어떻게 하면 슬프지 않을 수 있는지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다고 썼더라...
언니가 엄마보다 훨씬 낫지? 엄마는 참을 수 없을 땐 혼자 있을 때 엉엉 소리 내서 울어 버리곤 하는데 언니는 속으로 참 많이 참고 있는 거야..
엄마는 '언니가 어려서 금방 동생을 잊을 수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참고 있었던 거야... 민지야 너도 언니 마음 알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천사가 된 동생이 있으니까 동생이 있는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말자>
언니가 일기장에 적은 한 구절이란다. 언니는 이렇게 널 항상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 못난 엄마는 언니가 오늘 참 기특했단다... 그리고 엄마도 좀 더 속으로 참아 보자고 다짐도 했어.
널 위해, 언니를 위해, 가족을 위해 엄마는 참아야 한대... 그래야 한다고 주위에서 엄마에게 다독여주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을 땐 엉엉 울곤 했는데... 이젠 조금만 울게... 그러면 우리 민지도 더 좋아한대... 맞니 아가야?... 엄마가 울면 우리 아가도 싫어?... 응?........... 너의 대답을 들을 수만 있다면...................
늘 24시간이 짧게만 느껴지던 하루가 우리 아가가 떠난 후부터는 주체할 수 없이 길기만 하구나. 오늘 밤은 또 얼마나 길까.......
민지야 오늘도 엄마는 꿈속에서 널 기다릴게... 언제나처럼......... 사랑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