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제주 여름, 시작.

아이들은 커서 이 날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by 제주 아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에겐 시작한 날보다 떠날 날이 가까워졌다. 그 한가운데 뜨거운 제주의 여름이 있었다.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덮고 있노라면 아침에 이글이글 타오르며 떠오르는 햇살에 참을 수 없이 더워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아침 햇살이 내비치는 온도 덕분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됐다.


시즌이 시즌인지라 코지타운은 쉴 새 없이 손님들이 오셨다 가시며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꼭 한 달 정도를 지내는 손님들이 계셨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인해 육지에서는 학교를 어차피 가지 못하는 상황에 굳이 좁은 곳에 갇혀 지내서 무얼 하나 싶은 부모님들의 현명한 판단에 큰 아이 또래들이 속속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왠지 이번 여름은 그들의 계절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나가서 노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가뜩이나 까맣게 태어난 큰 아이의 피부색은 더욱더 짙어졌다. 모아나가 화면을 뚫고 나와 앞에 서있는 듯했다.


A는 똑똑하고 영민한 아이였다. 리더십도 있고 자기주장도 강했다. 여동생을 잘 챙기는 좋은 오빠이기도 했다. 큰 아이와 동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른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아직 어린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사장님이 그렇게 그 아이를 자랑하기까지 하시니 나는 각자의 개성이라고 생각해왔던 모습들에 의심이 더해질 만도 했다. 하지만 이내 아내와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 나이 아이들은 더 잘하고 못하고 혹은 더 뛰어나다거나 뒤쳐진다거나 하는 것이 있을 나이가 아니다. 그저 존재함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각자 의미가 있어 이 세상에 내려온 천사 같은 존재 들인 것이다. 정말 가끔. 아주 가끔 영어를 잘하는 그 아이가 대단해 보였지만 우악스럽기까지 한 리더십에 큰 아이의 섬세함이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하다.


세 가정이 두 집을 빌려 지낸 적도 있다. 너른 마당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에어바운스를 가져오신 그 가정은 아이들이 모두 같은 유치원에 다니며 성장하여 친구가 된 가정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관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다. 에어바운스를 보고 가만히 있을 우리 아이들이 아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라 쑥스러움도 느끼고 쭈뼛쭈뼛도 할 텐데 이미 이 타운의 주인은 자기인 것처럼 누구든 오면 먼저 나서서 인사하고 소개한다. 그렇게 넉살 좋게 뜨거운 오후에 에어바운스에서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해한다. 앞집 주방 창문을 열어놓을 때면 우리 집 거실 창문을 통해 앞집 마당까지 보인다. 에어바운스가 바람을 가득 품고 솟아 있을라치면 아이들은 쏜살같이 튀어나가곤 하는 것이다.


한 달 이상 같이 지내다 보니 제법 친해진 데다가 한 가정은 한주 정도를 더 머무르게 되는 바람에 B랑 더 친해졌다. B는 큰 아이보다 동생이었지만 종종 큰 아이를 "야"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넉살 좋은 큰 아이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뿐이다. 굳이 거기에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됐다. 부모들끼리도 친해져 더러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대신 나가서 놀아주시기도 했다. 앞으로도 자주 오실 거라고 한다. B의 어머님은 참 재밌는 분이셨다. 축구를 좋아하던 B덕분에 작은 아이가 축구에 흥미를 붙였다. 대전에 있을 때도 자주 아이들과 공을 차곤 했지만 작은 아이에게 축구는 반드시 자기에게 찰 기회가 공평하게 있어야만 하는 공놀이에 불과했고 아빠가 공을 뺏을라치면 혹은 뺏기지 않으면 주저앉아 떼를 쓰곤 했는데 B 덕분에 축구는 원래 공을 뺏어 상대방의 골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C는 교회 오빠 같은 이미지의 아이였다. 사촌들까지 꽤나 많은 아이들이 와서 지냈고 하나같이 다들 훌쩍 컸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엄청 작아 보였다. C의 어머님은 한 달을 채 지내진 않고 동생 가족들을 둔 채 먼저 육지로 올라가셨지만 C는 다시 가고 싶다고 졸랐고 결국 제주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맡겼다. 며칠 만의 재회에 큰 아이가 꽤나 좋아했다. 작은 아이를 엎고 다니기도 했고 큰 아이랑 무슨 죽이 맞아 그렇게 둘이 오손도손 다니는지 딸 가진 아빠로서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내가 관여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켜봤다. 풋내 나는 어린이들의 즐거운 소꿉놀이 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어린 시절의 여름날은 왠지 모르게 황순원의 '소나기'와 김유정의 '동백꽃'이 교차해서 떠오르곤 한다. 6차 교육과정을 지낸 우리 또래들은 여름날에 대해 어느 정도 비슷하게 고착된 이미지가 있지 않을까? 셰익스피어 덕분에 '한 여름밤의 꿈'에 대한 이미지 또한 한몫했으리라. 이렇다 보니 잠자리 채집통을 가지고 다니며 하늘을 빼곡히 채운 각종 잠자리들의 구애 비행을 방해하며 휘휘 잠자리채를 휘젓고 다녔던 기억이나 개구리알을 잔뜩 퍼다가 올챙이로 바꿔놔 엄마를 놀라게 했던 기억이나 나무껍질을 벗겨 진액을 흐르게 한 뒤 다음날 온갖 벌레가 포틀럭 파티라도 즐기는 듯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손쉽게 벌레 수집을 했던 기억 모두 풋풋한 미완의 설렘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여물지 못해 싱그러운.


