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육아, 그 숭고함과 치졸함의 경계에서...

24시간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이제야 깨닫는다. 육아가 어떤 건지...

by 제주 아빠


* "꽃배달 왔어요." 작은 아이가 빼꼼히 주방 창으로 작은 풀꽃을 건넨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보고 있자면 우리 부부가 낳아 키워낸 생명체의 이런 행동에 밀려오는 감동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수틀리면 한 순간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90도 각도의 수직 레일로 미끄러지는 듯한 상황이 발생한다. 극단을 오가는 아이들의 감정은 부모에게도 고역이다.


이 녀석들아! 그렇게 불평불만 할 거면 당장 육지로 올라가!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0.92명인 이 시대에서 2명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애국자여서일까? 천만에 나는 나라가 좋으라고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일 뿐이다.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주고 성장해주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숭고한 일이 또 있을까라고 느낄 정도로. 내 직업 특성상 나름대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육아만큼 숭고한 것은 또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을 낳고 키워낸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부모는 위대한 존재다.


여기까지 말한다면 아마 저출산 극복을 위한 홍보 멘트 같을 수 있겠다. 하지만 육아는 숭고함을 느끼는 순간은 잠시뿐이고 치졸함의 연속이라고 하겠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결국 참지 못한 나는 해서는 안될 소위 말하는 샤우팅을 아이들에게 해버렸다.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마음이 아프지만 나의 박약한 의지에 대해 한 번 더 깨달음으로써 앞으로 제주 살이에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곱씹고 또 곱씹는다.


유채꽃이 활짝 핀 제주는 아이들의 웃음만큼이나 아름답고 예쁘다. 부모는 이런 풍경 속에 아이들을 담고 싶어 가서 앉아보라고 하고 포즈를 취해보라고 한다.


결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첫째 아이가 뱃속에 자리 잡았다. 아내는 안산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홍천에서 근무하고 있던 터라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아이는 참 잘도 생겼다. 2012년에 첫 아이를 출산했고, 2015년엔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 아이는 너무 쑥쑥 커서 몸집이 크지 않은 아내가 막달까지 기다렸다간 자연분만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여 유도분만을 시도했는데 나올 생각이 전혀 없어서 산모와 아이 모두가 힘들어지자 결국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둘째 아이는 유전자 검사 등에서 이상 소견을 받고 양수 검사를 권유받았으나 주시는대로 낳기로 했다가 산부인과 의사와 틀어지는 바람에 중간에 산부인과를 옮기는 우여곡절 끝에 낳았다. 태어나고 보니 참으로 건강한 아이였다.


