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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pr 28. 2024

독하고 단호히 헤어지는 중 (1차 변론기일 잡힘)

이제 상대의 의도와 생각 따윈 관심 없다. 재판은 진행될 거다.




상간녀 위자료 청구 소송의 1차 변론 기일이 잡혔다. 6월이다. 변호사가 5월로 앞당겨 끝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재판이 밀려 있어서 그 날 밖에 없다고 했단다.

1차 변론하고 2차 변론 기일을 잡을지 판결을 낼지를 판사가 결정한단다.


가만히 창밖에 심어진 작은 꽃을 바라 보았다.  

그 꽃은 자신의 계절과 시기를 다하여 시들면 볼 수 없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꽃들은 자신의 시듦을 불평하거나 투덜돠지 않더라고요.

자신의  때가 되면 그저 조용히 또 꽃을 피울 뿐...








어제는 아들의 생일이었다. 친정 아빠와 지인들의 축하 파티로 나와 아들은 즐겁고 외롭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집, 직장으로 이혼 소장을 법원에서 송달 시킨 게 3월 27일이었다. 이혼 소장은 주소불명으로 돌어왔다.

변호사와 난 근교 동네로 이사한 직장 주소를 금새 찾아 냈고, 다시 법원에서는 4월9일에 이혼 소장을 송달 시켰다. 주소는 맞았지만, 수취인 불명으로 돌어 왔다. 회사 임원인데 직장에 없을 리는 없다 본다. 없다고 하는 거겠지?!

결국 변호사는 특별 송달을 법원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상간녀 답변서에는 분명, 남의 편이 이혼한다고 매달려 다시 상간녀가 남의 편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남의 편과 상간녀가 돈 문제로도 얽혀 있어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있다고까지 써 있다.

그런 사람이 왜 꼬박꼬박 집에 들어와 나와 아들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힐까?


아는 분들은 상간녀가 위자료 청구 소송 취하 시키고 돈 챙겨 나오라고 조정하고 있는 걸거라고 한다. 나도 그 생각은 하고 있다.

남의 편이 그랬다. 취하하고 위자료 변호사비 못 준다고,  친권 포기서에 사인 못해 준다고 말이다. 경찰 출동이 몇 번 있었기에 어차피 양육권은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엄마랑 살겠다는 아들의 의견이 너무 확실하다.


나와 아들은 불편하게, 독하게 남의  편이 짐 챙겨 나가 주길 기다리고 있다.


다들 남의 편이 매일 집에 들어오는 걸 너무 특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하며 혀를 차고 있다.


가까운 지인으로서 이 사태를 알고 있는 형부와 언니는 합의를 해 빨리 끝내라고 한다. 남의 편의 행동이 너무 특이하고 이해가 안 가는데다 넘 이기적이란다.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어린 아들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태도에 다들 질려 있는 게 사실이다.


친정 아빠는 엄마의 수술을 앞두고 딸내미와 손자가 걱정돼 두 번째 몸살 앓이 중이시다.

나는 친정 아빠의 마음과 몸이 걱정 된다. 사랑하는 친정 식구들이 내 일로 신경이 곤두선 채 근심 가득인 게 아프다.

친정 아빠와 남동생은 사람이 자기 잘못조차 인정 안하는, 도저히 인간이 아니라고 진짜 주먹의 떨림을 이를 악물고 참고 있다. 상처 줘 놓고 미안하긴 커녕 더 상처만 주고 있다.


친정 아빠는 절대 합의해 주지 말라신다.

나도 남의 편과 상간녀가 가정에 상처를 주고 무너뜨린 것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으로  이기적이지 않은 합의를 원했다면 차라리 합의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기막히고 되려 자신들이 원고인 척 피해 의식으로 이 소송을 대하는 그 둘의 태도에 질렸다.

일 원 한 푼 없이 몸만 들어와 살아 놓고 당당히 받아 나갈 게 있다며 재산 분할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이 저렇게도 안하무인이고 뻔뻔할 수 있구나를 그 둘을 통해 느끼고 있다.

오히려 둘이서 나에게 줘야할 위자료 합이 더 크다는걸 인식 못하는 거 같다. 뭘 믿고 법보다 자신들이 더 질났다고 조롱까지 하는 걸까?


나는 독하게 압류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다. 그 둘이 사회 생활에 큰 지장이 섕기고, 생활에 어려움이 생기는 걸 배려해 줄 여지는 그 동안의 둘의 행태로 이미  배제 시켰다.


저 작은 꽃들도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받아 들이는데 저 둘은 자신들이 상대의 가슴과 마음에 선명하게 찔러 넣은 상처 자국들을 외면하고 있다. 저 작은 꽃들보다도 못하다.

사람의 마음을 찔러 피를 흘 리게 하고도 뭐가 뭔지 모를 수도 있구나 싶어 뇌가 없어 보인다. 심장은 뛰고 있는데 가슴과 마음이 결여된 잉여 인간인가 싶다.


나와 아들은 이 주말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집에서 편히 밥을 챙겨 먹지 못한 채 핸드폰과 태블릿을 챙겨 후다닥 외출을 했다.

남의 편은 그러든지 말든지 집 소파에 자리잡고 누워 TV를 보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있다. 스마트로 집 안 물품과 연결된 내 핸드폰은 동과 작동 멈춤에 대한 알림들을 울리고 있다.







교회 목사님께서 시니어반 회고록 수업에서 강의를 해 줄 수 있냐는 분에 넘치는 제안을 해 주셨다. 부족한 나에게 어찌 이런 은혜로운 기회를 주시는 걸까 싶다.


내가 배우는게 더 많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이 배울 게 많은 게 우리의 삶이다. 되려 내가 더욱 성장하는 믿음 속에 탄탄해질 수 있는 감사함일 거다.


지금의 고통과 힘듦으로 인해 선택 받은 거라면 더 큰 깨달음이 있을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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