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을 받고,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은 그였다.
저녁에 집으로 와 아들의 저녁 밥상을 차려 주고, 나는 또 카레를 끓였다. 작은 한 냄비 끓이면 하루 세 끼 며칠은 끼니 걱정이 없었다. 밥만 있으면 됐다.
아들의 밥상은 평소처럼 변함없이 차려 주고 있다.
"몇 시야?"
"6시."
아들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재빨리 번갈아 가며 샤워를 했다. 그리고 얼른 저녁밥을 차려 먹고, 양치를 했다. 나는 빠르게 설거지까지 끝냈다. 그리고 우리는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그런데 10분 정도 있다가 대문 도어키 숫자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는 침대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방 문을 국게 닫고 문을 잠궜다.
이번 달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 못하고 있다. 멍하다. 이제 닥칠 일들과 독촉들에 벌써 기운이 빠진다.
"이번 생일은 그냥 엄마랑 하자."
"친구들 못 불러?"
"엄마가 대신 내년에 꼭 태권도 학원에서 생일 파티해 줄게."
나는 새끼 손가락을 아들에게 내밀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새끼 손가락을 꼭 잡았다.
"내년엔 진짜 해 줘야해?"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을 안아 줬다.
며칠 있으면 아들 생일인데 올해는 생일 파티도 못하게 됐다. 아들은 분명 아쉬우면서도 엄마르 위해 한 발 뒤로 물러나 줬다.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날수록 그에 대한 증오와 미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러게 그 통화는 왜 들어 가지고 그래? 뭘 박을 뻔했는데? 무슨 차를?"
내가 내 차 블랙박스를 확인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되려 나를 타박하며 화를 냈다. 발로 뻥 차 주고 싶었다.
"변호사 쓸 돈은 또 어디서 났어? 네가 뭔데 변호사를 써서 소송을 걸어? 네가 뭔데 나한테 묻지도 않고 이혼을 걸어?"
되려 나를 비난하는 그의 말이 내게 더욱 큰 분노를 일으키며 가슴에 꽂혔다. 자신의 의견이 하늘이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입 다물고 가만 있으란 그의 뻔뻔함이 지겹도록 꼴보기 싫어졌다. 그런 생각 하면 안되는데, 정말 막장 같은 성장 환경에서 자라서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은 생각까지 든 게 사실이다.
"한 쪽 귀만 그런다고?"
"네."
"요즘 신경 많이 쓰거나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일 있어?"
청소기를 돌리는데 오른쪽 귀에서 잡음 같은 게 들렸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열흘이 넘도록 일정하게 계속 됐다. 아주 심히지는 않고, 하루에 두 세 번 정도의 짧은 잡음이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뭘 할때면 한쪽 귀에서 꼭 전기줄에 전기가 거의 사그라들 때 찌질하게 나는 듯한 그런 소리가 울린다.
나는 동네에 단골 이비인후과로 갔다. 아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나와 아들을 봐 온 의사 선생님께선 대뜸 무슨 일 있느냐는 질문부터 하셨다.
"그냥 요즘 신경쓸 일이 많기는 해요."
의사 선생님은 귀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시며, 걱정해 주셨다. 신경 쓰는 일을 좀 내려 놓을 수 있음 내려 놓고, 스트레스를 되도록 안 받는 게 제일 좋다고도 하시며 약을 지어 주셨다.
"되도록이면 수액도 좀 맞아. 스트레스 때문에 기력도 약해졌을 수 있어."
사실 몸도 좀 피곤하고 무기력하니 힘들긴 했다. 나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들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의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얌전히 병원의 수액실 침대에 누워 한 시간 동안 수액을 맞았다.
"진단서 보낼까요? 힘들었는지 생전 처음으로 이명이란 게 걸렸어요. 이것도 법적으로 도움이 되실까요?"
병원을 나오면서 일부러 변호사에게도 문자도 남겨 놨다. 안그래도 변호사는 나에게, 이렇게 꼼꼼하게 방대한 증거를 주시는 분은 처음 봤다고 했다.
나도 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30년지기 단짝 친구가 내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람을 미워하고, 모든걸 뒤집어 엎을 정도로 화 내는 모습을 여태까지 두 세 번 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누군가를 최고의 분노로 미워하며 끝내려 하고 있다. 결심한 만큼, 한 번 제대로 화가 나면 독하고 무서워지는 내가 한 달 동안 허술하게 준비하고 변호사를 선임 했을리 없다.
몸 안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생전 처음으로 해롭게 소비 되고 있는 만큼 내가 결심한 대로 이혼을 해야 했다.
"쉬운 게 없네. 솔직히 힘들다. 각오는 했지만, 법이란 게 이렇게 시간이 질질 끌리고,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하는 싸움인지 처음 알았어. 형사 공무원 딸로 살던 내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다 하다니. 진짜 기가 막힌다."
"내가 네 상황이라도 이혼 했어. 다들 참고 산다고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참아? 너는 그 모욕적이고 더러운 통화 내용을 어떻게 듣고 있었어? 너도 참 대단하다. 나 같으면 너무 역겁고 더러워서 듣고 있기도 힘들었을 거 같다."
"그냥 처음엔, 잘 논다 싶은 게 기가 막히더라고. 더구나 내 신용 카드로 지네들 모텔도 결제 했더라."
"뭐? 진짜 미쳤다. 하려면 지네들 걸로 하지, 그딴 짓을 저지르면서 거지같이 네 신용 카드로 결제를 해? 아니 지가 무슨 너랑 애한테 자상하게, 정 있게 하길 했어. 돈이라도 많이 벌어서 너 호강을 시켜 주길 했어. 네가 지한테 얼마나 맞춰 주고, 잘해 줬는데 동물도 자기한테 잘해 준 사람한테는 이렇게 안하겠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고, 너랑 애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 싶으면서도, 솔직히 나라도 이혼 하겠다. 그동안 그렇게 참아 줬는데 이걸 또 어떻게 참아 주겠어."
단짝 친구랑 전화를 끊고 불도 켜지 않고 앉아 있는 거실에서 꿈쩍도 안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텅 빈 집 안에 혼자 앉아 있는 게 일상이었는데도 왜 이리 우울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내 명의로 된 나의 집인데 그가 저질러 놓은 파탄의 시작으로 인해 내 집이 내 집 같지 않았다. 불편하고, 답답하고, 불편했다.
내가 내 명의의 집에서 왜 아들과 가해자인 그 때문에 방 문을 꼭 닫아 잠그고 숨어 들어 칩거를 해야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불편하고 힘들어야 할 사람은 그였다. 벌을 받고,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은 그였다.
브런치에 내 시집 "모른다 아직은"과 동시집 "지구 그리고 건식이"가 출간 됐다. 시집은 장수가 50페이지가 넘지 않아 전자 도서로만 출간 됐다. 동시집은 전자 책과 종이책이 동시에 출간 됐다. 브런치 서점에도 공개 됐다.
고맙게도 출간 시작점에서 3권이 판매 됐다. 간간이 응원 대글로 힘을 주신 분들께도 너무 감사할 뿐이다.
오늘 연재 소설 써 올리는 날인데 노트북과 노트북 타자만 멍하게 쳐다 보고 있다. 어느 정도 머리 속에 내용이 있고, 정리해 놨는데도 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