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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Aug 12. 2020

#11 저희의 좋은 이웃사촌이 돼 줍서.

제주에서 멘도롱 또똣한 인심 제대로 느끼며 살아보기.


 겨울이지만 따스함이 느껴질 정도의 화창했던 날 나는 2층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빨래를 탁탁 털어 최대한 편편하게 만들어 건조대에 걸 때 기분은 소소하지만 뿌듯하다. 코지 타운 한가운데에는 심심 타운이라고 불리는 다른 사장님이 운영하는 좋은 집이 있다. 우리 집보다 넓은 평수에 내부 인테리어도 여자 사장님의 세심함 덕분에 웬만한 고급 호텔보다 낫다. 차 한 대가 오더니 심심 타운에 멈춘다. 2명의 여성분과 2명의 여자 아이가 차에서 내린다. 밝은 햇살이 나를 기분 좋게 했듯 좋은 이웃이 되고 싶은 나 역시 그분들께 인사를 건넨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으로) 여기 얼마나 살아요? 일 년이요? 와. 나 일 년살이 관심 있는데 이따 맥주 한잔 해요." 이렇게 좋은 이웃의 삶이 시작됐다.


  이웃사촌. 이 단어를 참 좋아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대가족 위주의 농촌생활에서 벗어나 핵가족 위주의 도시 생활이 우리의 주된 생활양식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대가족으로 지내며 느꼈을 가족애의 정서를 이제는 이웃을 통해 느끼게 된다는 말이니 얼마나 정감 가는 말인가.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이웃은 공포의 대상이 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층간소음에 의한 살인, 경비 아저씨에 대한 갑질, 보복 운전이나 주차장 틀어막기 등 너무나도 황망한 범죄들이 이웃에 의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이웃은 사촌이 아니다. 오죽하면 타인은 지옥이라는 웹툰이 인기가 있었을까.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 제주도민에 대한 육지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럿 들었다. 배타적이다. 섬사람들은 투박하다.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선입견을 갖는 것은 결국 나를 가두는 것 밖에 안된다. 먼저 다가서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다. 아이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기 때문에 겪는 유일한 결핍이라면 또래 집단과의 관계일 것이다. 또한 9살의 나이는 자의식이 강해지는 나이인 만큼 또래 집단에서 주인공을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우리 타운에 오시는 손님들은 대다수가 아무리 길어도 한 달 이상을 사시진 않는다. 결국 아이에게 이 타운의 주인은 자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누구든지 놀러 오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나는 아홉 살이야 너는 몇 살이니? 어디서 왔어? 우리는 일 년 살이야."


일광욕 중인 아이들. 햇빛이 참 잘 드는 마당에 서서 온 몸 가득 햇살을 받는다.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노라면 반가운 손님이 오갈 때 먼저 인사를 건넬 여유가 충만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좋은 이웃이 돼 보고자 한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식사에 초대한다. 새롭게 사귄 교회 공동체에서 마침 또래 아이들이 있다. 10살, 9살, 6살 세 아이중 두 아이가 우리 아이들과 동갑이다. 감사할 일이다. 비록 교회 친구들이라 일주일에 한 번의 만남이 전부지만 차츰 친해지면 집에도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은 아이는 개학하면 유치원에 보낼 예정이어서 함께 다닐 수 있겠구나 싶어 좋았다. 이밖에도 타운에 오시는 손님들께는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곤 했다. 대다수 여행객들은 아빠가 함께 오시지 못한다. 아무래도 짧은 여행이 아니라 한 달 정도 '살이'를 하러 오시는 분들은 일순간 기러기 아빠가 되고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대명사가 된다. 그렇게 아주머니들과 자녀들만 있는 경우에는 좋은 이웃이라고 하더라도 친해지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 타운 주변은 감귤밭, 무밭, 감자밭, 우사 등이 적절하게 있다. 제주도 민심은 참으로 풍요롭다. 누가 배타적이라고 했던가. 역시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솎아낸 작은 무들을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쌓아둔다. 버스정류장에서 300여 미터를 힘겹게 걸으시는 할머니를 집 앞까지 태워드렸더니 다음날 아침 황금향 한 바구니가 집 앞에 놓여있었다. 강한 제주어로 뭐라고 말씀하셔서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고맙다는 말 같았다. 내가 더 감사했다. 어디에 괜찮은 작물들이 있으면 연락이 온다. 얼른 가서 캐온다. 그렇게 얻어온 배추, 무, 달래 등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해준다. 제주 토박이 코지 타운 사장님 인심도 역시 제주답다. 비가 오는 날은 아침부터 온 동네 지짐이 파티다. 30인분 지짐이를 흥겹게 "장밋빛 스카프"를 부르며 부치신다. 그렇게 시작한 막걸리판이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운이 좋다면 낚시로 건져 올린 생선구이도 맛볼 수 있다.


