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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Apr 28. 2024

저는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1


많이 망설였습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무너지는 그 일들을 굳이 자세히 글로 적어가면서 다시 한번 절절히 밀려오는 아쉬움과 그리움에 가슴 조여야 하는 건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두 가지 마음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날아다녔습니다. '이대로 그냥 시간에 맡기면서 그날들을 잊어버리자', '아니야,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 날, 우리 민지가 가던 날을 기억할 수 없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 전 기록을 선택했습니다.

사랑하는 민지와의 마지막 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더 크게 들려옵니다.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로 인해 내 가슴이 흔적도 없이 짓물러 버린다 해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 민지가 아프기 시작한 날부터 아가천사가 된 날까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02년 1월 19일 토요일>


평범한 주말이었습니다. 아니, 조금 특별하다면 남편과 영화를 본 날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서울 큰 조카들이 우리 부부를 위해 아이들을 보살펴 주려고 왔습니다. 덕분에 남편과 저는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3시간 동안 마음 편할 수 있었고, 민지는 가장 좋아하는 오빠들에게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마 아빠가 집을 나설 때도 오빠들에게 달려드느라 우릴 돌아볼 생각도 안 했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돌아오니 여전히 민지는 언니와 함께 오빠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지요. 이쪽 오빠에게 토라지면 저쪽 오빠에게 달려가고, 저쪽 오빠에게 토라지면 이쪽 오빠에게 투정을 부리면서 가장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지요. 그런데 곤히 자던 아이가 새벽녘부터 열이 오르면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2002년 1월 20일 일요일>

밤새 잠을 설친 저는 민지를 아빠품에 안겨 병원 응급실로 보냈지요. **병원은 작지만 개인병원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목감기 진단을 받고 해열제 주사 한방 맞고 약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좀 나은 듯 민지는 다시 기운을 차려 언니와 놀았습니다. 저는 밤에 잠을 못 잤다는 이유로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민지가 떠난 며칠 후 무심코 디지털 카메라를 돌려보니 이날 언니랑 장난하면서 찍은 사진이 참 많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지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가슴이 미어집니다.


<2002년 1월 21일 월요일>

어제 응급실을 다녀왔기에 아침 일찍 늘 가던 소아과에 갔습니다. 확실한 진단을 받고 다시 약을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병원 약을 먹으면 감기 정도는 하루이틀이면 거뜬히 낫고는 했으니까요. 가벼운 감기로 진단받고 다시 약을 타온 후, 시어머니께서 민지를 봐주시러 집에 오셨고, 전 큰 애를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갔습니다. 방학특강으로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랴부랴 돌아와 보니 아이는 어제 응급실을 다녀온 후 보다 더 아파 보였습니다. 그러나 단지 감기니까 곧 나으리라는 생각만 했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빨리 낫고 오라는 선생님 말씀에 제법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2002년 1월 22일 화요일>


오늘도 어머니는 민지를 봐주시러 오셨습니다. 아픈 아이를 두고 나가기가 마음이 걸렸지만 큰 애를 또 그냥 둘 수는 없었습니다. 잠깐 스케이트장에 다녀와서 민지를 안았지만 여전히 더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밥도 잘 못 먹어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깨죽을 먹였습니다. 이것도 많이는 못 먹었습니다. 이번 감기는 좀 심하게 앓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날 밤은 배가 아프다고 보채면서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약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기약 때문에 배가 아플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요.

아... 그런데 이때부터 우리 민지는 그 지독한 바이러스와 홀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도록 때려주고 싶습니다. 아가의, 내 아가의 고통을 어찌 이리도 몰랐을 수가 있습니까. 전 엄마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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