태어나는 순간 모두 숭고한 마음이 막 용솟음치면서까지 들진 못했다. 첫째 때는 전신 마취한 아내의 건강이 더욱 걱정됐고, 둘째 때는 생각해보면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던 것 같다. 주말에만 아이들을 보다 보니 쑥쑥 자라서 볼 때마다 이 아이들이 내 아이들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나마 이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라는 과정에서 조금씩 감동을 느꼈었던 듯하다. 육아는 거의 장모님과 아내의 몫이었고 주말에만 만나다 급기야 레바논으로 파병까지 가게 되어 8개월가량을 아이들과 떨어져 지냈다. 다녀온 이후 25일간의 휴가 때 아이들은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서 그렇게 육아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다. 이후 아내가 카페를 정리하고 서울에서 함께 거주할 때도 매일 밤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만 아이들과 보내다 보니 육아가 재밌기까지 했다. 롯데월드 데려가서 엄마 없이 노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 작은 풀, 바위, 조약돌 하나도 최고의 놀잇감이 된다. 머릿속 상상의 세계는 '반지의 제왕'만큼 광활하다. 용이 사는 용암 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하지만 육아휴직 후 제주도에서 24시간 아이들과 붙어 지내며 '아! 이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후 나의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홈스쿨링을 하며 눈높이 교육을 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친절한 아빠라는 타이틀에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내 본성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작은 아이의 유치원 개학이 늦어졌다. 제주도의 교육 시스템이 마음에 들어 1년만 학교에 가보지 않겠냐고 권유했을 때 큰 아이가 가보겠다고 해서 학교 입학절차까지 마쳐놨지만 큰 아이 역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줄곧 하루 종일 온 가족이 붙어 있게 됐다. 올해로 9살, 6살이 된 아이들은 충분한 자의식을 갖고 자기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러한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싫어", "안 해" 이 두 마디는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반사적으로 부모의 말에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대답이다. 제주도에 오면 다 행복하고 다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 말고도 좋아야 하는 게 많았다. 키즈카페도 가야 하고, 장난감도 사야 하며, 병아리며, 강아지며 키우고 싶은 동물도 많았다. 친구도 사귀어야 했고, 게임도 하고 싶었다. 올레 TV에 새로운 애니메이션이라도 나올라치면 다 봐야 했다. 헬로카봇, 겨울왕국 2, 옥토넛 등 다 결제를 해야지만 볼 수 있는 '비싼' 콘텐츠만 기가 막히게 골랐다. 맛있는 밥을 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은 정해져 있었다. 첵스, 오레오, 간장계란밥, 짜파게티 등 먹기 쉽고 간편한 것들만 찾는다. 5대 영양소를 꼬박꼬박 챙기고 싶은 엄마 맘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부실하게 밥을 먹어놓고 돌아서면 우유, 과자, 마이쮸를 찾는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설정된 이미지. 육아는 이런 정갈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어린이들의 사진보다는 그 밑에 떨어져 수북이 쌓인 밥알, 반찬 찌꺼기, 투정에 가깝다.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행복하자고 온 제주도에 뭐 이리 불만이냐며 그럴 거면 다 올라가라고 말해놓고 후회한다. 치졸한 아빠가 됐다. 생색내는 거밖에 더 되나. 내가 육아휴직을 써서 말이야, 돈도 없는데 말이야, 너네 좋으라고 말이야. 라떼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말을 늘어놓는다. 새삼 부모님, 아내, 장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아이들을 거저 키웠구나. 그저 아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좋은 감정, 예컨대 숭고한 감정만 미화시켜 그것으로 출산과 육아를 포장해왔구나. 사실 이건 똥 기저귀 가는 것 이상으로 더럽고 치졸한 일인데. 한 명의 새로운 인격체가 우리 가족 구성원이 되는 순간 아내와 나 사이의 관계에도 새로운 침해자가 생기는 것이었다. 부모는 끊임없이 소유하려 하지만 절대 소유할 수 없는 존재들.


항상 허용적인 아빠가 되려고 했다. 절대 아이들을 소유하지 않으려 했다. 항상 너네들은 나와 다른 인격체니 엄마, 아빠와 다르다. 다만, 경험이 부족해서 엄마, 아빠가 가르쳐주려는 것 뿐이라고 말해온 나인데. 제주에 온 이후로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제주도에 오니 좋지? 여기 왔으니 이것도 저것도 해야지? 키즈카페 못가도, 장난감 못 사도 더 행복하지? 그렇지? 응응? 아이들은 부모가 정해준 감정대로 느껴야 하는 존재는 아닌데. 주말에 잠깐 아이들을 보거나 저녁식사할 때, 잠자기 전에 잠깐 보는 아이들은 이 아이들의 전부가 아니었다. 아침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나름의 생각을 갖고 부모와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나와는 또 다른 존재들이었다.


새별오름에 올라서 신난 가족들. 부모의 강요가 아닌 게 되려면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떡밥을 던져줘야 한다. "드래곤 성에 갇힌 공주님을 구하러 가자!"


혼내서,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아빠가 왜 그런 마음이었는지 구구절절 핑계를 댄다. 가족 공동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방법이나 부모님들께 순종하는 것이 때로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만 가르쳐준다. 그런 거룩한 순간도 사실 오래지 않아 또 불만과 짜증으로 범벅돼버린다. 하지만 어쩌나 이게 육아의 현실인데. 그리고 이 아이들은 내가 아닌데. 그럴 때마다 나를 그나마 견디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어쨌건 제도적으로 둘째 아이가 아니었으면 육아휴직을 못썼을 테니 제주도에서 이렇게 사는 것도 네 덕이다라고 나를 위안한다.


