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파,벽돌책] 4. 새의 선물 (8일 차)

삶에 냉소적인 사람이 부지런하다.

by oh오마주

[책정보] 제목 : 새의 선물, 저자 : 은희경, 장르 : 장편소설, 출판사 : 문학동네

[글정보] 제목 : [격파, 벽돌책] 4. 새의 선물, 글쓴이 : oh오마주



파트 설명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1. 일기


206쪽 : 허석은 떠난 지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 대합실에서 "편지할게" 하던 장면은 내가 머릿속에서 수십 번도 넘게 꺼내보는 동안 낡은 사진처럼 빛이 바래서 이젠 사실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 낡은 사진 속에서 했던 약속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늘 편지를 기다린다.


209쪽 : "그럼 둘이 눈이 맞은 거예요 뭐예요?"

"종구가 혼자 따라다니던 것 아니었나? 하긴 미스 리 그년이 남자라면 다 꼬리를 치니까 따라다닌 거지만. 혼자 눈 높은 척은 다 하더니 미스리 그년, 차고 간 것이 하필 또 종구야?"


211쪽 : 아줌마는 같이 살 것도 아니라면 왜 함께 도망을 치겠냐고, 도망을 아무나 치냐고 말했었다. 그 말은 물론 힘든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의 처지가 생각나서 하는 말로, 언젠가 버스를 그냥 떠나보낸 뒤 먼지 속에 도로 모습을 나타내던 아줌마 자신의 체념적 인생관이 담긴 말일 것이다.


212쪽 : 종구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단지 모험의 동반자였다. 누가 인생의 동반자와 더불어 모험을 하겠는가.


215쪽 : 그렇지 않아도 겉모습은 둥그렇고 속은 가볍다는 점에서 풍선과 닮은 점이 있는 이모는 마음속의 부력에 의해 둥실둥실 떠가듯이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중략-

그러나 이모가 나가고 난 뒤 빨랫줄 앞에 서서 이모의 월남치마를 탈탈 털어 널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은 입술을 어설프게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부산스럽기만 하고 철없기는 해도 막내딸의 하는 짓이 밉지 않은 모양이었다.


216쪽 : 첫 키스의 비밀을 듣게 된 보답으로서 이모의 카운슬러이자 국어사전, 그리고 차밍 스쿨이기도 한 나는 이모에게 첫 키스에 당면한 처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정보를 알려주었다. 언젠가 뉴스타일 양장점에 굴러다니던 여성 잡지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223쪽 : 가려운 곳을 긁는다는 것은 짜릿한 맛이 있다. 바로 그 맛을 위해 할머니는 매일 가려운 곳을 일부러 찾는 건 아닐까. 가렵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가려운 곳이 없으면 어떻게 긁는 순간의 쾌감을 느낄 것인가. 할머니가 가려움증을 찾듯이 나도 일부러 그리움을 불러들이는 것인가.


224쪽 :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 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중략-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나는 그것을 광진테라 아저씨 박광진 씨를 통해서 알았다.

*냉소 :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 또는 그런 웃음.

1. 진희가 바라보는 세상


행동의 주체가 아닌 누군가의 행동을 지켜보는 진희는 말이 빠르다. 혹은 읽어나가는 속도가 빨랐다. 진희가 자신의 삶을 통찰하면서 하는 말들은 가슴에 스며들었다. 어제 셀프 바가 있는 고깃집에서 후식을 먹기 위해 식혜를 종이컵에 따랐다. 3월이면 4학년이 되는 아들이 자신은 레몬티를 먹겠다고 떠달라고 했다. 가보니 상추겉절이 간장소스에 레몬 슬라이스가 몇 조각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아는 만큼만 보고, 보는 만큼만 생각한다. 12살이면 겨우 5학년인 진희의 여름방학, 진희가 바라보는 세상에 마음 아프다. '어린이로 사는 시간이 길수록 행복하다'라는 말이 괜히 걸린다. 내 시선이 잘 살고 있는 진희를 불쌍하게 보는 것만 같다. 어른이지만 12살 진희가 바라보는 세상에 공감했다. 나 역시 12살에 머물러 있다. 어린 진희가 어린이로 더 길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2. 각 장의 마지막은 '광진 테라'아저씨의 이야기로 끝난다.


진희가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 박광진이라고 확신한다. 언젠가 한 번은 만날지 모르는 진희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박광진과 다르지 않은 사람일 것 같다. 마음으로는 재성이 엄마가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미스리에게 배신까지 당했을 때, 하늘을 같이 원망했다. 진희가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224쪽)라고 했을 때, 재성이 엄마 순분이 떠올랐다. 가정, 자식, 남편, 이런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삶에 냉소적이기 때문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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