미완의 설렜던 기억을 간직한 꼬마는 이제 커서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됐다.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추억 하나뿐이다. 그때의 설렘 덕분에 아내와 매일 설렘을 채운다.


아이들의 여름이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부모의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매일을 밖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렸다. 이 아이에겐 지금의 여름이 어떤 의미일까? 나중에 이 시절을 추억할까? 햇살이 뜨거운 만큼 아이의 얼굴은 더욱 시커멓게 변했지만 다 빠진 이를 내보이며 활짝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쉰내가 날정도로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작은 아이의 모습에 사뭇 이 선택이 다시 한번 옳았다 느끼고 감격하고 또 감사했다. 이 아이들은 이 시절을 나처럼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초록색 PVC 관처럼 생기고 파란색 망이 달려있던 잠자리채는 펜싱의 칼날처럼 얄팍한 접철식 쇠 재질로 바뀌었고, 색깔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분홍색, 파란색이 있었다. 채집통 역시 더욱 세련되었다. 주물로 찍어 뽑아낸 곤충 감옥처럼 생긴 물컹한 통이 아니라 사방에서 관찰할 수 있는 투명 아크릴 재질이다.


자연 속에서만 뛰어놀았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러 놀이를 한다. 에어바운스를 타는 아이가 부럽기도 하다. 서핑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조만간 서핑도 배우러 가겠지. 한달살이를 떠나던 C는 큰 아이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휴대폰이 없지만 카카오톡 아이디는 있던 아이가 헐레벌떡 들어와서 자기 패드를 찾고 친구 등록을 한다. 꽤 잘생기기도 했고 예의도 바른 C였지만 딸 가진 아빠라 그런지 괜스레 그 행동이 신경 쓰인다. 9살 난 여자아이도 오빠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할까? 이 아이에게 올여름은 어떤 기억일지 훗날 물어보고 싶다. 영민하고 리더십 있던 A는 기억하는지, 당돌하지만 잘 따라주었던 B는? 무엇보다 큰 아이에게 가장 친절하게 관심을 보였던 C는 어떤 존재였는지.


그 가운데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A가 떠날 때 큰 아이는 편지를 써주었다. A의 부모님은 우리와 왕래가 없었다. 떠나는 날 마당에 있는 우리를 보고도 모른 채 황급히 차를 타고 빠져나갔다. 마지막 인사를 안 하고 가는 게 나보다는 딸아이가 더 아쉬웠으리라 생각했는데 씩씩하게 어제 인사 잘했다고 한다. B와 어울릴 땐 에어바운스에서 가벼운 부상을 입은 작은 아이 때문에 아버님이 직접 집으로 오셔서 에어바운스 이용에 대해 정중히 불편함을 호소했다. 다음날 에어바운스를 타러 가지 않자 그쪽 집 아이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여들어 미술 학교가 마당에 열리기도 했다. 우리는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가르쳐줘야 할 무언가로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다. 부모가 개입하는 게 오히려 방해가 될지 모른다 생각되기도 한다.


이제 막 시작한 여름이지만 제주의 여름은 길다. 일찍이 느지막한 봄부터 날씨가 뜨거웠고 아마도 가을의 입구에서도 여름이 쉬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해수욕장이 본격적으로 개장하기 시작한다.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는 건지 아니면 해외여행을 못 가니 아쉬운 마음에 제주도라도 오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으로 붐빈다. 덕분에 매일 바뀌는 친구들에 아이들은 신이 난다. 해가 일찍도 떠서 늦게까지 지지 않는다. 못내 아쉬워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도록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나 여름 해 마음이 매 한 가지다. 다른 집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가야지만 그제야 터벅터벅 들어오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또 외친다. "밥 다 먹고 또 놀아도 돼요?"


아이들도 해도 쉬이 집으로 돌아가질 못한다. 한 여름밤이란 그래서 못내 아쉬움을 남기는 환상 속 이미지인가 보다.


"그래! 놀아라! 이 시절 여름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Tip. 제주의 여름은 습하다. 제습기가 필수다. 에어컨의 제습 모드를 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때때로 불어오는 제주의 시원한 여름 바람을 맞고 싶다면 창문을 열어야 하기에 에어컨보다는 제습기가 낫기도 하다. 보통 임대로 들어가는 집들은 대다수 빌트인이기 때문에 제습기가 갖춰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당근 마켓'을 이용하여 제습기를 구매하고 충분히 쓰다가 팔고 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제습기가 있다면 빨래를 말리기도 수월하다. 여름날 제주에서 빨래 말리기란 부지런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해가 가장 뜨거울 오후 한낮의 1 ~ 2시간 동안에만 햇빛이 뜨거워서 마를 따름이지 그 외 시간에는 엄청난 습기로 인해서 오히려 눅눅해진다. 해가 길다고 오후 늦게까지 내놓으면 다시 젖은 빨래를 만나볼 수 있다. 습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습기에 약한 사람들은 제주도에서 절대 못살겠다고 하기도 한다. 바닥이 대리석이었던 우리 집은 끈적대는 습기에 슬리퍼가 필수였지만 제습기를 사고 나서부터는 산뜻해졌다. 습기에 취약한 사람에게 여름날 제주살이는 조금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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