육아휴직과 제주 살이를 통해서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을 되새김질해본다. 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어디까지 가르쳐줘야 할까. 내가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 어디까진 내가 정해줘야 하고 어디까진 스스로 정하게 둬야 할까. 하나도 모르겠다. 육아가 별거 아닌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신 있었고 홈스쿨링까지 결정하는 게 일사천리였다. 그런데 정말 제주도에 와서 "길을 잃었다."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본다. 홈스쿨링을 할 수 있을까? 육지에 올라가서 이런 아이들을 정말 아내한테만 맡겨도 될까? 둘째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두 아이고 모두 홈스쿨링을 시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당장 제주도에서 우리가 앞으로 9개월 이상 더 살아야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가만히 고민해보니 결국 내가 문제다. 온전히 육아에 전념하겠다는 마음으로 휴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어쨌건 휴직을 하면 소정의 육아휴직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놀고먹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연스레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또 해야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끊임없이 불러대는 "아빠", "엄마" 소리가 듣기 좋지만은 않다. 밥 먹기 위해 숟가락 꺼내기, 물 따르기, 치약 짜주기, 갈아입을 옷 가져다주기 등 너무나도 손이 많이 가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것은 스스로 하라고 가르칠 수 있지만 여전히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웃음이 나오면서도 귀찮은 일은 바로 '응가 닦기'다. 손이 닿질 않는다. 그래. 이 작은 사람들은 아직은 그런 존재다. 그것을 인정해야지.


완전히 다른 세 존재들.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지기 때문에 나만 따르라고 할 수도 없다. 각자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는 게 먼저 돼야만 공동체의 삶도 가능하다.


아이들도 답답할 것이다. 자기가 직접 할 수 있으면 불만이 적어지겠지. 내가 돈 벌어서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내가 가고 싶은 데 가는 내가 불만을 가질 리 없지. 하지만 아이들은 다 부모의 통제 아래에 있다. 부모가 아무리 너네 마음대로 하라고 허용해줘도 아이들이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직접 요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갑자기 생각난 먹고 싶은 것을 요리해달라고 했을 때 재료가 없으면 시장을 봐올 여력도 없는 것이다. 부모는 그저 안분지족 하는 삶을 살고자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해주는 밥이 아이들에겐 맘에 들지 않은 메뉴일 뿐인 것이다. 그 모든 영역에서 아이들은 부모와 완전히 다른 인격체임을 새삼 깨닫는다.


한껏 기대했던 초등학교 2학년으로의 편입이 코로나 19로 인해 불확실해지고 EBS 방송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작은 아이는 누나가 방송으로 공부할 때 옆에서 심심하니 끊임없이 방해하고 부모는 끊임없이 분리시키려 한다. 2층이고 부모가 2명이니 한 명씩 나눠서 케어하면 되는 건데 그걸 못했다. 뺄래, 청소, 설거지해야 할게 계속 생기고 결국 누군가 한 명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큰 아이 공부를 조금 봐주다 보면 작은 아이는 혼자 남게 마련이다. 조금 더 현명하게 역할을 나누고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와 놀아줬어야 하는데. 지나고 나니 후회가 남는다. 제주 살이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준 만큼 우리가 각자 하고 싶었던 게 있었기에 우리 각자가 서로를 돌볼 생각이 조금씩은 부족하지 않았을까.


'(모래 잔뜩) 초코 케이크'. "우리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초코 케이크 드세요. 어서 드세요. 먹어요." 아이들 눈에는 증강현실(AR) 같은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차츰 24시간 동행하는 가족의 모습도 안정을 찾아간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됐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무엇이 육아인지. 육아는 숭고함과 치졸함의 경계선 어딘가에 놓여있다. 헌신과 희생이란 두 글자들로 아이들을 위해 온전히 나를 투신하며, 이 고통을 감내하고 생명을 키워낸다는 사명감이 더 크다면 숭고한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낳았으니 키우긴 해야겠고, 내 인생도 살고 싶고, 적어도 그것이 육아로만 점쳐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계속 들면 치졸해지는 거다. 제주 살이 시작 지점에 있을 때 나는 치졸함에 많이 치우쳐 있었던 아빠였다. 남들이 보기엔 육아 휴직을 써서 제주 살이까지 한다고 하면 대단한 아빠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방법을 배워본다. 활동적으로 뛰어놀고 체력이 소진되어야지만 배가 고프고 주는 대로 먹는다. 아이들의 생명 유지 메커니즘은 어른들에 비해서 매우 명확한 듯하다. 감기약을 먹어도 아주 조금 먹는데도 효과가 바로바로 드러나고, 먹은 칼로리대로 활동하면 배고픔을 느끼고, 물도 자주 마셔야 하고,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도 정확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겨울엔 추우니 집에 있으라고 했고, 봄이 와서 몸이 근질근질한데 적당히 놀다가 들어왔으니 밥을 잘 먹을 리 만무했다. 몸놀이를 해준다. 마당에서 집에서 마음껏 몸으로 놀아준다. 아빠는 말도 되고, 호랑이도 된다. 아빠 몸 자체가 놀이기구다. 이를 위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딸아이가 27kg이니 3대 500을 칠 수 있을 때까지 운동해야지만 두 아이를 동시에 들며 노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


용머리 해안. 바다와 바람이 만든 아름다운 조각상 그 위에 나와 아내가 만든 더 아름다운 생명체들. 문제는 위험하니 가지 말래도 기어 올라가서 사진 찍으라고 저러고 있다.