무청은 잘라서 바람 잘 드는 그늘에 말려 냉동시키면 일 년 내 먹을 수 있다. 겨울무는 오랫동안 먹을 수는 없기에 너무 욕심내지 말고 캐야 한다. 육지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힘든 처지를 하소연하며 임대비를 어떻게든 깎았는데 머무시는 동안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사람 좋아하는 사장님이 섭섭해서 나를 불러다 놓고 침 튀겨가며 사람 사는 냄새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꽤 오래 계시면서도 아침부터 밤까지 제주도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러 바삐 다니시느라고 정말 오신지 가신지도 모르는 여행객도 더러 있다. 그렇게 하기엔 이 타운은 여유롭게 즐기기 좋은 곳인데 풀밭에서 강아지와 뛰노는 즐거움 한 번 못 느끼고 가시는 건 아닌가 괜한 오지랖이다. 그럼에도 내가 느낀 것이 너무 좋아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이다. 나는 그게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제주살이가 시작된 지 몇 개월 채 되지도 않아 많은 이웃을 사귀었다. 그리고 그런 이웃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참 많이 얻는다. 제주에 계속 남아 계셔서 연이 이어지는 분들도, 잠깐 머물다 가시기에 한시적 인연인 분들도 모두 우리에겐 좋은 이웃이다. 살면서 가족이 아닌 이상 평생 인연으로 이어가기는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나 오히려 오래 사귄 친구들보다 더 넉넉하게 교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곳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제주의 이웃 문화는 참으로 멘도롱 호다.(따뜻하다는 뜻의 제주어) 우리 가족 역시 이런 제주를 닮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참으로 예쁘게 자라준다. 안 그럴 것 같은 작은 아이도 저보다 동생인 아이들을 챙긴다. 우리 집에선 막내라 떼쓰기도 잘하고 기분 맞춰주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쪼그려 앉아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 새삼 감동적이다.


아이들의 이발 담당은 아빠 몫이다. 햇살 좋은 날 전기면도기로 앞머리 옆머리를 뚝뚝 잘라낸다. 아주 고급스럽게 자르진 못하지만 바가지 머리라도 귀엽게 잘 소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들이 떠나는 것은 아쉽다. 떠나는 것을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떠나기 전 날은 밤늦게까지 노는 것을 허락해준다. 어떤 아이에겐 편지를 써주기도 한다. 휴대폰은 없지만 카카오톡 아이디가 있는 큰 아이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하기도 한다. 헤어지기 싫다고 울거나 할 때는 마음이 찡하다. 하지만 그 기분이 오래가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아이들이 항상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어떤 감정을 느껴도 애써 숨기도록 배우는 것 같다. 나 역시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내색하진 않는다. 가끔 정든 이웃이 떠날 때 생필품들을 잔뜩 주고 가시기도 한다. 양념류, 잡곡, 라면, 휴지 등 '살이'를 하며 구매했던 것 중 남는 것을 버리긴 아깝고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로서는 대환영이다. 이웃의 정을 떠나면서까지 느낀다.


앞으로도 어떤 이웃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는 타운에서의 삶이다. 살고 있는 마을 자체가 워낙 인구가 적고 마을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과 구석구석 이웃이 되긴 어렵다고 느낀다. 청년회에도 가입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가족들과의 시간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한다. 대신 우리 타운에 놀러 오시는 여행객들이 나에게 최고의 이웃이다. 또 타운에 자주 놀러 오시는 분들도 나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신다. 은혜 가스 직원분, 사장님 건설사에서 일하시는 김부장님, 닭을 정말 좋아하시는 한회장님, 이웃 타운 김사장님 등등 나보다 한참 어르신들이지만 그럼에도 오가며 인사 나누고 좋은 소식 있으면 전해주시고 무엇보다 막걸리 한 잔에 인생 선배로서 고견을 아낌없이 주신다. 제주도에서 살고 싶게 하는 대목이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심지어 좋은 이웃인 곳이 제주다. 소, 말, 닭, 강아지 등을 주변에서 마음껏 볼 수 있고 이상하리만큼 하나같이 순하다. 제주에 살면 제주를 닮게 된다.


타운에서의 삶은 참으로 정적이고 목가적이지만 그곳에서의 이웃과의 교제는 활기차다. 코로나로 인해서 한 동안 손님이 없다가 조금씩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육지에서 피난 오시는 손님들을 비난하는 제주도민들도 계시다. 불안한 것은 사실이니까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한적한 마을로 오셔서 조용히 삶을 살다 가시는 분들은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계시는 분들이기에 마음까지 닫아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주 올레 담장은 적당한 높이여서 옆집이 다 보인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든 것이 제주의 이웃 문화가 아닐까? 오늘도 낮은 담장 너머로 새로 오시는 손님에게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넨다. 앞으로 그분들과 얼마큼 친해질지는 모르지만 좋은 이웃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구든지 이곳을 방문한다면 제주 인심 가득 느끼고 그 향기 머금어 육지 가셔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좋은 이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다음은 누가 나의 좋은 이웃이 될까? 저희의 좋은 이웃사촌이 돼 줍서!

   


Tip. 제주도 마을들은 주로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맛집은 초등학교 주변의 마을 중심가에 있는 식당이다. 식당 중에서도 이주민들이 만든 식당보다는 제주도민들이 오랫동안 운영해온 식당이 더 좋다. 하지만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스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로 홍보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돈 버는 수완은 이주민들이 더 좋은 듯하다. 제주도민들은 돈을 벌기보다는 그저 이웃끼리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진짜 '삶'을 살아내는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괸당이라는 제주어나 해녀들의 등급에 따라 물질하는 깊이가 다른 것처럼 척박한 땅에서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모여진 사람들끼리 이익보다는 나눔이 우선시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주의 시골은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이웃을 사귀기 참 좋은 곳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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