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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Mar 24. 2024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에 묻혀!

몇 안 되는 좋은 기억들도 너무 많은 나쁜 기억들에 묻히는 게 결과다.


소소하게라도 남은 좋은 기억들 보다 나쁜 기억들이 더 많다. 결국 몇 개 안 되는 좋은 기억들은 더 많은 나쁜 기억들에 묻혀 파탄에 이른다.


더 상처 받고 고생하기 전에 끝내라는 주변의 충고들은 결국 희망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잠시 지옥 같이 힘든 시간은 결국 다 지나가 버릴 것이다. 잠시 받는 지원들, 그리고 앞으로 받을 한 부모 가정으로서의 지원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은 아니다.



 






"언니, 청소년증 신청 했어요?"


"벌써?"


"응, 언니. 만 9세부터래요. 우리 다 같이 신청해요. 애들 데리고 다 같이 사진 찍으러 갈까요?"


동네에 같은 학교 학부모로 친하게 지내는 동생한테 톡이 왔다. 벌써 우리 애들이 청소년 증을 신청할 나이가 된 거다. 언제 이렇게 컷을까?


나는 요즘 한 부모 가정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들에 대해서도 알아 보는 중이다. 미리 대비를 하고 알아 둬야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변호사 선임에 소송이란 것도 처음인데, 한 부모 가정 지원에 대한 정보가 꽤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소송이 언제 끝날지 지금으로선 장담은 없지만, 먼저 변호사 선임을 하고 진행하고 있던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해서는 4월 초에 판결이 난다고 한다. 상간녀가 의견서 답변을 하지 않고 있고(소장을 읽었다면 본인이 한 통화가 그대로 서류로 낱낱이 적혀 있는데 낯짝이 있으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싶다. 본인도 애를 키우는 엄마라는 사람이...), 안 그래도 증거가 너무나 명백한 빼박인데다  4월 초까지 답변을 제출하지 않으면 어차피 나의 완전한 승소로 판결 난다고 변호사가 그랬다. 문제는 위자료를 바로 입금해 주느냐, 결국 모든 걸 압류 당하며 시간을 끄느냐다.





한부모 가정 지원에 대해 미리 정보도 알겸 인터넷 검색도 하고 오랜만에 집에 안 들오는 남의 편 덕분에 며칠을 아들과 편하게 집에서 뒹굴고 있는데 친정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쌀 없다며? 즉석밥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 쌀 없이 3, 4일을 보냈어. 나와라."


나랑 아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후딱 달려 나갔다. 친정 아빠가 사 주시는 점심 밥을 맛있게 먹고, 커피와 빵도 맛있게 흡입 했다. 배고 팠는데, 너무나도 맛있었다. 

아들은 할아버지가 사 준 포켓몬 카드를 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중학생쯤 돼 보이느 딸 둘과 엄마, 아빠가 다정히 앉아서 웃고 장난 치며 빵과 음료를 먹는 모습을 보게 됐다. 아빠라는 분이 딸들에게 다정하게 장난도 치며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그러고 보면 남의 편과 아주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생전 아들 방학 때 "어디 가고 싶어?", "우리 캠핑이라도 갈까?"란 질문 같은 거 물어봐 주지도 않던 남의 편이었다. 그런데 2년 전에는 왠일로 아들에게 "방학 때 가고 싶은 곳 있어?"라고 묻는 거다. 나는 해가 서쪽에서 떴나 싶어 그런 남의 편을 신기하게 쳐다 봤었다.


"레고랜드 가고 싶어."


아들은 안 그래도 나에게 방학 다가 오기  며칠 전부터 얘기하던 레고랜드 얘기를 꺼냈다. 남의 편은 또 왠일로 흔쾌히 가자고 했다. 그러나 결국 표를 끊는 건 내 신용카드로 내가 해야할 몫이었다. (그럼 그렇지 했다.)

그래도 애 방학이라고  남의 편이 먼저 애한테 그런 걸 묻는 게 어디냐 싶어 재밌게 갔다 오자 했었다. 


가기로 한 날 우리는 오전 늦게 남의 편이 운전하는 내 차를 끌고 아들과 강원도로 향했다. 점심 때쯤 근처에 도착해 주변에 있는 오리 백숙인가 했던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 밥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 했다. 


주문을 하고 셋이서 같이 밥을 먹는데, 대화를 하다가 아들이 그저 어린 마음에 철없이 말했다.


"나를 위해서 온 거잖아. 아빠니까 해 줘야지."


그랬더니 남의 편은 갑자기 욱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바쁜데 시간 내서 이런 데 오는 게 당연한 거야?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됐어. 다 필요 없어. 집에 가."


어이가 없었다. 아들이 그냥 단순한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이었다. 그냥 웃으며 그건 그런데, 하며 잘 얘기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결제를 하고 식당에서 나와 남의 편은 진짜로 차를 홱 돌려 버렸다. 

아들은 자신이 뭘 잘못한 건지, 너무나도 억울한 표정으로 울상이 돼 아무말 없이 앉아 있었다. 건드리면 더 화를 낼 걸 알기에 나는 애 앞에서 싸우기도 싫고, 또 욕을 할까봐 아들을 살짝 안아 주며 속으로 한숨만 쉬고 있었다.


 한 20분을 그렇게 집으로 돌아 갈듯 오던 길로 차를 몰더니 남의 편은 다시 차를 돌렸다. 운전하며 생각해 보니 레고랜드는 해외 회사에서 운영하고 파크이고, 당일 환불이 안 되는 게 생각이 난 건지 그대로 레고랜드로 직행 했다.

어쨌든 그날 다행히 비는 살짝 내렸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재미있게 놀고 집에 오긴 했다.

(물론 식당에서의 밥 값만 남의 편이 내고 그 안에서의 결제는 전부 내가 내 카드로 했다.)





내 생전 이혼을 선택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가 한 부모 가정의 길을 택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살면서 알게 됐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고, 사람은 고쳐서 쓸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어른인 나도, 아이인 아들도, 결국 사람의 기억 속에 몇 가지 좋은 기억들이 있어도 나쁜 기억들과 상처 받은 기억이 더욱더 많다면 몇 안 되는 좋은 기억들은 결국 그 산더미 같은 나쁜 기억들에 묻힌다. 

그리고 어린 아들도 사람이다. 무조건,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랑 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에 튼튼한 애착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믿음과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 남의 편이 아무리 아들과 나에게 "네 엄마랑 살면 경제력 없어서 학원도 못 다녀.", "아빠 없는 애 만들려는 네가 잘하는 짓이냐?"라고 협박을 한들 기본적으로, 정서적으로 사람으로서의 선택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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