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끝났다.

친정 엄마의 1기 종양 제거 수술이 끝났다.

by OH 작가




아들이 학교에서 어버이 날을 위해 종이 카네이션을 만들고 카드를 써 왔다. 엄마인 나한테만 썼단다.


'요즘 우리 둘 다 힘들자나. 내가 쿠폰으로 안마도 해 주고 집 안 정리 정돈도 할게요. 힘든데도 나 매일 학교랑 학원에 보내줘서 고마워요. 주말에 친구들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씌여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또 눈물이 났다. 글 아래에 그려진 빨간 하트가 아들의 마무리였다.









나는 아들을 학교에 등교 시키자마자 엄마의 수술이 있을 대학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동네에 대학 병원이 있어서 다행인가 싶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병원 건너편에 있는 파리 바게트 카페로 갔다. 언니가 준 모바일 상품권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금액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밖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샌드위치와 김이 오르는 커피가 나왔지만 나는 테이블 위에 놓고 멍하니 창 밖에 내리는 비만 쳐다 봤다. 솔직히 뭘 씹어서 넘길 입맛을 없었다. 겨우 샌드위치 하나를 먹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도저히 넘어갈 거 같지 않았다. 남동생에게 카톡을 보내 놓고, 커피도 찔끔찔금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는 비만 멍하니 쳐다 봤다.

왜인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차가 막히네. 이제 다 도착해 가.'


남동생에게 답장이 왔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 개 남은 샌드위치와 반도 안 마신 듯한 커피를 카운터에 돌려 드리고 카페를 나왔다.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수술실이 몇 층인지 확인 하고 수술실 앞으로 찾아 갔다. 복도 벽 위쪽에 수술실이라 써 있는 글씨를 보는데 너무 낯설었다. 처음이었다. 수술실이란 글씨가 쓰여 있는 병원 복도을 가 볼 일이 생전 없었다. 수술실 앞 자체도 처음 가 봤다. 수실실 앞에는 전자판 모니터도 있었다. 그 모니터에는 수술 일정이 띄워져 있었다.

그런데 수술 현황 모니터에 엄마 이름이 없었다. 나는 다시 1층으로 가 남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수술실 모니터에 엄마 이름이 없던데?'


'지금 도착 했어. 일단 내가 입원실에 가 볼게.'


나는 1층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남동생은 한 10분 있다가 전화가 왔다.


"어디야?"


"1층."


"1층 어디?"


"에스컬레이터 옆에."


그제야 나는 남동생을 발견했다. 남동생과 나는 조용히 근처 스타벅스 카페로 갔다. 엄마는 이제야 수술실로 들어 가셨다며, 차가 막히는 바람에 자신도 수술실 들어 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단다.


요즘 내 사정을 잘 아는 남동생이 커피를 주문해 줬다. 나는 남동생과 커피를 마시며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엄마가 집에 수리할 있어 사람 올 거라고 했단다. 아빠는 엄마가 일러준 대로 집에서 일 처리하고 오시느라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나랑 남동생이랑 1시간 정도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을때 오셨다. 우리 셋은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았지만 솔직히 서로 말이 많지 않았다.


우리 친정은 워낙들 건강해서 수술이란 것도 처음이고, 몸에 칼 대는 수술 자체가 처음이었다. 의사가 1기고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지만 집 안에 이런 수술 자체가 처음인 남동생과 나와 아빠는 평소처럼 말이 많지 않았다.


한 시간 30분 정도 기다렸을 때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셋은 다시 병원 건물로 들어 갔다. 그런데 입원실 방문은 한 번에 한 사람 밖에 안된다고 한다. 방문증도 보호자 중 단 한 명만 발급 받을 수 있단다.

일단 아빠가 올라 가셨다. 나는 그냥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40분 정도 지나서 아빠가 내려오시고 이번엔 남동생이 올라갔다.


"아구 야, 그래도 수술이라고 칼 댄 곳이 아픈지 울고 있더라. 마음이 그렇더라."


아빠는 10분 정도 엄마를 달래 주셨고, 진정제가 투여된 링거를 다 맞은 후에야 엄마는 괜찮다고 했단다. 나는 또 눈물이 났다. 그냥 눈물이 났다. 나는 아빠 옆에서 조용히 울었다.

40분 정도 지나서 남동생이 내려 왔고, 나는 엄마를 배려하느라 엄마 얼굴을 보러 올라갈 수 없었다. 수술한 의사는 수술이 종일 밀려 있어 당일 면담을 할 수 없다고 했단다

남동생과 아빠는 수술 중간이나 끝나고 따로 연락이 없었음 수술 잘 끝난 거니까 걱정하지 말자며 점심 밥을 먹으러 가자 했다. 우리 셋은 근처에 오래된 생선 구이 집으로 갔다.

밥 먹는 내내, 남동생과 아빠는 나보고 팍팍 먹으라며 나를 챙기기 바빴다.


"이것도 먹어. 팍팍 먹어. 그래야 힘내지."


"내 조카 지키고 그 새끼랑 싸우려면 많이 먹어. 많이 먹어."


남동생과 아빠도 마음이 그닥 편하지는 않을 텐데 둘 다 나를 챙기느라 바빴다.

나는 그런 둘을 위해 커피 값도, 밥값도, 병원 비도, 병원 주차비도 한 푼 보태지 못했다. 남동생과 아빠가 지금은 과정이라 힘들 수 밖에 없으니 신경 쓰지 말란다. 빨리 정리 다 끝내고, 나만 쳐다 보는 아들과 잘 생각만 하란다. 약해지지 말란다.










"좋겠다. 건물 물려 받아서. 이제 건물주야?"


"야, 건물주 소리 하지도 마."


친구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왠만해서 소리 지르는 애가 아니었다. 그런데 속이 터진다는 목소리로 화를 냈다.


"내가 내 부모가 노력한 재산 물려 받는데 뭔 세금이 그렇게 어마해? 몇 십억 짜리도 아니고 그 건물 하나 나눠 받으려고 세금내느라 대출 받았어. 받아도 세금이 걱정이더라. 내 부모가 재산 늘리는데 뭐 해 준 거 있다고, 지네가 뭔데 세금을 이렇게까지 때려."


나도 한숨이 나왔다. 아빠가 얼마 전에 전해 준 말이 생각나서였다.


"지금 너네들한테 현금으로는 5천만원 씩 밖에 못 줘. 그리고 10년 있다가 또 5천 만원씩 줄 수 있대. 안 그럼 세금만 더 엄청나."


내 능력으로 성공해 살고 싶었다. 외할아버지가 수도권 바로 부근 시골에서 100억대 자산가였던, 그런 외할아버지가 아들들 밖에 몰라 아들에게 먼저 30억을 줬건 말건, 해외에 있는 이모가 건물도 있고 돈이 많건, 막내 삼촌이 60평에 살며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외숙모와 청담동에 건물도 있는 장모를 가졌던 말던, 내 이름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나이 들며 조부고, 친척이고 다 소용 없다는 걸 느끼는 게 성인이었다. 부모가 여유가 있어도, 내가 내 힘으로 성공해 큰 소리치지 않으면 주눅 들고 대접도 못 받는다는 걸, 나는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친척들 덕에 뼈져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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