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네 인생도 제주의 봄처럼 빛이 나길...

너무나도 찬란한, 너무나도 풍요로운 그래서 너무나도 닮고 싶은 제주의 봄

by 제주 아빠


유튜브 시리즈 영상 공개 - 3편 제주에 놀멍 https://youtu.be/C9pwrItGUYY


코로나 19가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너무 외진 곳에 지내는 우리로서는 그런 심각함을 느끼기 물리적으로 어려웠다. 제주도에 관광객이 줄었다고 했지만 평상시 제주도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지 피부로 체감해본 적이 없기에 입도 관광객을 통계로 제시한 수치상으로만 느낄 뿐이었다. 어찌 됐건 나라가 어렵고 세계가 어려움에도 봄은 왔다. 오히려 지구의 자정작용에 의해 더 찬란했던 봄인 듯하다. 그렇게 다가온 봄 안에서 포근함을 만끽했다. 제주에서 맞이한 봄은 그 어느 곳에서의 봄보다 사람의 온기에 가까운 따스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은 단순히 온도의 높낮음이 아니었다. 우리를 보살펴 안심하게끔 만드는 느낌이었다. 또한 땅은 어떻게 저렇게 오색찬란한 꽃들을 피워내는 것일까. 우리도 흙으로 빚어졌다지. 그렇다면 우리도 꽃처럼 찬란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어디를 가든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탄성을 자아냈고, 푸른 하늘 아래 분홍빛으로 물든 벚꽃들이 나부꼈으며, 이름 모를 들풀까지도 온 세상을 여백 없이 온갖 빛깔로 꽉꽉 채우는데 일조했다.


2020년의 봄은 참으로도 야속하다. 사람들을 집과 마스크에 가둬두고 자연들끼리만 누리려고 했나 보다. 그렇게 독차지하려는 봄을 살짝 꼽사리 껴 즐겨본다.


봄이 오니 엉덩이가 들썩였다. 세상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육지에서는 꽃나들이를 가는 것이 사치 수준이 아니라 민폐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제주는 참 넓은 섬이었다. 마스크를 챙겨서 조심스럽게 들로 산으로 나가보면 사람 한 명 볼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야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그런 곳보다는 가족끼리 그저 제주의 봄을 만끽하고 바람 쐬다 오면 그만이었기에 아무도 찾지 않을 그런 곳으로 달렸다. 가다가 가끔 길섶에 보이는 유채꽃밭이 예쁘면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곤 했다. 찾아갔던 곳 중 사람이 많았던 곳은 산방산과 녹산로 두 곳이었다. 그곳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오랫동안 찾아왔었지만 모두 이번에 처음 가본 곳이었다. 정확히는 봄의 제주를 처음 경험해봤다. 그리고 나는 금사빠처럼 제주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두 곳은 모두 뉴스에 집중 조명됐다. 코로나 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결국 지자체에서 유채꽃을 밀어버리기로 했다고 한다. 녹산로의 경우 우리가 방문한 다음날 밀어버렸다. 정말로 흔적도 없이 노란 물결이 사라졌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코로나 19는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며 생겨난 질병이라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코로나 19 때문에 다시 자연이 회복되고 있었으나, 결국 또 인간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곤 한다. 이러한 악순환을 보며 지구와 인간은 악연일까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사실 이미 7~8년 전쯤에 앞으로는 군인이 북한이 아니라 환경과 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부터 환경과 싸워 이길 군대를 일부 보유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정말 환경과 싸우는 게 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됐다. 예상한 것보다 지구의 시름은 더 깊은 것 같다.


표선 녹산로는 워낙 유명해 코로나 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찾았다. 덕분에 이 아름다운 유채꽃길은 내가 방문한 다음날 모두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그 아름다움을 숨길 수 없는 지경이었다. 굴욕사진을 찍어놔도 잘생긴 원빈 같다고 할까. 그래서 또 슬프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에 몸살을 앓는다는 뉴스가 연일 나온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이 제주를 대체재로 택한 것이다. 입도객은 줄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국에서 많이 찾아오시다 보니 이래 저래 여간 제주도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게 아니다.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아름다운 광경을 오히려 파괴시켜버리는 극단의 수를 두어버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아름다움은 유명한 관광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집 앞마당에도, 자주 걷던 뒷길에도, 앞바다와 목장에도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흩어 뿌려져 있는 것이었다. 굳이 특별히 어디를 찾아갈 필요 없이 조용히 적막한 시골길에서 봄을 맞이해본다.


