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이혼 소송 중인 피고 남의 편 앞으로 온 보험사 채무 독촉장이었다. 오천만 원이 넘고 육천만 원이 안 되는 돈이었다.
나는 변호사에게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지만 바쁜 업무 중인지 통화가 되질 않았다.
나는 아들이 4살때 남의 편의 전여친 때문에 사이버 괴롭힘을 당하고 압류를 당했던 일이 생각 났다. 내 명의로 된 집과 차는 압류 불가인 걸 상식적으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혼인한 사이로 함께 동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친정 엄마가 전부 마련해준 가구와 전자 제품들을 압류할 수 있다는 건 모르고 멍하게 당했었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그냥 더위도 아니다. 폭염이다. 올해는 작년 보다 더한 폭염이라는 예상을 뉴스에서 듣고 있다.
나는 덜컥 걱정이 됐다. 더워지는 이 시기에 또 남의 편 때문에 압류 딱지를 붙인다면, 이제 아들은 기억 못할 나이가 아니다. 갑자기 집 앞에 찾아와 있던 법원 직원 2명과 남의 편의 전 여친을 나와 4살 아들이 맞이해야 했었다. 일은 남이 편이 저지르고 그걸 고스란히 갑작스레 맞이하는 건 언제나 나와 어린 아들의 몫이었다.
아들은 4살 때라 기억을 못하지만 이제는 기억을 하고도 남을 나이다.
아들을 학원 앞에 내려 주는데 변호사님이 전화를 걸어 주셨다. 나는 냉큼 받았다.
"어쩌죠, 변호사님. 저 또 저 인간땜 압류 당해야 하나요? 날은 더워지는데 집 안의 가구랑 전자 제품 다 압류 당하면 저랑 어린 아들은 폭염에 이 여름을 어쩌죠?"
그렇게 변호사님과 한참을 통화 했다. 변호사님은 매일 집에를 들어 오냐고 물었다.
그렇게 매일 밖으로만 돌던 사람이 집안 꼴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낯짝도 두껍게 매일 집에 들어 온다고 대답 했다. 휴일에도 집에를 있지 않던 사람이 이 상황에 집에를 붙어 있어 나와 어린 아들이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 시간 때우다 저녁이나 밤에 들어 간다고 대답 했다.
변호사님도 이렇게 특이한 피고는 처음 본단다. 변호사 생활 하며 상간녀 문제로 소송 당한 남편들은 알아서 집에를 안 들어 온단다. 당연히 피해를 당하고 상처 받은 와이프와 어린 아들이 불편하고 마음이 힘겨운데, 이렇게 매일 집에 들어오는 피고는 처음 본단다.
변호사님은 우선, 또 내 명의로 연대 보증을 세워 놨는지부터 빨리 확인하라고 알려 주셨다.
피고인 남의 편이 내 명의를 마음대로 사용해 자기 수수료를 받아 챙겼던 흔적을 건강 보험 공단에서 확인한 바가 있었다.
나는 채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래저래헤 오늘 알게 됐는데 현재 법적 와이프인 내 이름으로 연대 보증을 세워 놨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피고 남의 편과 통화 후 말을 해 줘도 되는지 물어 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해 기다렸다. 확인은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 다행인건 내 명의를 도용해 나를 연대 보증인으로 하지 않았으며 나랑은 무관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바로 변호사님께도 말씀 드렸다.
내가 걱정 되는 건 압류였다.
내 명의로 된 집과 자동차는 압류할 수 없겠지만, 남의 편 때문에 한 번의 경험 상 집 안의 가구와 전자 제품 등은 압류를 당했었다. 날은 더워지고 있고, 여름과 폭염이 다가올 텐데 어린 아들과 내가 전자 제품과 가구 없이 그 혹독한 여름을 어떻게 견딜까 싶은 생각까지 미쳤다.
또한 너무 앞서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잘못되면 자식인 어린 아들이 골치 아파진다. 미리 상속 포기 각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놔야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변호사님이 상속 포기 각서는 채무자 본인이 사망하고 3개월 전에만 제출할 수 있단다. 사망 전에는 제출할 방법이 없단다.
판사한테 이 증거를 제출하며 이 사실을 말하고 되도록 빨리 이혼 소송을 마무리해 줄 수는 없냐고 물었다. 남의 편 때문에 또 한 번 아들 앞에서 압류를 겪고 싶지 않다고 하소연 했다. 4살 일은 기억을 못하지만 안그래도 지금 상황에 마음이 힘든 애에게 또 다시 빨간 딱지를 보게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폭염으로 힘든 여름을 압류로 인해 건강과 몸까지 탈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변호사님이 내일까지 지켜 본 후 이혼 소장을 안 받으면 법원과 얘기를 해 보겠다고 하셨다. 다만 판사는 기본적인 절차는 있기에, 그 절차는 무시할 수 없다고 할 거라고 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사람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상간에, 빚투에, 언어 폭력에, 형사까지 출동 시킨 유서 쇼에 아주 혼자서 집 안에 해가 되고 상처가 되는 일은 다 하고 다니는구나 싶다. 그러면서 변호사와 지인들도 이해 못할 정도로 그 낯짝을 들고 어떻게 집에 들어와 코골고 잘 수 있는 걸까 싶다.
질리도록 뻔뻔하게 이혼 소장도 피하고 안 받으며, 나랑 어린 아들이 불편해하고 힘들어 하는대도 자기 생각만으로 저리 버티는 걸 이해해줄래야 이해할 수가 없다.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거 자체가 진짜 본인이 할 사람으로서의 요구가 아니란 거 본인만 지금 모르는 거 같다. 주변에서 다 아는 사실을, 모든 걸 공개 했을 때 타인들도 혀를 차며 이상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할게 뻔한 일임을 본인만 정말 모르는 거 같다.
제발, 낯짝이 있고 양심이 있으면 집에 좀 안 들어 왔음 좋겠다. 빨리 사인하고 끝내 주는 게 나와 어린 아들을 위하는 최상의 선택임을 인지했음 좋겠다.
변호사님과 법률 상담사가 그랬다. 명백한 상간이라 이혼은 확실히 가능하다고, 이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단다. 법적이고 현실적 정리가 필요할 뿐이다.
"배고파."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없어? 우리 아들 요즘 왜 이렇게 입맛 없어 할까? 할아버지랑 엄마랑 삼촌이랑 다 걱정하는데,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하라고!"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집에 오는 내내 요즘 아들이 듣는 음악들을 틀어 줬다.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라, 밤양갱, 폼 미쳤다, 슈뻘맨의 행복찾기, 슈뻘맨의 괜찮다고 말해주기 등 등
나는 룸미러로 아들을 힐끔 거리며 속상한 마음에 속으로 외쳤다.
'울 아들 힘내, 우리 같이 손 잡고 한 사람 때문에 힘든 이 시기를 꼭 이겨 내자. 너랑 나에게 제발 좋은 일 있을 거라고 믿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