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코로나 초보의 육지 방문기

이웃 사랑 실천을 위해 마스크 뒤로 꽁꽁 숨어 지낼 수밖에 없던 그 시간

by 제주 아빠


육지에서 중요한 행사가 갑작스럽게 생겼다. 가족일이기 때문에 거를 수 없고 당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지만 코로나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으로 걱정이 앞서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꼼꼼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육지에 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마치 좀비 영화에서 긴장도가 극에 달하는 장면과 같았다. 주인공들은 항상 그곳에 좀비가 있을지 알면서도 안전한 곳을 빠져나와 그곳으로 향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혹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마스크와 손소독제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방어구와 무기였다. 동선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월드워 Z에 나오는 브래드 피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치밀함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철저하게 교육하고 또 교육했다. 작은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며 어느 정도 익숙해져가고 있었으나 오히려 큰 아이가 걱정이었다. 천진난만 그 자체. 코로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스크를 종일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익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1mm의 작은 벽이 마지노선보다 더욱 확실히 우리의 생명을 지켜줄 방어막인 것을.(물론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해서 공격했지만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마스크를 우회할 정도의 영민한 전략을 쓰진 못할 것이다.)


'꼭꼭 숨어라. 코로나 입에 들어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무섭고 그 때문에 이웃을 아프게 할까 두려워 모두 꼭꼭 숨는 게 일상이다.


우리의 이런 걱정은 정확히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보다는 이웃을 보호하기 위함이 컸다. 제주도는 여전히 지역사회 감염이 0건인 청정지역이었다. 지난 3월 일명 '강남 모녀'의 제주도 방문으로 제주도민 사회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그때 우리가 가장 코로나에 근접했던 위기 상황이기도 했다. 아내의 약을 사러 약국에 들렀을 뿐이고 이후 인터넷 뉴스에서 해당 약국이 동선이었으며 내가 방문하기 한 시간 전에 강남 모녀가 들렀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나의 두뇌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고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으며 다행히 우리 가족은 무사했다. 하지만 그때 느낀 긴장감과 혹여나 지역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느꼈던 미안한 두려움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감정이었다.(마침 목사님과 은혜에 대한 대화를 한 시간 나누고 약국을 간 덕분에 '강남 모녀'를 빗겨나간 것은 우연이었을까? 모든 것이 감사함 투성이다.)


이쯤 되니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 됐다. 청정한 제주를 지키자는 그 책임감이 중압감으로 나타날 정도라는 것에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우리 제주도민들은 모두 이런 마음이기에 제주도가 안전하구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인 제주와 그 위에 뿌리를 내리며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공존하고 있는 도민 모두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19 사태였다. 한창 내리막을 걷고 있던 제주 부동산 업계와 이주 열풍은 이 일을 계기로 다시 상승세를 탔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한적하기 그지없는 상가 거리에 사람 대신 꽃이 아름다움을 가득 매웠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 걸어 다니질 않으니 그저 피어있기에 급급해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싼 육지 왕복행은 목요일 출발 화요일 복귀. 온 가족 왕복이 20만 원도 채 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어려워진 항공업계에는 미안하지만 피치 못하게 생활비를 쪼개 육지로 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4개월 만에 육지를 올라가는데 이 마음이, 이 현실이 이렇게까지 변해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는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기에 가족들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그리움을 달래며 생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느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한 살풍경은 지하철역 그리고 첫 방문지로 결혼식 때 입을 아내의 옷을 사기 위해 들른 동생 가게까지 이어졌다. 하얀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이 가려진 채 빼꼼히 보이는 두 눈은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눈치가 짐짓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마스크가 더 괴기스러웠다. 왁자지껄할 것 같던 지하철에선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들리는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중간중간 들리는 다음 역을 안내하는 멘트는 허공에 메아리쳐 부스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이 약속이나 한 듯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에 올라탄 우리를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그들을 경계하는 것이었을까?


육지에서 살 때 지하철에서 델리만쥬를 먹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기에 아이들에게 오래간만에 맛보는 이 즐거움까지 뺏을 순 없어 사줬지만 부모는 불안하다.


