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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Apr 28. 2024

갑자기 혈액에 이상이 있다니,,,,입원 첫 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2




<2002년 1월 23일 수요일>

아침 일찍 다시 소아과에 갔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니까 약을 바꿔 달라고. 잘 먹지도 못하고 많이 힘들어하는 민지를 위해, 선생님은 마시는 탈수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을 바꾸었지요. 아직도 감기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의사도, 저도, 아빠도, 우리 모두가...

집에 와 계시는 어머니께 또 아이를 맡기고, 큰 애를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다녀왔습니다. 방학특강이라 매일 수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감기라고 생각했고, 어머니께서 민지를 봐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니 여전히 민지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약을 바꾸어도 배는 아프다고 하고, 기운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먹지 못해서 기운이 없다> 고만 생각했습니다. 또 <잘 먹지 못하니 오줌도 안 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심한 이 엄마는 하루에 오줌을 한두 번 밖에 못하는데도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무심한 엄마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나는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평생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후에 또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오늘은 민지의 대답에 힘이 없었습니다.
- 민지야, 빨리 나아서 어린이집에 와.. 친구들이 민지 보고 싶대.
- 네....

이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민지가 사랑한 발명반 선생님은 며칠 후, 민지의 영정사진과 만나야 했습니다. 그 기막힌 심정이 눈물로 메꾸어지겠습니까. 선생님과 저는 한없이 울고, 또 울기만 했습니다.

그날 저녁쯤,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이 열로 달아 올라 발갛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더욱 기운을 잃고 잠만 자는 민지를 보면서 이제야 응급실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먹은 게 없으니 기운이 없고, 그래서 더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던 중 민지는 자꾸만 안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많이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어서 저녁준비를 마치고 안아주겠노라고 아이에게 큰소리도 쳤습니다.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한 끼 안 먹으면 어때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아이를 한껏 안아주지 않았을까요. 그날 저녁 소파에 힘없이 기대어 앉아, 안아달라고, 업어달라고 칭얼대던 민지 얼굴이 잊히지 않습니다. 숨이 막힙니다...

가여운 내 아가는 이미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단 일 분이라도, 엄마 품에 편안히 안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것을 매정하게 거절했던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조금만 있다가 안아주겠노라고...
그렇게 시간이 없을 줄 몰랐습니다. 우리 아가와 살을 맞댈 시간이 그렇게 조금 남아 있을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 시간으로나마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내 품에 꼭 안고 토닥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민지야,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엄마는 정말 몰랐어. 네가 그렇게 갑자기 떠날 줄 몰랐어... 상상도 못 했어... 안아주고 싶어. 우리 민지 살내음이 너무나 그리워. 예쁜 엄마 꺼 궁둥이가 만지고 싶어 미칠 것 같아. 내 아가야...'


저녁을 먹고, 큰 애는 할아버지 집에 내려주고, 시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말대신, 잘 다녀오겠다는 말 대신 힘없이 서로 손을 흔들며 두 자매는 멀어져 갔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와 동생의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 줄이야...  민지와 언니의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이 아쉬움을 어떻게,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저녁 8시쯤, **대 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열이 39도였습니다.  일단 열을 내리기 위해 옷을 모두 벗기고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주었습니다. 응급실을 가면 의례히 하는 피검사, x-레이 검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남편, 나, 어머니 세 사람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우리 민지가 없다고 생각해 봐"라는 말을 툭 던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닥칠 리 없다는,
자만에 찬 모습으로,
웃으면서 건진 그 말이 현실이 되었으니,
상상도 못 했던 그 일이 현실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고 잠시 후에 다시 한번 하자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감기 때문에 아이가 잘 먹지 못해 기운이 없으니 수액을 맞으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갑자기 피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순간 백혈병이라는 병명이 떠 올랐고, 제발 아니길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백혈병이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아이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백혈병이었다면...

다시 한 피검사 결과도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혈소판이 많이 부족하여 수혈을 해야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가슴이 쿵쾅 거렸습니다.

평소에 멍이 잘 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적이 없었고, 크게 아픈 적도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어쩌다 감기에 걸리면 중이염이 함께 오곤 했지만, 그것도 2주 정도 약을 먹으면 깨끗이 낫고는 했었고, 다른 잔병치레는 한 번도 안 했던 아이였습니다. 일단 결과가 좋지 않으니 입원을 하여 상태를 살펴보자고 했습니다.

수액 한번 맞으면 기운을 차리려니 생각하고 왔던 병원이었는데 혈액 쪽에 이상이 보여 입원을 해야 한다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가자 다시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응급실에서도 피가 잘 안 나와 한참을 뽑아야 했는데, 또 혈액 채취를 해야 한다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더구나 다시 뽑아야 할 양이 큰 병으로 몇 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목에서 피를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작은 목 어디에서 그 많은 피를 뽑는다는 것인지. 도저히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우리는 바깥에서 민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 제발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제발...
민지야, 엄마를 용서해 줘.
너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는 이 엄마를 용서해 줘..

그리고 곧이어 다른 검사실로 가서 피가 얼마 만에 멈추는지를 검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귀 쪽에 살짝 바늘을 찔러 저절로 피가 멈추는 시간을 쟀습니다. 19분이 나왔습니다. 15분 이상이면 다른 쪽 귀도 검사를 해야 하지만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그만해야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이미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검사가 필요 없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차라리 가망 없다는 말을 진작에 해주었더라면
그렇게 무서워하는 주사도 안 맞히고,
너무나 가고 싶어 했던 집으로 데리고 와,
보고 싶다던 언니도 다시 만나게 해 주고,
좋아하던 장난감도 안겨주고,
어린이집 친구들도 만나게 해 주고,
하고 싶다는 거, 갖고 싶다는 거 다 해주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마 아빠 품에서 편안하게 떠나게 해 주었을 텐데...
모두가 원망스럽습니다...

기운 없이 축 처지는 아이를 안고 병실로 왔습니다. 제 가슴은 이미 갈래갈래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애처로운 아이 모습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심각한 응급 환자로 판명되자 아이 침대를 이불로 온통 감싸야했습니다. 혹시라도 부딪쳐 몸 안에서 출혈이 되면, 그 피가 멈추지 않아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었습니다.

울고 있는 나에게 간호사들은 엄마가 힘을 내야 한다고, 괜찮을 것이라고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겁이 났습니다.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아이가 갑자기 혈액에 이상이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심각하게...

아이는 밤새 잠을 설치며, 손에 꽂은 주사 바늘을 빼 달라고 보채기도 하고, 안아달라, 업어달라면서 불편한 몸을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빠도 보고 싶다, 언니도 보고 싶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칭얼댔습니다.

아... 그때 언니를 불러 주었으면 좋았을걸...
그러면 언니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언니도 민지를 한 번 더 만나볼 수 있었을 텐데...
후회와 안타까움만이 제 몸을 후려칩니다.

- 민지야 빨리 나아서 집으로 가자. 그리고 엄마랑 공부도 하고, 어린이집도 가고, 언니랑 인형놀이도 하자. 색종이 접기도 하고... 우리 민지 착하니까 빨리 나을 거야...

 
밤새 아이를 달래며 저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병실에 올라와 검사한 혈액 결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혈소판을 3팩이나 수혈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동이 트면 좋은 소식이 기다릴 거야...'


이렇게 병원에서의 첫 밤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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