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저는 그냥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습니다.

제주에서 처음 해본 낚시를 통해 삶을 배운다.

by 제주 아빠
"아빠! 이번엔 뭐 좀 잡았어?" "어... 미안해. 하하하" 호기롭게 낚싯대를 둘러메고 오늘 저녁 반찬거리를 잡아오겠다고 떠난 아빠는 오늘도 빈 낚싯대를 덜레덜레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이미 예상이나 한 듯 물고기를 재료로 하지 않는 저녁 메뉴를 검색해 두었다. 낚시로 먹고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만 한편으로는 나 역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사자꿈을 기대하며 주섬주섬 낚시 용구를 정리한다.


낚시를 배워본 적도 없고 즐겨본 적도 없다. 낚시에 관한 내 인생에서의 기억은 딱 한 번 아빠를 따라 낚시터에 가서 삶은 청둥오리 알을 먹은 것과 심리학 공부를 하던 시절 낚시가 왜 중독되기 쉬운지를 배워본 적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런 내가 제주도에 와서 낚싯대를 들었다. 제주도에 온 지 5개월이 지난 시점 나의 스코어는 먹지 못할 새끼 복어 1마리뿐이다.(2개월 후 나는 벵에돔을 잡음으로 우리 타운 낚시왕으로 한 번에 등극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결코 내가 하지 못해서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낚시를 하는 모든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딱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낚시찌를 멀리 던지는 행위다. 낚싯대를 다룰 줄 몰라 2개를 망가뜨리고 낚시 상점 사장님께 잔소리를 들으며 배웠고, 갯지렁이를 자르고 바늘에 꿸 때의 촉감은 도저히 적응되지 않을 일이었고, 빈 낚싯대를 들어 올려야 하는 실망감 역시 즐겁지 않았다. 그저 찌를 멀리 던질 때 내가 원하는 장소에 그것을 날려 보내는 일이 적당한 쾌감을 선사했다. 낚싯대의 릴이 풀리며 찌가 날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바람결에 따라 때로는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날아갈 때도 있지만 그렇게 바닷속에 퐁당하고 떨어진 찌가 파도에 몸을 싣고 정처 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재밌다. 물론 낚시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의 경치는 그런 나에게도 기분 좋은 안위를 제공해주었다.


폼과 배경은 그럴싸하지만 매번 건져 올리는 것은 바닷고기들에게 미끼를 공여한 후 남은 허전한 낚싯바늘뿐.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낚시도 혼자 하는 낚시도 조금씩 재미를 붙여간다.


신산리 포구는 그런 점에서 좋았다. 수동으로 운영되는 간이 등대의 빨간색과 코발트 그린색의 바다가 회색의 방파제 안에 갇혀서 조화롭게 넘실거린다. 바다가 너무 맑아 내가 던진 찌 아래의 미끼와 그걸 노리는 물고기의 형체가 파도가 잔잔한 순간엔 얼핏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눈 앞에서 내 미끼를 툭툭 뜯어먹으며 바늘만 교묘히 피해 가는 물고기를 보며 약이 오르기도 한다. 물고기가 이렇게 지능이 높은 생명체였던가? 아니면 내가 지능이 낮은 생명체는 아닐까? 어떻게 해야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고패질을 통해 미끼의 적당한 위치가 노출되어 물고기가 반응토록 해보았고 입질이 올 때 낚아채 보기도 했지만 연거푸 10여 회를 실패하고 나서는 얼마 전 잔뜩 땄던 고사리를 생각하며 나는 바다보다는 산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곤 낚싯대를 내려놨다.


그 와중에 아이들이 아빠를 응원해주는 게 고마웠지만 옆에서 전문 낚시꾼인듯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하나도 못 잡고 자리를 툴툴 털며 일어서는 아저씨가 “딸내미 왜 이렇게 시끄러워?”라고 괜스레 딸아이에게 탓을 돌리는 게 속상했다. 비록 아무것도 낚지 못하고 마무리하는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 내가 낚은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보낸 시간과 웃음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의 정수일 테지. 바닷가에서 낚아 올릴 수 있는 것이 물고기만이 아니라는 게 참 다행이다. 빈손으로 다녀와서 사장님이 잡아 올린 10여 마리의 우럭과 놀래미 등을 대충 넣고 끓인 어죽 라면에 제주도에서 생산된 제주 생유산균 막걸리 한 잔의 행복 역시 감초로 더해졌다. 못 잡은 나라도 다른 사람이 낚아 올린 물고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이것이 공동체 정신 아니겠는가. 마치 제주 해녀들이 상군과 하군 구역을 나눠 물질하는 것처럼 모두 함께 합하여 선을 이룬다.


저렇게 허름한 외형(꺾어 신은 신과 개량한복, 전혀 진중해 보이지 않은 뒷짐까지)으로 낚싯대를 드리울 때마다 고기를 건져 올리는 사장님을 보며 약이 오를 때도 있다.


