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중독
일상이 물건으로 가득 차 있던 때가 있었다. 방 안 가득 쌓인 옷가지, 어디선가 선물로 받은 화장품, 두고두고 쓰겠지 싶어 모아둔 쇼핑백들. 그것들은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줄 보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풍요'는 나를 배신했다. 물건들 사이에서 점점 흐려지는 나를 느꼈다.
그러다 문득,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이 ‘풍요’ 가 아니라 ‘공허’ 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순간 나는 결심했다.
"그래 모두 없애자"
그렇게 두 달간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먼저 존재조차 잊혀졌던 먼지 쌓인 물건들을 정리했다. 2년 전 냉동고에 던져 넣은 식품, 읽지도 않은 채 꽂혀있던 책, 기한이 지난 영양제. 그것들을 버리면서 알 수 있었다. 내 삶의 일부 또한 이것들처럼 이미 ‘죽어있었다’는 것을. 오래 묵힌 물건들처럼 나도 무언가에 묶여 있었다.
하나씩 없애고 나니 숨통이 트였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30만 원짜리 양모 코트, 터키에서 산 기념품, 인스타에서 핫한 향수. 나는 사실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걸 좋아하는 척하는 내 자신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 그 물건들을 없애자 비로소 내 자신이 보였다.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를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들을 치웠다. 애플워치, 자동쓰레기통, 식기세척기. 나를 돕는 줄 알았던 그것들은 사실 나를 게으르고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편리함이라는 가면 아래 숨겨진 나태함.
내 일상은 한층 더 선명해졌다.
두 달간의 작업이 끝나고 내 곁에 남은 것은 꼭 필요한 것들뿐이었다.
이때 정리한 대부분의 물건은 버리지 않고 주로 어플을 통해 무료 나눔을 하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다. 나의 비움이 누군가에게는 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웬만한 물건은 사지 않는다. 정말 필요할 땐 중고를 사거나 누군가의 쓰임이 다한 물건을 받아쓴다. 어쩔 수 없이 새 물건을 살 땐 더 오래 고민하고 신중하게 결정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내 곁에 남은 물건들은 훨씬 가치 있고 오래 사랑받는다.
이제는 안다. 산더미 같은 물건 속에서 느꼈던 공허함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물건이 사라지고 난 빈자리는 더 이상 공허가 아닌 자유와 충만감으로 가득하다.
비워내니 비로소 보인다.
삶의 행복에는 생각보다 필요한게 많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