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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pr 22. 2024

접촉사고...막장 드라마 주인공일까요?

그냥 작은 충돌 사고가 아니다. 너희가 준 상처는...


내 차가 작은 사고를 당했다. 가만히 주차된 내 차를 하얀색 SUV가 와서 긁었다.

아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 막 주문을 하고 앉았는데 도로와 주차 관리를 하시던 모범 운전자 분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달려 갔다.


나와 상대 차 주는 보험사를 불렀고, 내 차의 보험 담당자는 가해자 차량의 보험 담당자와 보상 문제를 잘 마무리하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돌아서는 순간 이상하게도 상간녀와 남의 편의 통화 내용을 생각했다.



상간녀  : 나 비 내리는 날이 좋아. 이런 날은 홀딱 벗고 같이 부비부비 해야하는데... 집에 갈 거야?


남의 편 : 가야지. 집에 있으면 그 새끼(어린 아들)가 자꾸 뭐 만들어 달래서 짜증나. 너한테 갈까?

           라면 끓인대.


상간녀 : 언니(나를 칭함) 또 꽃게 이런 거 넣고 끓이는 거 아냐? 와서 우리 딸이랑 먹고가.

그리고 블랙박스 지우고 들어가. 언니(나를 칭함)가 들을라. 내 말 들어. 자다가도 떡이 나와.


남의 편 : 그래. 떡을 친다.


상간녀 : 누구랑 떡 치게? 나랑?


남의 편 : 너만 보여.


상간녀 : 귀여워. 너 닮은 딸 낳고 싶다. 언니(나를 칭)가 낳아도 나 안 주겠지? 대리모라도 알아 봐야 겠어.


그랬구나, 너희들이 내게 듣게 한 할큄은 그냥 작은 충돌 사고가 아니다.  

끼가 넘치는, 정말 날 것의 수준 낮은 대화들로 깔깔 거리는 너희 둘의 대화는 더한 내용들도 있었다. 나는 그게 가만히 있는 나에게 다가온 너희 둘의 할큄이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랬다. 그건 그냥 작은 접촉 사고가 아니었다.

 








전화 벨이 울렸다. 그녀의 전화가 아무 일 없이 생활하고 있고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걸려온 건 작년 초인 봄 되기 직전의 겨울이었다.


"차 번호판 보고 이사님 와이프 맞으신 거 같아서 차에 적힌 번호 보고 전화 했어요."


"누구시죠?"


"이사님께 서류 전달해 드려야해서요. 만나기로해 지금 집 아래 와 있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요."


"어머, 그래요? 아직 안 들어 왔어요. 들어 와서 기다리세요."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처음 알게 됐다.


그랬는데, 분명 와이프에게 전화 걸었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는데 위자료 청구 소송 답변서에 이혼남인 줄 알았다고 적었다. 이혼 남을 만나면서 당당하게 집으로 올라와 벨을 누르지 못하고 1층에서 그것도 와이프 맞으시구나 하며 전화를 거는 게 앞 뒤가 맞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녀는 올해초 SNS에 자신에 대한 주변의 편견과 오해들로 힘들다는 글을 올렸었다. 그 글을 읽고, 이게 무슨 피해의식인가 싶어 그 글을 캡쳐 떠서 변호사에까지 보냈다.


정말 주변의 오해이고 편견인가?


나는 드라마화 할 수 있는 소설들을 쓰고 싶던 차다.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캐릭터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물 구성을 해야 할까? 어떤 사연들을 부여해야 할까?

이런 캐릭터는 남에게 자신이 준 상처들을 어떻게 대하는 모습으로 그려내야 할까? 어떤 직업으로 설정해야 할까?


나는 남의 편을 드라마에서 캐릭터화 한다면 어떻게 그 인물을 구성해야 할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의 편은 경찰에게까지 내가 상간녀에게는 소송 했지만 자신에게는 소송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나는 분명 이혼을 통보 했고, 변호사에게 서류 갈거니까 애 앞애서 자꾸 싸움 걸지 말고 변호사 통해 나에게 얘기하라고 까지 했다.


직장으로 이혼 소장이 전달 되고 있은지 열흘이 넘어 가고 있다. 법원에서 이혼 소장 송달 명령이 떨어진 건 실제적으로 3월 말이다. 아이를 위해 직장으로 보내 달라 부탁 했는데도, 법원에서는 직장과 자택으로 이혼 소장을 동시에 보냈다. 내가 우체부를 맞이 했고, 이 서류는 가족도 대신 받을 수 없다며 반송으로 가져 가셨다. 내가 대신 받아 줄 생각도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저런 남자가 뒤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구성해야 할까? 아니면 뒤에서도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뻔뻔함으로 그려 내야 할까?


시대가 변했다. 내가 어릴 때는 악역들이 다 죽는 역활로만 나왔다. 악역들은 그저 악역에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와 영화는 다르다. 악역들이 나쁜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들도 사연이 있다. 알고 보면 그들도 자기들이 평범하게 살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는 그 구석을 보여 준다.


다시 작가로서 소설을 구성해 써 내려면 저런 인물들을 어떻게 그려내고 어떤 캐릭터로 써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치닫고 있다.








고민 했다. 정말 고민 많이 했다. 방송국 비밀 게시판에 사연을 남길 때도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내 아들은 끝까지 아무것도 모르길 바래서다. 아니, 성인이 되면 다 얘기해 줄 생각이다. 아직은 아닐 뿐이다.

그런데 점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혼한다는 사회적 편견 속에 나와 내 아들을 가두기 싫어진다. 나는 당당하다. 내 아들은 남의 편과 다르다.

그리고 나와 아들은 내 명의인, 내 친정에서 해 준, 남의 편이 단 돈 일원 한 푼도 보태지 않고 몸만 들어 와 산 내 집에서 편하게 살 권리가 있다. 남의 편이 낸 접촉 사고에 대한 보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소송 해 봤자 소용 없다고 법을 비웃고, 나를 조롱하는 저 둘에게 나와 내 아들이 고통 당하고 정서적인 괴롭힘을 당할 이유가 없다.

경찰도 그만 부르고 싶은 간절함에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분들께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또한 나는 다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풍처럼 글을 써 올리고 있다. 다시 작가이고 싶다. 소설이든, 드라마 대본이든 쉼 없도록 끊임없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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