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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Apr 29. 2024

상태가 안 좋습니다... 입원 두 번째 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3





<2002년 1월 24일 목요일>

아침 일찍 다시 피를 뽑으러 간호사실에 갔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눈물이 쉴 새 없이 나왔습니다. 저 어린것이 감당해야 할 아픔을 대신할 수 없는, 무능한 어미를 수 없이 탓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발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 주소서...

밤새 혈소판을 수혈받았지만 그 결과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점점 심각한 상황이 돼 가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몰랐습니다. 그저 의사들은 만약을 위해,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위해,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병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좀 더 지켜보면서 다른 검사가 들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때도, 만약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건 백혈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제일 무서운 병은 백혈병 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발 그 병이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백혈병이었다면,
그랬다면,
비록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 민지는 아직 우리 곁에서 예쁘게 웃고 있을 텐데...
우리 민지 예쁜 얼굴을 내 뺨에 비빌 수도 있을 텐데.
그리고 반드시 그 병을 이겨 내었을 텐데...

민지가 좋아하는 공부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너무 좋아해 한번 잡으면 끝까지 하려고 해서 몰래 숨겨 놓았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찾았는지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띠며 색연필과 공부책을 책상 위에 놓고 엄마를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런 공부책을 병실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앉아 있을 기운조차 없는 민지가 공부를 하겠다고 힘없는 손에 색연필을 쥐었습니다. 동그라미를 그리는 아이의 손길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연필을 쥐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목이 메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 힘들었나 봅니다. 한번 앉으면 마지막장까지 끝내야 하는 아이였는데, 몇 장을 못 넘기고 곧 스스로 연필을 놓았습니다.


- 엄마.. 이따가 할래..
- 그래, 좀 쉬고 이따가 다시 하자..
- 업어줘..
- 그래, 우리 이쁜 엄마 궁둥이, 엄마가 업어줄게...

그리고 오후 5시쯤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중환자실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웬 말입니까.

그저 감기인 줄 알았던 아이가 입원을 해야 했고,

입원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로 가야 할 상황까지 오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곳에, 엄마도 없는 그곳에 어린것을 혼자 둘 수 있냐고...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애원하며 우리 부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빠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그곳에서,
아파서,
무서워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혼자서 울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애원했습니다.

의사는 이 상태로 가다 보면 갑자기 쇼크 상태로 까지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걸 책임질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무조건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 쇼크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몰랐으니까요. 쇼크가 마지막을 의미한다는 걸 전혀 몰랐으니까요...

아직도 우리는, 단지 의사들이 지나치게 심각하게 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 그래도 되는데 괜히 마지막 상황까지 추정하며 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지한 우리 부부는 그 순간에도, 아이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상태가 안 좋습니다"라는 말이 마지막 상황을 의미하는 것 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계속해서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중환자실로 가면 좀 더 세심한 관찰을 할 수 있으니 아이에게도 더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좀 더 자주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 가는 것뿐 이라면서...

그렇습니다. 이때는 의사들도 민지가 다음 날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것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아이가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인지를 여러 가지 항생제를 주사하면서 찾아보려고 한다고 했으니까요.

멀리서 달려오신 큰 형님이 개인적으로 잘 아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마친 후 중환자실로 보내자고 우리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그때가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저녁식사를 보자 아이는 문득 김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형님이 부랴부랴 김을 사 오셨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김에 밥을 싸서 먹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민지는 다음에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식사가 될 줄 몰랐던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 그래, 민지야 나중에 엄마가 김에 밥 싸 줄게. 그때 우리 민지 많이 먹자...


그런데 그것이 민지의 마지막 밥상이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두고두고 그 밥을 못 먹인 것이 한이 되어 아이가 떠난 후 몇 번이나 "그때 밥 좀 먹이자니까..." 하면서 울어야 했습니다. 누가 감히 알았겠습니까. 그것이 마지막인 줄을...

저녁 6시쯤 아빠 품에 안겨 중환자실 앞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간호사 손에 넘겨져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르륵 닫히는 그 문을 열고 뛰어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다시 내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싶었습니다.

엄마 없이 두려움과 아픔에 떨어야 하는 민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만약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줄 알았다면, 그곳에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마 품에 아빠 품에 꼭 안고서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 알았다면......

그리고 곧 6시 30분.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손발이 떨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시어머니, 아버님, 남편이 먼저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편안한 모습으로 자고 있다고 했습니다. 곧 저도 용기를 내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차마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엄마를 보면 아이가 갑자기 울면서 보챌까 봐, 그러면 더 아프게 될까 봐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을 감추며 멀리서 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간호사가 가까이 가서 보라고 했습니다. 괜찮다고...

자고 있다던 민지는 엄마가 올 것을 안 것처럼 그새 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보자 몸 여기저기에 꽂혀있는 기계들과 주사 바늘을 다 빼달라고 칭얼댔습니다.

- 민지야. 간호사 언니 말 잘 듣고 있으면 엄마가 또 올게. 알았지? 금방 나아서 집에 가자...
- 응...

평상시 무엇이든 잘 참아내던 아이는,

이번에도 잘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기특한 아이는 더 이상 보채지 않았습니다.

온통 어른들 뿐인 방에서 어린 우리 아가가 홀로 병과 싸우며 이 긴 밤을 지내야 한다니... 너무 잔인해..
왜 우리 아가에게 이토록 잔인한 고통을 주십니까. 벌을 주셔야 한다면 저에게 고통을 주세요. 더 이상 우리 민지를 힘들게 버려두지 말아 주세요. 제발....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 나왔습니다.

그래도 어쩐 일인지 곧 나아서 나올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밤새 가까이서 지켜주는 간호사와 의사가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의사 말대로 좀 더 세심한 처치를 받으면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희망이 있어 저녁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보호자가 건강해야 아이도 잘 돌볼 수 있다면서 시부모님께서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아이를 중환자실에 보내놓고, 우리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민지가 자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고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중간중간 웃음도 섞을 만큼 우리는 민지의 쾌유만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우리 모두 한결같이 내일이면 좋은 소식이 들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모두 집으로 가고 저는 지하에 있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 갔습니다. 한 귀퉁이에 누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우리 민지의 쾌유를 빌고 또 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밤 11시쯤 민지엄마를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아이가 먹고 싶어 한다고 평상시 좋아하는 과자나 음료수를 사다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많이 나아져서 이제 입맛이 돌아서 과자도 먹고 싶나 보다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 근처에 있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서 중환자실로 갔습니다. 봉투를 건네받은 간호사는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어요.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했습니다. 제발 잘 보살펴 달라며 간호사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우리 민지 잘 부탁한다고....

대기실로 돌아와 남편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민지가 잘 적응하고 있대. 곧 좋아지려나 봐..." 남편도 나도 울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병원에서의 두 번째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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