가장 좋아하는 곳은 설문대할망 테마파크가 있던 남산봉로다. 신풍리에 있는 이 길은 녹산로만큼은 아니지만 벚꽃과 유채꽃이 가득 폈다. 오히려 녹산로보다 아름다웠던 것은 벚꽃이 만든 터널이다. 도로 폭이 좁아 자연스레 벚꽃이 양갈래에서 도로 가운데로 뻗어 나와 하늘을 덮었고 이따금씩 보이는 푸른 봄 하늘이 벚꽃의 분홍빛과 어우러져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꽃' 그림의 배경색을 띠곤 한다. 우리는 연신 하늘을 쳐다보며 달린다. 선루프까지 열어젖혀 신나게 자연광과 벚꽃잎을 통과한 꽃 조명을 누린다. 차를 세워 가족사진을 찍기도 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차가 없어 한적한 도로라 사진 찍기도 참 좋다. 걸어도 좋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좋다. 자연이 준 선물이고 아는 사람만 누리는 특혜다. 지구는 우리에게 공공재인데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못 누리는 것이 과연 공평한 것일까 생각해본다.


날이 좋은 날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차려입고 나왔다. 그다음 주쯤 벚꽃이 만개했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또 다 졌다. 벚꽃처럼 살다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인생일 테다.


보롬왓은 처음에 갔을 땐 개장 전이었다. 염소나 구경하고 드넓은 초원을 눈에 담아 시원함을 간직한 채 돌아갔다. 개장 이후 꽃구경 겸 갔을 땐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 펼쳐졌다. 원색의 튤립들과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질 때쯤 푸른 하늘의 경계선과 멀리 보이는 초록의 오름들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풍광을 내 눈앞에 던져놓았다. 보롬왓은 제주어로 바람의 들판 정도의 뜻인데 제법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카페에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워낙 대지가 넓어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꽃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첫 방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찾는다. 개인 소유지라 꽃을 갈아엎진 않았다. 몇 안되지만 염소도 있어 아이들도 신이 난다. 꽃구경은 시시해하는 아이들이지만 염소와 노는 것은 신나 보인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제 나와 아내는 염소와 노는 것보단 꽃을 바라보는 게 더 좋다. 조금만 더 걸어내려가면 길가에 바로 말이 있어 아이들은 두배로 더 행복하다.


계절별로, 월별로 새로운 풍경을 자랑하는 보롬왓은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른들은 꽃구경, 아이들은 동물구경. 그리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드넓은 초원까지.


다채로운 색깔의 튤립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는 광경은 인위적이지만 그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유채꽃과 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배경의 오름은 금상첨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송악산 둘레길은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이 북적댔다. 마스크는 필수품이다. 이마저도 불안해 사람이 없을만한 평일을 택한다. 우뚝 솟은 산방산 앞에 펼쳐진 유채꽃은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린다. 이 또한 참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서 더욱 희소한 풍경이다. 송악산 둘레길로 가는 언덕 위에서 산방산, 용머리 해안을 내려다보면 더욱 놀랍다. 제주도는 어찌도 이리 아름다울까. 카메라 셔터를 눌러봐도, 드론을 하늘 높이 띄워봐도 그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어 그저 내 눈만 껌뻑이며 뇌의 뉴런과 시냅스에 꼭꼭 담아보고자 한다. 그 시각적 풍경이 오감으로 확대되어서 내 머릿속, 마음속에 아로새겨진다. 그마저 아쉬워 차를 타고 안덕면과 대정읍 주변을 계속 맴돈다. 표선과는 또 다른 경치가 나를 설레게 한다. 다음번 1년 살이 기회가 온다면 대정읍으로 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유채꽃과 산방산. 이곳은 어느 한 각도만 예쁜 것이 아니라 모든 장면이 아름답다. 얼짱각도가 필요 없는 명품 외모를 자랑하는 대정읍과 안덕면에 위치한다.


