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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와우 Jul 26. 2021

유난히 느린 우리 집 셋째 식물

너만의 이파리들


개운죽 첫째, 둘째, 셋째


몇 개월 전 집에 개운죽 세 개를 들였다. 얇고도 단단한 대와 맑은 연둣빛과 초록빛 그 사이의 색이 참 매력적인 식물이었다. 물만 잘 갈아주어도 쑥쑥 잘 자랐다. 이름을 무엇으로 지어줄까, 하다가 키 순서대로 일목이, 이목이, 삼목이라고 지어주었다.

 

자그마한 이파리들이 하나둘씩 힘을 내서 크기 시작하더니 이름을 따라서인지 일목이, 이목이, 삼목이 순으로 이파리의 길이가 길어졌다. 그렇게 며칠 지켜보는데 유독 삼목이의 이파리들의 성장 속도가 더딘 듯하였다. 조금 걱정도 되고 이름을 좀 더 강한 걸로 지어줬어야 했나, 삼목이라는 이름이 서운했나 하는 생각으로 삼목이를 주의 깊게 보았다. 한 두어 달 지났을까 나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삼목이는 유독 풍성하고 다채로운 잎을 키워내며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났다.

 

‘이렇게 많은 이파리들을 밀어내려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했구나.’


일목이의 잎은 쭉쭉 뻗는 매력이 있고, 삼목이는 풍성하게 많은 이파리들을 오밀조밀 피워내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목이는 일목이와 삼목이의 장점을 다 갖춰 적정한 매력으로 자라고 있었다.

 

조용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같은 종임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자라는 개운죽들을 보며 인간들이 그토록 찾아서 헤매는 ‘중심’을 이 아이들은 그냥 자연스레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일목이가 더 빨리 자란다고 삼목이를 걱정하던 마음, 잎이 너무 작은 건 아닐까, 이름을 잘못 지어준 걸까 하는 걱정은 지켜보던 한 인간의 것이었을 뿐 이 개운죽들은 나의 걱정에 동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라났다.

 

셋째의 위로


그동안 걱정했던 삼목이를 보며 나는  근래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는데,  느리다고 보여졌던 모습과 여러 잎을 하나하나 피워내는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평생 가져가야  숙제는 스스로 자꾸 느리다고 생각하는 조급함과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을 자꾸만 공격하는 태도인데, 그토록 걱정했던 삼목이가 그저 조용히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걱정하는 나의 ‘느림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항상 나는 주변 ‘다재다능하다는 평가에 대해 어느  켠으로는 ‘하나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지 못하다.’라는 갈증을 스스로 느껴왔다. 이것도 저것도 어느 정도   있다는  내면의 갈등을 자꾸만 일으켰다. 이래서 저래서   있고  동시에 이래서 저래서 못한다는 이유도 되었다. 마치 매일 멈추지 못하는 파도 같았다.

 

이런 일렁이는 고민이 별거 아니라는 듯, 풍성하게 잎을 피워낸 삼목이를 보며 나도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나의 이파리들을 하나하나 피워낼 수 있겠다는 그런 용기가 생겨났다. 느리다는 것, 다양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다 상대적인 것일지 모른다. 결국 내가 세운 기준에 모자라면 매번 나는 느린 것이고, 스스로 쓸 데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유난히 느려 보였던 셋째가 자신만의 세상에서는 느린 것이 아니었음을 안 것처럼 나도 중심을 가지고 그리 살아야겠다,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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