제주에서의 삶은 참으로 생산적이다. 느린듯하지만 꾸준히 무엇인가가 생겨난다. 인간이 수렵으로 끼니를 이어갈 때의 삶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하루의 일부분 그러니까 3~4시간 정도만 먹을 것을 구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가족과 함께 놀면서 지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화라는 것도 그 시절 오히려 더 흥하지 않았을까? 고전이지만 여전히 명작들로 우리에게 들려지는 클래식 같은 분야도 역시 부자들의 놀잇감이었다는 것에서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시절 부자들의 삶을 책을 통해 엿보자면 거의 대다수 시간을 사교로 보냈으니 그러한 역작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아닐까? 요즘처럼 바쁜 시간에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듣고 앉아있을 클래식들의 창작이 많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에서도 보면 6분을 넘는 노래는 라디오에서 틀어줄 수 없다고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역시 인간의 삶이 오히려 바빠지고 여유가 없어져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낚시는 가장 한가로운 수렵활동이기도 하다. 낚싯대를 던지고 낚아 올리는 모든 것이 느리기만 하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서 돈을 벌 목적으로 그물을 던지는 어부가 아니고서야 그 날 저녁 가족들의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방파제로 나선 강태공이라면 이러한 여유 정도로도 충분히 낚지 않겠는가. 남은 시간은 당연 가족과 함께 즐기고 삶을 즐기는 시간 이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낚시가 재밌어졌다. 표선해수욕장에 물이 가득 들어올 때면 수면 위로 펄떡이는 숭어 떼가 보인다. 당장에 가서 낚아 올리고 싶지만 먹이를 먹는 게 아니라 놀러 온 숭어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게 훌치기라고 하는 낚시 기법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아직 멀고 먼 기술이다. 그저 멀리서 펄떡이며 반짝이는 은빛 비늘들이 바다에 넘실대는 것을 약 오르게 쳐다본다.


뉘엿뉘엿 해가 한라산 너머로 넘어가고 나는 물고기에게 속아 넘어가고 하지만 드리운 낚싯대 아래 넘실대는 물결을 보며 제주의 이런 삶에 반해 홀딱 넘어가는 하루다.


나에게 낚시는 한 끼 먹을거리를 구하는 수렵행위이며, 제주 바다를 깊이 감미하는 수단이고, 가족들과 오롯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다. 이 모든 것을 느끼며 하는 낚시란 충분히 가치 있는 활동이다. 육지에서 살 때와 달리 걸어서 10분만 나가면 낚시터가 있는 이곳 제주에서는 그렇게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낚시하러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점은 분명 낚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던 요소일 것이다. 내가 낚은 것은 아니지만 비양도에 들어갔던 지인분께서 잡아온 무늬오징어(혹은 흰 꼴뚜기, 미스이까) 같은 것을 먹는 날이면 말 그대로 횡재한 날이기도 하다. 그게 또 다른 낚시의 재미다.(앞서 말한 것과 같이 도박과 비슷한 원리다.)


녹음이 깊어가며 바다가 더욱 푸른빛을 낼수록 강태공들이 늘어간다. 고수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나는 언제 저렇게 해보나 싶기도 하지만 내 본업은 육아휴직 중인 아빠라는 생각에 낚시에 더욱 빠져들기보단 아이들과 같이 시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어찌 보면 내 삶에 있어 내가 진정 낚아 올려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낚는 것일 테다. 그 대상은 가깝게는 우리 아이들부터 내 주변 지인들, 나아가서는 세상 사람들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갯바위 낚시에 실패하고 온 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 가족 모두 함께 석양이 내릴 때까지 보냈던 시간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뿐이다.


자신의 집게발을 건사한 대신 몸 전체를 지옥불에 던지게 될 불쌍한 게들. 게는 그냥 통째로 라면에 넣어 끓이거나 기름에 바짝 튀겨먹으면 맛있다.


낚시엔 소질이 없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채집하는 건 곧잘 했다. 게잡기, 보말 줍기 같은 건데 아빠가 낚시에 실패하는 동안 가족들은 열심히 보말을 줍는다. 어느새 낚싯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게잡기에 투입한 아빠는 금세 큼지막한 게를 잡아서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기도 한다. 바위만 들추면 나오는 게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갈 때는 미안하지만 모래와 함께 한 움큼 쥐어보면 안에 영락없이 잡혀있다. 하지만 꽤나 큰 게들은 등딱지를 지그시 눌러 잡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집게발에 꼬집히는데 꽤나 아프다. 바위틈에 깊이 들어가 버린 게를 잡겠다고 찔러도 보고 당기기도 하다 보면 가끔 제 집게발을 그냥 톡 떼어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양쪽 집게발을 다 잃고 나면 게거품까지 내뿜는다. 이 정도 되면 잡을 길이 없다. 그냥 바위틈에 낀 채로 두고 다른 게를 잡으러 간다. 집게발 두 개 정도를 버리고 제 몸을 건사하는 게를 보며 성경 말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3(개역개정)