송악산과 둘레길 그리고 바다. 하늘에서 바라본 송악산도 아름답지만 땅에 발붙이고 그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일품이다. 도저히 내 능력으론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오름을 오르기도 참 좋은 날씨다. 게다가 워낙 아름다운 봄인지라 어느 오름에 가도 발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수채화에 넋을 놓게 된다. 그중에서도 너무 좋아 여러 번 간 오름은 백약이 오름이었다. 백약이 오름은 아이들이 오르기에도 부담 없는 오름인 데다가 입구에는 유채꽃밭이 펼쳐져있고 올라가는 길 내내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풀밭을 감상할 수 있고, 정상에서는 이마의 땀 구슬을 한 번에 날려버릴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보다 더 시원한 성산읍 전역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오름을 한 바퀴 돌아 걷는 길도 평지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걷는 재미도 선사한다. 봄에 오른 백약이 오름 아래에는 유채꽃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바다는 또 어찌나 푸른지. 하늘은 또 그 바다를 닮아 덩달아 푸르다. 중간중간 보이는 풍력발전소의 날개가 무심한 듯 휘이 휘이 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변환시켜주는 효과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름 너머로 한라산이 보이고 그 너머로 뉘엿뉘엿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 붉은 태양이 보인다. 벌써부터 그립다.


오름에 올라 가만히 누워 하늘을 보거나 언덕 끝자락에 서있을 때면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 뱃머리에서 하늘을 날고 있다고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제주의 봄이 선사하는 또 다른 기쁨은 풍요라고 하겠다. 제주 봄 고사리는 그 맛이 일품이다. 임금님 수라상에도 진상됐다고 한다. 가격도 꽤나 나간다. 제주도민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나는 임금님 반찬을 무료로 먹어볼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 양치식물인 고사리의 특성을 어쭙잖게 배웠던 중, 고등학교 생물 시간 수업 내용을 상기해 잘 자라는 곳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제주에선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준다는 곳이다. 지천이 고사리다. 그중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잎이 다 펼쳐지지 않은 것들만 딴다. '고사리 같은 아기 손'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실감한다. 너무나도 귀여운 고사리 머리와 '톡톡' 딸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어우러져 금세 중독돼버리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약 같다. 매일매일 고사리 따러 나간다. 간식을 싸와서 아이들은 드넓은 초원에서 뛰어놀고 엄마, 아빠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고사리를 따고 있노라면 제주에 눌러앉을까 하는 생각이 십 수 번도 더 든다. 이런 게 삶일 텐데. 원래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사시지 않았나? 그렇게 따온 고사리를 물에 씻고 데쳐서 햇볕에 말려놓는다. 이쑤시개보다 더 얇아진 고사리를 육개장에 넣어 끓인다.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고사리 따는 재미에 해지는 줄도 모른다.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도 기쁘고 아이들도 신난다. 이 작은 고대 양치식물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진다.


제주 고사리 육개장. 고사리의 식감이 고기와 같다고 했는데 제주 고사리를 먹고 그것이 어떤 식감인지 제대로 느꼈다. 고사리는 독성이 있어 조리를 잘해야 한다.


집 부근에는 산딸기가 넘쳐난다. 틈만 나면 작은 통 하나 들고 산딸기 채집을 떠난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고 오히려 이런 게 '해야 할 일'처럼 느껴진다. 알이 꽤나 굵직한 것들로만 따도 금세 한통을 채운다. 산딸기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건 산딸기잼이다. 요리를 많이 해본 적 없는 아내지만 아내를 위한 맞춤형 앱인 '만개의 레시피'가 백종원 뺨치는 요리사로 만들어준다. 산딸기잼도 뚝딱 만들어낸다. 모닝빵에도 식빵에도 잘 어울리는 새콤달콤한 산딸기잼 덕분에 내 뱃살만 늘어간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아내의 정성이 더해지니 이곳에서의 삶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생활비가 남을 지경이다. 넉넉하게 해서 육지에도 보내주고, 이웃과도 나눈다. 괜히 사장님이랑 경쟁이 붙어 누가 더 맛있게 만드나 이웃들에게 묻고 다닌다. 비주얼로나 맛으로나 아내의 산딸기잼이 승리다. 몇 시간 저었냐고 연신 물어보신다. 영업비밀이지만 1시간 30분이라고 말씀드리면 본인은 2시간 했다고 너무 오래 한 것 같다고 아쉬워하신다.


