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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5. 2024

진작에 알았더라면

민지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2

<2002-03-07-목> 오늘은 절에서 우리 민지 만났지........
 

오늘도 엄마는 참지 못하고 그리움에, 미안함에 울고 말았어...

시간이 갈수록 우리 민지를 향한 그리움은 더해가고, 그걸 참아내야 하는 엄마의 가슴은 더욱 타들어간다.

7일마다 찾는 곳, 우리 민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놓여 있는 곳, 어쩌면 정말 엄마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

엄만 그곳을 향하는 마음이 두렵기만 하단다... 이것이 꿈속에서의 일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니까...

잠시 어딘가에 갔을 거라고, 곧 돌아올 거라고 믿고 싶은데 7일마다 한 번씩 이렇게 엄마는 너의 빈자리는 다시 채워질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구나.

민지야... 엄마 너무 아파... 마음이 너무 아파서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아...... 어떡하니... 엄마 어떡하니...

할머니처럼 깊은 신앙이 있다면 엄마도 너의 빈자리를 기쁘게 생각할 수 있을까?... 부처님 곁에서 재롱부리며 더 많은 사랑받고 있다고 마음 놓을 수 있을까?...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눈으로 널 찾게 된다.

정말 좋을 곳으로 갔을까?...

정말 저곳에서 웃으면서 엄마를 보고 있는 걸까?...

혹시 엄마가 이렇게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하고 있어 너에게 더 나쁜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이 못난 엄마 때문에 그곳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겁이 나... 우리 아가 천사의 날개가 이 못난 엄마 때문에 펴지지 않을까 봐 정말 겁이 나...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듯 웃으면서 널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엄마는 아직 안돼. 그게 안돼... 미안해... 미안해......

지난번에 놓아둔 cake 위에 먼지가 쌓여 있고... 네가 좋아하는 껌과 초콜릿, 장난감 과자들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너무 슬퍼...

우리 민지 초콜릿을 얼마나 좋아했니... 엄만 그걸 또 얼마나 못 먹게 했니...

그런데 이제 와서, 이제 와서야 너의 사진 앞에 쌓아 둔 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왜 우리 민지 좋아하는 거 실컷 먹게 하지 않았었을까... 후회와 미안함으로 엄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미안해... 민지야 정말 미안해......

민지야, 너 정말 엄마 곁에 항상 있는 거지? 예쁜 아가천사 되어서 우리들 곁에 변함없이 있어 주는 거지?

그래... 지금도 옆에서 엄마랑 얘기하고 있네..................................

오늘 너에 대한 그리움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하구나. 널 품에 안고 잠들고 싶어.................

민지야...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2002-03-08-금> 


오늘 수지침 강의를 들었단다. 오늘부터 3개월 동안 금요일마다 수업이 있어. 우리 민지 생각하면 아직 어떤 것도 할 수 없지만, 또 엄마가 책임져야 할 언니를 생각하면 놓칠 수가 없구나. 지금 상황에 벌써 외출을 시작한다는 것이 너에게 또 한 번 죄를 짓는 것 같아... 하지만... 시간이 없단다... 아가... 미안해...

민지야, 수업 중에 엄마는 또 목이 메었단다...

강의를 듣노라니 왜 이제야 이걸 배우려고 했나 하는 엄마의 어리석음에 가슴을 칠밖에...

진작에 이걸 알았다면, 널 그렇게 대책 없이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도 가시질 않는구나. 아프기 시작해서 단 5일 만에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아 정말 속상해...

처음 열이 나고, 감기 증세가 있을 때 엄마가 이것을 미리 익혀두었다면 그냥 씻은 듯이 낳았을 수도 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정말 손쓸 수 없는 바이러스였다고 해도 모두가 엄마 잘못이라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가 없구나... 아가... 정말 미안해... 아가...
오늘도 깊은 밤 쉽게 잠들 수가 없다..................

아가... 안녕.................



<2002-03-09-토> 
 

어제 언니한테 무척 실망스러운 일이 있었단다.
2학년이 되어서 이제 반장을 뽑기로 했나 봐. 선생님께서 하고 싶은 사람은 의견 발표 연습을 해오라고 했다며 언니도 열심히 발표 연습을 했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언니는 어떤 일이든 적극적이잖니...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더니 부끄럽지만 그래도 해보겠다고 하면서 자기 전에 몇 번 연습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어제 연습한 걸 다시 중얼거릴 정도로 의지가 있었는데...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가 하는 말이, 선생님이 하고 싶은 사람은 다 준비하라고 했으면서 친구에게 추천을 받은 사람만 반장 선거에 나갈 수 있는 걸로  말을 바꾸었다고 선생님한테 실망했다는 거야. 결국은 자기는 추천을 못 받아서 힘들게 연습한 것 발표도 못해 보았다고, 아무도 언니를 추천하지 않아서 화가 난다고 하면서 씩씩거리더라... 언니 웃기지?

사실 엄마는 언니가 반장이 안된 것이 너무 잘 된 거라고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단다. 반장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참 많거든. 그런데 엄마는 지금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잖아...