안양 1번가라고 했지만 즐비한 간판들이 아니었다면 띄엄띄엄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이곳이 정말 1번가가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이쯤 되니 건물 어딘가에서 갑작스레 좀비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느껴졌다. 우리 넷은 바짝 긴장해있었다. 무엇인가를 만지는 것도,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긴장되게 하는 일이었다. 동생의 가게에 들어선 이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정말 살기 위해 근처의 식당을 가기로 결심했다. 멀리도 안 가고 가까운 곳으로 갔으나 식당 역시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없음에 안심이 되어 맛있게 먹긴 했지만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음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는 잘 끝냈다. 우리 가족 넷이 한 달여 전부터 준비한 축가도 잘 불렀다. 큰 아이는 1절 가사와 2절 가사를 바꿔 불렀다고 한다. 사실 나도 눈치 못 챘다. 이렇게 뻔뻔하게 넘기다니. 무대체질일까? 평상시와 다르게 한산했던 결혼식장에서의 축가인지라 우리의 노래로라도 축복이 가득 차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불렀고 다들 좋아해 주셨다. 6살 난 아들부터 37살 난 아빠까지 모두가 한 마음으로 부른 축가의 진심이 전해진 모양이다. 축가가 끝나고는 얼른 다시 마스크를 주워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제주 땅에 발붙였지만 왠지 제주공항은 제주 같지가 않다. 그래도 반갑게 반겨주는 한라봉 하르방들이 여기가 제주구나 싶게 한다. 마스크를 써 그 온화한 미소를 못 보는 게 아쉽지만.


가족들 외의 만남은 거의 갖지 않았다. 나에게도 이웃에게도 모두 좋을 일이었다고 믿는다. 돌아오는 길에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마스크는 결코 벗지 않았다. 마스크로 인해 답답한 호흡보다 더 답답한 것은 타인을 바라보는 더욱 깊고 또렷해 보이는 그들의 눈동자들이다. 행여나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기침이라도 한다면, 말소리라도 크게 낸다면 여지없이 원망과 두려움이 묘하게 뒤섞인 대국이 끝나가는 바둑판의 모습처럼 빼곡히 희고 검은 것들이 '잠재적 전파자'를 향한다. 언제쯤 우리가 저 1mm 두께의 마지노선 뒤에 숨겨진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들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지금으로선 요원한 일이다.


제주도에 발을 붙이고서야 안심한다. 정확히는 우리 마을 표선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숨을 쉰다. 공기가 다르다. 안전하다고 느낀다. 육지로 돌아갈 날이 아직 멀었음에도 육지에 돌아가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오래간만에 마스크 뒤에 숨은 신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 짓는 미소를 본다. 이 미소를 보는 맛에 사는 게 삶일 텐데. 스스로를 지키는 이유가 이웃을 위함이고 그렇게 스스로 지켜낸 이 터전에서 모두가 한 가족처럼 느끼며 서로를 안심하고 미소를 보일 수 있는 제주에서의 삶이 계속된다. 한껏 봄의 아름다움을 전한 후 짙어진 녹음은 곧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다는 더욱 푸르게 빛난다.



Tip. 제주도는 아직까지 지역사회 감염이 없고 모든 환자가 외부에서 감염 이후 입도해서 증상이 발현된 경우다. 기본적으로 방역이 잘 지켜짐에도 있지만 워낙 인구밀도가 적은 곳이라 충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다수 지역 주민들은(제주시, 서귀포시 제외) 어르신분들이 많아서 육지에 다녀오실 일도 많이 없고 접촉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괸당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다. 그래서일까 제주도는 다시금 청정하고 안전한 곳으로 육지 사람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 땅값은 생각보다 비싼 편이다. 게다가 기부채납 방식으로 도로 건설 후 대지로의 용도 변경이 금지된 이후 건물을 짓기 위한 대지를 구하기 쉽지 않고 전답을 용도 변경하기에는 땅값이 올라 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 표선면 ~ 성산읍 사이에 위치한 많은 마을들은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하여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제주도의 땅과 집 구매에 관심이 있다면 발품을 팔고 많이 공부해서 정보를 얻지 않으면 자칫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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