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카페에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몇 달 안 된 일이다. 소송 진행 중이던 중간에 우연히 보게된 댓글이라 잊혀지지가 않는다.
사실 그 글 자체는 별로 그렇게 눈에 띄는 글은 아니었다. 올해는 생각보다 주변에 그런 일이 꽤 있는지 맘 카페에 처음으로 "상간녀 소송하는데 변호사비 얼마에요?", "상간녀 소송하는데 변호사 비가 원래 이래요?", "이혼하고 싶은데 재산 분할 어떻게 되나요?" 등의 글들이 간혹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 댓글을 단 분은 남자 분이었다.
'내 자녀가 이혼한 집 자녀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시키시겠습니까? 이혼이 무슨 자랑이라고, 서로 뭔가 문제가 있으니 했겠죠. 저라면 절대 안 시킵니다. 이혼해서 혼자 됐으니 남자는 많이 꼬일테니 좋겠네요.'
그런 식으로 달려진 댓글이었다. 나는 그 댓글 아래다 '너나 잘하세요. 남의 사정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말이 지나치시네요.'라고 답글을 남길까 말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다른 여자분이 남의 일이라고 말이 너무 심하시다고 답글을 달긴 달았다.
나는 그 남자 분의 댓글을 보고 지나친 편견도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사정이나 사연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적으로 몰아 붙이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못돼 먹었는 지를 느끼게 하는 대글이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안 좋은 소리하면 화를 내고 싫어할 거면서, 남의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싶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또 느낀 댓글이었다.
"잘 지내지? O서방도 잘 있고?"
카톡에 보이스 톡으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전 날 와 있는 부재중 전화였다. 이모가 왠일로 나한테 전화를 하셨다고, 톡으로 남동생에게 물으니 이모가 한국에 다니러 와 계신단다. 그랬구나, 하면서 나는 요즘 바쁜 일이 많아 전화온 지 몰랐다고 답을 남겼다.
답 남긴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이모는 다시 보이스 톡으로 전화를 걸어 오셨다.
"네, 뭐 그럭저럭 그렇죠 뭐."
나는 그저 웃으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내 상황을 모르는 엄마와 외가 이모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모와의 통화가 그렇게 편하지 만은 않았다. 더구나 남동생이 내년 초에나 말하자며 당분간은 말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주의를 준 참이다.
그런데 그 O서방이란 말이 왜 그렇게나 듣기 싫던지, 나는 그 O서방에 대한 질문이 단 한 글자도 안 나왔음 했지만 어김없이 물으셨다. O서방이란 말에 욕이 나올 판인데 참고 참아야 했다.
"코로나다 뭐다 다들 그렇죠 뭐."
나는 애써 웃었다. 그리고 씁쓸했다. 내가 죄진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눈치를 보고 숨겨 가며 말 조심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결정에 조금 다른 상황이 됐다고 이렇게까지 숨어야 하나 싶었다.
안 그래도 요즘 몸이 부었다가 피곤했다가 해서 체력이 신경 쓰이고 있었다. 닥친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느라 하루하루가 고됐다. 그나마 그 인간 얼굴을 안 보고 사니 마음만은 편했다. 위염끼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속은 좀 편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아메리카노는 마시지 못했다. 카푸치노나 라떼로 바꾸었다. 특히 시나몬 가루 듬뿍 친 카푸치노에 의존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잘못도 아니고, 나는 떳떳한데, 실질적으로 당당하게 행동하고 말할 수 없는 상황들이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실은 이모, 저 이혼 했어요. 그러니 그 O서방 소리 다시는 안해 주셨음 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아 눌렀다.
"그래, 가족이 행복해야지."
이모의 말에 "그러게요. 그 행복을 위해서 단호하 결정했어요."라고 크게 소리치지 못했다. 이모가 알면 엄마도 알게 될 거고, 다른 이모들도 알게 될 터였다. 이모들이 알게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 전에 생전 처음 큰 수술을 마친 엄마를 걱정하는 남동생을 위해서 참아야만 했다. 나도 엄마가 걱정 되긴 하니까.
"말하지마. 굳이 말하고 티낼 필요 없어."
언니와 형부는 단호했다.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너도 마음이라도 편하기 위해서 한 결정이지만 뒤에서 말 많은 학부모들한테 굳이 말하지 말란다. 굳이 학부모들의 입방아와 편견 속에 던져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서울 사는 친구도 그랬가. 굳이 학부모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말이다. 자기 동네에도 나 같은 엄마가 하나 있는데 앞에서는 웃고 어울리지만 뒤에서는 불쌍하다, 어쨌든 이혼은, 하면서 말이 은근 많단다. 그래서 친구가 할 말 있으면 그 사람 앞에서 가서 하라고 한 마디 했단다.
서로 다른 생김새, 성향, 성격,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디 부딪기며 모여 사는 사회에서 다른 점이 있다는 건 당연한거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 당연함을 편견으로 포장하고, 그 편견을 내세워 폭력 아닌 폭력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른 게 꼭 나쁜 죄라도 지은 주홍글씨를 새기듯 말이다.
나는 당당한데 당당하게 살아 가게 놔 두지는 않는 게 현실인 거 같다. 안그래도 현실적으로 해결할 일도 말인데 내가 뭐가 못나서 눈치를 봐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편견에 아들이 상처 받을까봐 그 충고를 받아 들이게 된다. 아무 잘못도 없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만나기 싫은 사람과 만나지 않으려 판사한테 편지까지 쓴 아들에게 그 편견의 화살이 영향을 끼칠까봐 서다.
씁쓸하지만 나의 떳떳하고 당당한 입장을 내 마음의 서랍 속에 잠시 담아 둔다. 내가 잘 되길 바라면서, 내가 이 당당함과 떳떳함을 힘 있게 꺼낼 수 있는 날이 닥쳐 오길 바라면서 잠시 꾹꾹 담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