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이 몰아친 일들과 정리로 어떤 생각들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생겼다. 시간은 생겼는데 멍했다.
요 며칠 정말이지 내가 뭘 읽고 있고, 뭘 하고 있고,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게 몸은 무겁고 멍했다.
작가일 할 때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 놓고 집필을 한 적이 꽤 있다. 감독님들은 왜 사무실 놔 두고 시끄러운 카페로 가 글들을 쓰냐며 신기해 하셨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도 잘 써질 때가 더 많았다. 폼 잡는 게 아니다. 허세도 아니다. 그냥 이상하게 그렇게 하는 게 더 작업이 잘 될 때가 있다. 정신 차려질 때가 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아들을 학교에 등교 시키고, 빠르게 세탁기 돌리고, 집안 청소 해 놓고 노트북을 챙겨서 카페로 내려 왔다.
글을 쓰기 위해서,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나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 차리기 위해서다. 정신 차리고 뭔가를 해야만 뭐라도 나온다. 멍하다고 집 소파에 누워만 있으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찮은 거라도 좋다. 뭐라도 해야 뭐라도 나온다.
법률 회사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14일까지가 항소할 수 있는 기간이니 항소를 할 거면 문자로 답장을 주면 된단다. 답장이 없으면 항소하지 않는 걸로 알겠단다. 또 다시 아무 설명 없이 일방적인 문자다.
나는 처음에 전화로 계약을 했던 실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항소 문자를 받았다고, 나는 승소를 했는데 내가 항소를 해야 되느냐, 상대가 항소할 때 대응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물었다. 소송도 처음이고 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일반인에게 문자 메시지만 이렇게 달랑 보내시면 못 알아 듣는다, 그랬더니 '담당자와 소통하세요.'라는 답장만 달랑 왔다. 순간 나는 그 문자 메시지를 보고 결국 폭발했다.
'소송하며 통화한 사람만 여러 명이고, 처음에 변호사 선임 계약은 실장님과 했고, 판결 나오면 대리인으로서의 자격은 끝난 거라고 하고, 나한테 서류 전송하는 mail은 다른 고객 이름으로 오고, 추가 상담이 필요하면 상담비 내고 상담을 하겠다고 두 번이나 의견을 말했는데도 전화 준다더니 답도 없고, 한 달 안에 구청에 서류 접수해야 하는데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서류 안 보내주시다 지인들 조언에 놀래서 전화 했더니 허둥지둥 서류 보내주고, 원래 법무법인이 이런 건가요?'
실장한테 답장은 없었다. 정말 싸가지 없다 싶었다. 친정 아빠가 원래 위자료 받아야만 수수료 떼어 주는 거라던데 무슨 판결 나자마자 위자료도 안 받았는데 달래냐고 어이없어 하셨다. 아무래도 딸내미가 호구 된 거 같다며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으셨다.
모르고 처음 시작해서 허둥된 나의 실수였다. 그래도 나는 담당 변호사 덕에 양육비도 최고 금액으로 챙겼고(물론 첫 달만 주고 안 주고 있고, 나는 3개월 있다가 또 법원에 알려 망신을 줘야 하지만), 나랑 아들의 심리가 계속 고통 받을 거 같아 조정으로 끝냈다. 상대의 뻔뻔함과 미안함도 모르는 언행에 판사님도 화가 나셨는지 위자료 부분까지 매년 삼 천 만원의 12.0%씩 다 갚을 때까지 지불하라고 판결문 마지막 부분에 기재까지 해 주셨다.
하지만 법부 법인의 실장이나 그 아래 사무원들의 소소한 실수들과 설명 없이 돈 다 받아 먹고 나니 딱 자르는 행동에 나는 결국 터졌다. 할 말은 해야 겠다 싶어 법무법인 대표 번호로 전화해 실장에게 문자로 보낸 내용들을 따졌다.
변호사들이 넘쳐 나는 시대다. AI 시대는 다가오고, 변호사들의 경쟁이 역대급이라는 아빠의 말을 전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어디서 또 의뢰인으로 만날 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대형 로펌 중 하나라지만 그 태도와 마무리가 너무 예의 없어 보였다. 그나마 힘든 소송 상황에 내 말 다 받아 주고, 항소해도 소용 없을 정도로 승소로 이끌어 준 변호사님 때문에 참고 참고 참고 있었다. (물론 의뢰인의 증거와 협조도 승소에 한 몫 한다.)