언니의 적극적인 자세가 자랑스럽다고, 어떤 일이든 도전해 보려는 그 마음이 더욱 소중한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못내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나 봐. 2학기 때는 하고 싶은 사람은 다 발표하라고 했으면 좋겠대. 그런데 그때 또 아무도 자기를 추천 안 해주면 어떡하냐면서 벌써부터 다음 선거를 기대하고 있어. 민지야 이런 언니 모습 이쁜 거 맞지?

그래 우리 민지도 어린이집에서 참 씩씩했지. 그 목소리는 또 얼마나 컸니. 작은 체구로 또래에게 치일까 봐 걱정하던 엄마를 무색하게 하리만큼 어린이집 친구 중에 가장 큰 목소리로 노래 발표를 하던 너였지...

우리 예쁜 아가는 인기도 참 많았었지. 우리 민지를 보고 "네가 민지구나, 우리 아이가 맨날 집에 오면 민지 얘기해서 궁금했어요" 하면서 엄마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 친구들 모두는 너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잠깐 아파서 못 나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텐데...

아가... 엄마가 바랬던 소망은 우리 딸들이 사랑 많이 받으면서 커가는 거였는데 넌 엄마의 소망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단다... 네가 떠난 후에야 그걸 알게 된 이 못난 바보 엄마를 어쩌면 좋으니...

누구든 미소 짓게 만들던 너, 즐겁게 만들던 너...
우리 민지는 정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천사였나 봐...

아가야 민지야 너무너무 사랑해......♡

-- 이른 아침에 엄마가........--



<2002-03-11-월> 오늘은 엄마의 투정 좀 들어주렴..
 

우리 민지 며칠 동안 이곳에서 엄마 만나지 못했다고 화가 나 있을까? 그래, 미안해 아가야...
하지만, 보고 싶다고, 너무나 보고 싶다고, 그래서 엄마는 매일 울고 있다고, 그런 말 밖엔 할 얘기가 없었단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가는 상실감...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
하지만 엄마 앞에 우뚝 서있는 민지 언니에 대한 책임감...

오늘도 할머니 (이모할머니도 오늘은 거들으셨다)는 엄마의 마음이 빨리 정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 그래야겠지, 그래야겠지...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런 할머니의 말씀이 냉정하게 들리는구나. 좀 더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는데...  주위 사람들을 위해 이 엄마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돌아보면 아가,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엄마 자신은 없었단다.

늘 시어른 먼저 생각하고, 엄마 마음만 한번 누르면 주위 사람 모두가 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일이든 엄마가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하고 선택하면서 살아왔단다. 그렇게 살아가면 엄마는 복 받을 거라고... 엄마가 배려한 만큼의 보답은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 답이 이거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우리 아가를 먼저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니... 말도 안 된다. 이건 너무 불공평한 거야. 돌아봐도 돌아봐도 엄마는 남에게 모질게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아가에게......

그런데 이번에도 또 이 엄마가 잘 참아야 한단다. 그래야 모두에게 좋단다.

엄마................................ 이제 그러기 싫어, 정말 싫어...........

이제 엄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마구 하면서 속앓이 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어. 저렇게 살아왔어도 엄마에게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왔는데,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면서 또 엄마를 죽이며 살아야 하니. 정말 싫어...

아가... 미안해... 오늘은 너에게 엄마 가슴을 좀 열어야겠단다. 터질 것 같아... 차라리 터져 버리면 좋겠는데 터질 것처럼 답답하고 아프기만 해...

이젠, 이젠......

남보다는 나를, 이 엄마를 배려하면서 살 거야.

이 상황에서도 엄마의 인내만을 바라시는 어른들이 오늘은 정말 잔인하게 느껴지는구나.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었는데... 우리 아가, 사랑하는 우리 아가 보낸 날이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었는데 벌써 엄마더러 아무렇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어른들이 너무 밉구나.

그래,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런 어른들 모습도 안쓰러워. 그래서 엄마도 슬픔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누가 뭐래도 엄마는 할 수 있는 만큼 참고 있어. 그런데 아빠가 말이 없고 우울해하고 있는 것이 엄마 탓이라고 생각하시나 봐. 원래도 말 없는 아빠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하길 바라시길래... 왜 이 엄마에게 이렇게 힘든 요구를 하시는 걸까. 조금만 더 엄마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되는 걸까. 그냥 바라봐 주시는 것이 더 힘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시는 걸까...

부처님도 하나님도 이 엄마에게는 아직 낯설기만 해서, 그저 엄마의 마음으로 널 보내고 있는 중인데...

그냥 그렇게만 이해해 주시면 안 되는 걸까.

아가......

사람들은 자기가 가져 본 슬픔의 크기만큼만 남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나 봐. 모두들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니 너는 오죽하겠니...."로 마무리한다.

그래, 엄마도 엄마의 슬픔 잣대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어떻게 내 심정을 알까...' 하면서.................

민지야, 대답 없는 무심한 아가야. 엄만 절대 널 잊지 못해. 절대 널 잃은 슬픔을 씻어 낼 수 없어. 그 슬픔으로 가슴이 해지고, 문드러진다 해도 절대 절대 널 엄마의 가슴 밖으로 보낼 수 없어. 그거 알지? 민지야 그거 알지? 엄마는 언제나 너와 함께 숨 쉬고, 느끼고,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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