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예민 영어강사의 수업일지 2
외모도 당당히 하나의 실력으로 인정받는 시대이다. 그래서 너무 피곤하다. 아침마다 기울여야 할 노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화장하지 않고 드라이 하지 않고 편하게 일하러 가면 조금은 더 늦게 일어날 수 있을 텐데 매번 부족한 얼굴에 선도 더하고 색도 입히려니 이 귀찮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물론 나뿐만이 아닌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하는 이야기 일 것이다.
나 이렇게 매번 노력하고 집을 나섰는데, 어느 날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대강대강 하고 정신없이 집을 나섰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일단 늦지 않게 도착해서 여유 있게 수업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니까.'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다행히 평소와 비슷한 시간이다. 깨면서부터 급하게 서둘렀던 마음을 커피로 달랠 시간은 있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강의실로 향한다. 문을 열고 인사하자, 수강생들도 피곤한 얼굴을 지우고 미소로 화답해준다. 그 미소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른 새벽부터 물론 공부를 하러 나온 것이지만, 나라는 사람을 만나러 온 것 이기도 하고, 매번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는 것은 나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난 최대한 내 최상의 모습과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강생들과 만나는 것을 나의 기본 규칙으로 삼고 있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파도 내려올 수 없는 계단. 하이힐. 강의실에 문 열고 들어설 때 터벅터벅 보다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것이 더 나으니까. 편안해 보이는 차림보다는 깔끔한 차림이 집중을 높일 수 있도록 해주니까. 눈알이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아우성의 핏줄을 터뜨려도 안경은 쓸 수 없다. 뻘겋게 건조해진 눈에 어떻게든 렌즈를 붙여 넣어보는 거다.
그런데 이 날은 최상의 모습은 아니었다. 셔츠도 다리지 못했고 바지도 전 날 입었던 것과 같은 바지다. (수강생들 중 일부는 눈썰미가 대단해서 눈치를 챘을 거란 생각을 계속했다) 눈에는 선이 실종되었고 머리카락들은 간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곱슬곱슬 거리고 있었다. 내 스스로 이러한 모습이 별로라고 생각하니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 것만 같아 빨리 오늘 수업들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수업을 하다 보면 나와 눈을 맞추며 내용에 열중하는 모습들도 많지만, 가끔씩은 나의 외모를 살펴보는 시선들이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럴 때는 조금 부담스럽다. 여름에는 못 생긴 내 발모양이나 뒤꿈치가 드러나면 괜히 신경 쓰이고, 얼굴이 붓는 날에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아..오늘은 부으셨네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적은 인원이면 모를까 50명에 가까운 인원들로 강의실이 꽉 차 있을 때는 100개의 눈동자에 스캔당하는 것만 같아 부담되고 신경 쓰였던 날이 많았다.
'아...나도 가끔은 민낯으로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일할 순 없는 걸까?'
여하튼 그날 첫 강의도 강의실에 수강생들이 거의 꽉 차 있는 상황. 2시간 동안 내스스로 못마땅한 나의 외모를 가리려 더욱 힘줘 말하고, 강의 내용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까지 10분 간의 쉬는 시간. 다음 강의의 수강생들이 들어오고 첫 강의 수강생들이 가방을 챙겨 나간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앉아보려고 의자를 당긴다. 그때 항상 맨 앞줄에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듣는 B가 쪽지와 함께 시원한 캔 커피를 교탁에 두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간다.
"선생님! 피곤할 땐 시원한 거 드시면서 피곤 푸세요!"
여름이었던지라 쪽지가 캔커피에 맺힌 물 때문에 번지긴 했지만 그 마음은 온전히 전해졌다. 피곤함이 오늘 정신없이 나왔음이 B에게 다 느껴졌던 것 같았다. 겉모습을 잘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내 신경 쓰였던 그날의 외모가, 생각지 못하게 전해받은 고마운 마음에 새롭게 단장된 기분이었다. 이런 마음에 또 하나의 고민과 신경 쓰임이 가라앉는다.
'내일은 오늘의 모습을 만회해 보리라!' 라고 생각하며 일찍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이렇게 겉모습을 계속 신경 쓰고 있는 내 모습에 또 약간의 스트레스가 고개를 내민다. 누군가는 앞에 섰을 때,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그 순간 너무 좋다고 하던데, 난 그 기분 좋은 긴장감과 신경 쓰임이 항상 줄다리기 중이다.
당분간은 그 줄다리기를 즐겨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