나는 확실한 걸 좋아한다. 불명확한데 본인들의 전문 지식을 당연히 상대도 알겠지 하고 방임하는 건 최소한의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상대가 그 쪽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설명을 한 마디만 분명히 해 줘도, 나는 가만히 있는 성격이다.
예전에 뮤직비디오 감독들도 일은 시켜 놓고, 글은 써서 보냈는데,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된 건지 말을 안 해 주고 답장도 없어서 뭐 이런 인성이 다 있어 하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계약서까지 써 놓고도 계약서대로 100% 명확하게,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외모가 뛰어나다고 뜬다는 보장도 없다. 재능 있고, 아이디어 많아서 인정 받았다고 뜬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은 생활고에,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포기하고 나자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솔직히 방송 바닥은, 연예계 바닥은, 마약과 같고 도박 같은 분야이기도 하지만 또 반 사기성 있는 분야라고 말하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돈 많은 회장님들 입에서 듣는 소리다.
진짜 사기꾼들만 모여서가 아니다. 작품이 이루어지는 거 같다가도 엎어지고, 다들 말리고 안 될 거라 했던 작품이 대박이 나기도 하고, 될 거 같은 작품이 되려 망하기도 하고, 까도 까도 알다가도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빠르게 바뀌어 가는 게 이 작은 대한민국이다. 작지만 빠른 변화에 제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이 대한민국이다. 한 번은 돌아 봤음 좋겠다. 아무리 빈부 격차가 심화 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심화 되면서 다시 후진국으로 치닫고 있고, 더는 개천에서 용 안 나는 시대라고들 말한다.
어떠한 시대로 치닫든,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것들은 잃지 말고 변화해 가는 대한민국이었음 좋겠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도장 찍은 사항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키고 책임 줄 아는 사회였음 좋겠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가끔식 욱욱 하는 나조차도,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여기서 더는 무너지지 않고 힘들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절실함 속에서, 내가 기본 예의나 양심 따위는 지키고 살아가는 건지 항상 생각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했다. 저출산 대책위 시민 위로서 함께 회의를 진행 했덤 팀원들과의 브런치였다. 너무 즐거 웠다.
11년의 경단녀로서 주부로만 있다가 시민 위원으로 뽑아 준 시 덕분에 시의 이런저런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한 게 어느 새 4년이 넘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를 때는 일단 내가 뭘 할 수 있는 지 부딪혀 보는 성향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찾아 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여태 살아 오면서 뻔하게 느낀 결과이다.
야쿠르트 배달 매니저 일도 9개월 부딪혀 보고, 렌트카 인바웃 상담 매니저 일도 3개월 부딪혀 보고, 학습지 선생님도 해 보려 했고, 안 해 보던 노동 일도 부딪혀 봤다. 열심히 브런치를 통해 글도 써 올려 보고 있다. 이력서를 열심히 전송하다가 결국 취업 지원 제도 상담도 받았다. 11월부터는 취업 지원 제도 상담한 계획에 따라 컴퓨터 자격증 수업도 들으러 다녀야 하고, 구직 활동도 해야 한다. 11월 초에는 독서 지도사 시험도 봐야 한다. 달달이 한 번 공지 뜨는 시의 교육 현장에 모니터링 도 다녀야 한다.
아직은 생활을 무리 없이 해 나갈 정도의 경제력을 안겨 주는 일들이 없다.
더구나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나와 아들이 여기서 더 무너지지 않고 힘차게 살아 나갈 수 있을 지 답을 찾은 거 같지는 않다. 당장 답을 찾기를 원하지만, 빠르게 그 답이 찾아지길 원하지만, 아직은 답을 찾는 과정 속에 여전히 놓여 있는 거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미세먼지처럼 조금은 답답하다. 올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찾아 나가다 보면 또 찾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래도 감사하며 살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이라도 써 올린다. 정신 차리기 위해 나를 붙들어 잡고 아들과 서로 쳐다보며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