제주에서 지내다 보니 한가로운 시간에 이래저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곤 한다. 삶에 대해 곱씹고 가족에 대해 곱씹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곱씹고 나의 옛날이야기들을 들추어본다. 참 귀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낚시를 한다는 것은 더욱더 많은 생각들을 조용히 홀로 집중해서 하게 해 준다. 농담 삼아 친구들에게 제주에서 홈스쿨링 하며 철학을 아이에게 가르치겠다고 했는데 사실 나를 위한 말이었나 보다. 내가 더욱 철학에 심취한다. 그렇게 심취하며 생각을 골몰히 하다 보면 한없이 겸손해지게 마련이다. 생(生)에 대해 저절로 경의를 표하게 되며 숙연해진다. 내 생도 그들의 생도. 모든 생은 다 의미가 있는 거다. 어떤 생은 더 좋은 생이고 어떤 생은 더 나쁜 생이라기보다 그저 그렇게 살아낸 위대한 개인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 말하길 낚시는 도둑 낚시가 제일이라고 한다. 저렇게 몰려서 낚싯대를 드리우다 보면 옆 사람 덕분에 내가 잡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고수들이라 엄두가 안 난다.


3만 원은 족히 투자한 낚싯대를 가지고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며 진땀 흘릴 때 옆에 있던 어린아이가 대나무에 대충 매단 낚싯줄로 연신 베도라치를 건져 올린다. 간조라 물이 빠진 곳에 바위를 밟고 서서 틈새에 미끼를 떨어뜨려 놓으면 이내 낚싯줄을 문다. 아이는 그저 툭툭 건져 올릴 뿐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듯한 저 아이에겐 베도라치 한 마리 건져 올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무얼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역시나 나는 그저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삶을 살아내는데 가장 중요한 지혜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뿐이겠구나 싶다. 이쯤 되니 나는 역시나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이기보다 사람을 낚는 베드로가 되어야겠구나 다짐하게 된다.


여전히 낚시에는 서툴다. 혼자서 채비 조차 꾸릴 줄 모른다. 바늘이 부러지면 고쳐 매는 정도. 낚시에 관한 전문용어도, 내가 잡은 물고기가 무슨 물고기 인지도, 낚시를 잘하는 방법도 모르지만 적어도 갯바위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울 때 제주가 이렇게 풍요롭고 아름답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더불어 낚시에 깊게 빠져들기보다 가족들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위안이다. 낚시 좀 못해도 아빠를 응원해주고 미리 물고기가 필요 없는 반찬을 준비해놓는 아내의 현숙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실패해도 성공해도 나는 아내의 남편이며, 아이들의 아빠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내게 용기를 준다. 사장님이 좀 약 올리면 어떠랴. 그런 사장님 조차도 낚는 대로 우리에게 물고기를 나눠주시니 세상은 아직 아름답고 더불어 살기에 충분히 넉넉하다. 그런 일상을 이렇듯 글로 남긴다면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물고기는 못 낚았을지라도 사람 한 명을 낚은 보람 있는 삶을 보낸 것이다.


해 질 무렵 포구는 붉게 변하며 어서 가라고 내게 물결로 손사래를 친다.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아쉬움보다는 오늘 하루 사색에 잠기며 건져 올린 수많은 내 사색의 결과에 만족한다.


마지막 미끼를 멀리 던졌다가 이내 비어버린 바늘을 다시 걷어올린다. 이미 해는 저산 너머로 졌다. 길어진 해를 보며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온갖 채집활동을 하며 햇빛 아래 함께 시간을 지내다 보니 아이도 어른도 점점 새카매져 간다. 동시에 우리 가족들의 웃음도 더 짙어진다. 어려운 시기에 훌쩍 강으로 바다로 낚시를 떠나 세월을 낚던 현인들의 모습이 허송세월이 아님을 깨달으며 우리 가족은 오늘도 더욱 돈독해진다.


아빠가 낚시에 실패하는 동안 한 바구니 가득 가족들이 건져 올린 보말 덕분에 오늘 저녁은 해결됐다. 가족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함께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임을 느낀다.



Tip. 제주 갯바위 낚시는 여행자에게라도 꼭 추천하고 싶은 아주 재밌는 놀이다. 낚시 가게에서 4~5만 원 정도 투자하면 낚싯대와 미끼를 구할 수 있는데 바닷가 근처 숙소를 잡았다면 하나쯤 구비해두고 기간 중에 새벽 낚시, 저녁 낚시 등 틈새 낚시를 즐기는 것이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계절별로 잡히는 어종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벵에돔, 우럭, 볼락, 놀래미, 자리, 어랭이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히기 때문에 잡을 수만 있다면 정말 재밌다. 오징어 철에는 심지어 오징어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해루질을 통해 문어를 잡을 수도 있지만 해루질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고 바닷속에 들어가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므로 배운 사람들에게만 추천한다.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는 쏠종개나 민물장어도 더러 잡힌다. 다만, 파도가 심한 날은 절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면 안 된다. 해녀분들이 물질할 때 낚시를 하다가 해녀분들에게 바늘을 던지는 위험한 행위를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낚시채비를 하다 보면 낚싯줄, 바늘 등을 해변에 그냥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환경오염의 주범이니만큼 반드시 수거해야 한다. 가급적 작은 물고기는 풀어주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물고기만 잡아서 회, 구이 등으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낚시 초보자라면 갯바위보다는 마을마다 있는 포구에 가서 낚시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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