자기 전엔 해리포터를 읽어준다. 졸리게 만들려는 목적이다. 그림 하나 없는 텍스트로만 상상을 해보도록 한다. 효과 만점이다. 작은 아이는 금세 꿈나라로 빠져든다. 자기의 세계관과 조앤 K 롤링의 세계관이 안 맞는 듯하다. 큰 아이에게는 역효과다. 더 읽어달라고 떼쓴다. 궁금한 게 많다. 가족 퀴즈를 한다. 침대 앞에 앉아 한 명이 어떤 동작을 하면 그 동작이 무엇인지 맞추는 놀이다. 영화 제목 맞추기,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 맞추기 등등 영역도 다양하다. 나도 재밌긴 하지만 조금 시시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있어 아이들이 꿈을 키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엄마, 아빠는 밥 차려주는 사람이기보다는 이렇게 놀아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하루를 오롯이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지만 늦은 시간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매일 새벽 2시나 되어야 잠을 잘 수 있다. 낮에 내 시간을 내는 것은 사치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에겐 '반역' 수준이다.


나는 초보 아빠였다. 그리고 생명을 다루는 일에는 '똥 손'임에 틀림없다고 깨닫는다. 그럼에도 나를 온전히 버리며 육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그렇게 희생만 한 부모는 반드시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고 노년이 되어 아이들이 나에게 무엇인가 해주길 바라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를 위해서 같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애써 위안한다. 지금은 치졸함에 가깝다. 하지만 여전히 믿고 있는 구석이 있다. 이 일이 숭고해지는 순간은 결국 아이들이 독립해서 그들의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느낄 때가 아닐까.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둥지에서 밀어 떨어뜨릴 때 하염없이 자유 낙하하던 새끼 독수리가 날개 펴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처럼 말이다. 아이들과 대화하며 그 타협점을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하는 것이 숭고함과 치졸함의 균형에 있도록 하는 것은 내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근, 배추를 캐는 아이들. 부모에겐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놀이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겐 '체험'이 아닌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아내랑 둘이서만 살 땐 좋았다. 적어도 둘은 이해심 많은 성인 인격체였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 수 있으니까. 하지만 2명의 새로운 인격체가 우리 가족 구성원에 포함된 뒤에 대화가 아닌 울음과 떼가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등장했고, 훈육과 자율의 경계에서 마찰을 일으켰으며, 나와 네가 다름을 인정하는데 역치가 필요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부모라 육아휴직과 제주 살이를 통해 배워가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더 배워야 할 것이고 더 갈등이 생기겠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육아에 대해 고뇌해본 나는 치졸함보다는 약간의 숭고함을 느끼고 있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 순간 나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있고 아이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육아는 아이들과 분리되어 있을 때 비로소 그 숭고함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다. "잘 땐 이렇게 예쁜데. 천사네."


Tip. 제주도도 육지의 시골 학교처럼 존폐 위기에 놓인 경우가 많아 나름대로 활로를 찾고 있다. 초등학생인 아이를 특별하게 사교육까지 더 해가면서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면 제주도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일단 학교별 특성화된 과목이 있는데 수영, 승마, 서핑 등을 가르친다. 악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있는데 입학 순번을 받기 쉽지 않다. 한 반에 20명 정도가 전부고 그게 한 학년 학급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병설유치원은 소풍 갈 때 6학년 형, 누나들이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장 최고의 혜택이라면 일부 집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있다. 허름하고 낡은 집이 아니라 꽤나 괜찮은 집들을 아주 싼 가격에 제공해준다. 월 10~30만 원 수준. 제주 살이를 계획하고 있는 부모님들이라면 내가 갈 지역의 학교,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특성화 과목, 그 학교에서 제공하는 집이 있는지를 확인한다면 더욱 풍요롭게 제주 살이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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