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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14. 2023

[오스트리아 멜크]오스트리아 시장에 가면

포도도 있고, 푸룬도 있고, 골파도 있고

멜크 수도원


멜크에서 하루를 보내고, 봄은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든다며 멜크에 이틀이나 더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멜크를 추천한 오리에게 선물로 멜크 수도원 종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겠다고 했다. 오리는 이곳을 하루만 방문해서 수도원과 정원을 둘러보았기에 아침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누구라도 깰 수밖에 없는 모닝콜이야.
늦잠 자려고 했는데, 일어날 때까지 치네...
마을에 있는 성당과 교회들이 돌아가면서 종을 치나 봐.
5분 동안 계속 종소리가 울리니 녹음하기는 딱 좋겠네!



내 방 창문 밖 모습

셋째 날 아침, 봄은 소리가 더 잘 들리는 내 방에 종소리를 녹음하러 왔다. 내 창문을 열면 멜크 수도원이 보이고, 분수가 있는 마을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분수 주변트럭과 밴이 여러 대 보였다. 흰옷을 입은 사람이 채소와 과일이 든 상자를 내리길래 광장에 있는 식당에 배달하러 왔나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낮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 길로 들어온 트럭과 밴들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이 밝아오자 등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들거나 수레를 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등장했다. 해가 뜨니 농부들이 밴과 트럭에서 선반을 내리고 물건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내 방 창문 아래 마을 장이 열린 것이다!


나도 장바구니와 지갑을 챙겨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엄마! 우리 오늘 멜크 떠나요.
많이 사면 안 돼요!


여름의 잔소리를 희미하게 들은 것도 같다.


포도 한 바구니 4.5유로


포도를 파는 분이 두 분 있었는데, 머리가 회색인  할머니가 사는 곳에서 따라 샀다. 세 가지 색 포도가 골고루 담겨있어서 양은 좀 많아 보였지만 포도를 좋아하는 여름을 생각하며 나도 한 바구니 달라고 했다.

농부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는 몸짓을 하시길래 두 번 대답하지 않도록 우쓰 코리아(남한)라고 했다. 그런데도 포도 농부는  킴정은? 이라고 되물(그때 마침 김정은이 러시아 푸틴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올 때였다). 그쪽은 놀쓰(북한), 나는 싸우(남한)에서 왔다고만 말씀드렸다. 북한사람이 멜크에서 한가롭게 장보기는 어렵다는 걸 설명하기 힘든 내 독일어 실력이 안타까웠다.


4.5유로라길래 5유로 지폐와 0.5유로 동전을 드렸더니, 단번에 1유로를 거슬러 주시며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나를 보셨다. 똑똑하다는 뜻이라고 알아들었다.


잘라서 무게를 달아 파는 햄이나 치즈는 의사소통이 힘드니 못 사겠고, 연어나 송어도 힘들고, 만만한 건 채소 가게다.


골파 한 단, 양파 두 개, 샬롯 한 개, 푸룬 세 개 2.8유로


어제 레스토랑에서 먹은 수프에 들어간 골파가 보였다. 무게가 가벼운 골파 한 단, 마트에서 못 산 양파 두 개, 자주색 샬롯 한 개(마트에서는 1킬로그램씩 파는데 나는 여행자가 아닌가), 푸룬 세 개를 바구니에 담았더니 무게를 재고 2.8유로라고 하셨다. 장바구니를 내밀자 덤으로 꽈리 열매 두 개도 넣어주셨다!


방에 올라오자마자 꽈리와 푸룬은 잘라서 샐러드에 얹어 아침으로  먹었다. 생푸룬의 효과는 강력했다. 셋 다 모두 다음날 아침 가뿐하게 화장실을 다녀왔다. 푸룬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다음 도시 장날에서는 넉넉하게 500그램을 샀다. 푸룬은 여행 내내 우리와 함께했다. 하루 한 개도 많았다. 반 개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 때,  다파를 크림치즈에 섞어서 발랐다. P아울렛 스*벅스에서 먹었던 크로와상 샌드위치에도 골파크림치즈가 들어있었다. 버터가 듬뿍 들어간 크로와상의 느끼함을 골파가 잘 잡아주었던 기억이 났다.


포도가 문제였다. 아침에 두 송이를 먹었지만 너무 많이 남았다.


양파는 내 가방에 넣었지만 포도를 여행 가방에 넣을 수는 없었다. 점심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맡기로 한 여름에게 사정해서 여름의 버스 가방에 넣었다(포도는 끝까지 달고 맛있었다).


여름은 기차에서 내려 슈타이어 숙소로 가는 길 내내 투덜거렸다. 미안해서 내가 무거운 쌤1호를 끌었는데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장보기는 즐거웠고, 나는 그음부터 여행 지에서 장날부터 아보는 여행자가 되었다.


사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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