산딸기잼은 상큼하고 새콤한 첫맛과 이어지는 달콤함이 일품이다. 게다가 씨 째 조리기 때문에 약간의 씹는 맛도 있다. 너무 달콤해 벌레도 좋아해서 잘 씻어 조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라면에 넣어서도 끓여먹고, 감자밭에 가서 감자도 주워와 감자전, 감자떡을 해 먹는다. 풍요롭기 그지없다. 오일장에 가서 딸기, 상추 모종도 사와 텃밭에 심어둔다. 이미 사장님네 텃밭은 거의 농장 수준이다. 질세라 나도 열심히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제주의 풍요라면 '똥 손'인 나에게도 수확물을 허락할 것이 분명하다고 믿는다. 밭일을 열심히 하고 난 이후에 먹는 제주 감귤은 꿀맛이다. 농부의 삶은 이런 것일까. 아직 나는 그분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을 테지만 적어도 그분들 덕분에 그 결과물만큼은 풍요롭게 누렸다. 모든 수확물에 감사한 마음을 붙인다.


봄이란 계절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고 생명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더욱이 그러할 테다. 하지만 지난해 대전에서 머물면서 그리고 그전에 서울에서 머물면서 봄은 내게 미세먼지로 점쳐지는 계절로 기억됐다. 태어나서 고작 9년, 6년의 생을 살아온 아이들에겐 더욱이 그럴 것이다. 뿌옇게 뒤덮인 미세먼지에 마스크를 답답하게 쓰고 외출을 할 때면 영화 『제5 원소』에서 나오는 도시의 밑바닥 풍경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제주에서 느낀 봄은 그와 완전히 달랐다. 코로나 19 때문에 공기가 맑아졌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대는 제주는 나쁜 공기가 머무를 틈조차 주지 않는 듯했다. 바다가, 바람이, 태양이 모두 함께 이 제주를 지켜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주의 봄은 그 어디에서의 봄보다 아름다웠다.


다랑쉬오름 주변 풍경. 그 끝을 알 수 없는 녹색의 풍경이 이어진다. 바람이 잔잔하게 풀들을 쓰다듬으며 지나갈 때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청각으로 그 존재를 각인시킨다.


아끈다랑쉬오름. 바람의 손재주는 위대하다. 풀밭을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쓰다듬는다. 햇빛이 더해지면 빛나는 풀잎의 몸짓이 더욱 아름답다.


베토벤의 소나타 5번 '봄'의 느낌에 가까운 봄이다. 찬란한 빛깔에 압도당하다가도 푸근하다. 그리고 역동적이다. 그 가운데 우리 가족의 행복이 있었다. 제주에 오길 잘했다. 그리고 언젠간 다시 이곳에 내려와 살리라. 내 삶의 끝은 이곳에서 맞이하겠다 다짐한다. 제주의 봄은 그저 흐드러지게 핀 꽃 앞에서 사진만 찍고 따스함을 느끼는 수준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제대로 느끼려면 겨울의 제주부터 겪어봐야 한다. 이곳에서의 계절 변화는 역동적이다. 그래서 그 변화하는 모습 자체가 제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이제 우리 집 마당의 잔디도 완전히 초록색으로 뒤덮였다. 한낮에 마당에 앉아있으면 얼굴이 뜨겁다고 느낄 정도로 햇살이 듬뿍 쏟아진다. 봄의 기운이 활자를 채 눈에 머리에 담지도 못하고 졸음에 먼저 빠져들게 만든다. 아이들도 쑥쑥 자라난다. 제주의 삶에 완전히 적응했다. 잔병치레에서도 말끔히 벗어났다. 건강한 두 생명체가 망아지처럼 뛰어다닐 때 감격하곤 한다. 봄과 어울리는 그들의 몸짓이다. 내 생에 가장 찬란한 봄이었다.


따라비 오름에서. 그래서 제주는 사랑받는 섬인 것 같다. 육지에서 먼 곳에 있지만 외롭지 않다. 오히려 넉넉한 마음으로 쉬었다 가라 내어준다. 그런 제주를 나는 사랑한다.



Tip. 제주도민의 인심은 참으로 넉넉하다. 계절별로만 잘 알고 가면 농수산물은 넉넉하게 얻을 수 있다. 겨울무가 정말 맛있다. 당근, 감자, 메밀, 배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 길가에는 쑥과 갓 등도 많이 보인다. 뭐니 뭐니 해도 봄 고사리가 최고인데 4월~5월 경에 주로 채집할 수 있다. 아침에 가서 이슬 맺힌 고사리를 따는 게 쉽지만 눈썰미가 좋다면 아무 때나 가도 문제없다. 포구에서 낚시도 하기 쉽고 보말, 게 등을 채집하기도 참 좋다. 어촌계의 뿔소라, 전복, 해삼 등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이 외에도 수많은 '식량'을 일 년 내내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섬이 바로 제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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