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주인집 강아지 이름은 나그네

언젠가 우리는 모두 떠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나그네다.

by 제주 아빠


아이들과 나그네의 첫 만남. 너무나도 작고 귀여웠던 강아지. 그리고 무엇보다 버려지지 않고 남겨진 강아지.


주인집 강아지 이름은 나그네다. 장모님은 이 이름을 듣고는 슬픈 이름이라고 하셨다. 정처 없이 떠 도는 나그네란 이름에 걸맞게 이 강아지 역시 유기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제주 이 땅은 아름답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머무는 땅이라기보다는 반드시 이별을 고하는 헤어짐의 땅이다.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를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육지와 다른 풍경 속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마당이 있는 집이라니 육지에서 해보지 못한 것을 이곳에서 해본다는 단꿈에 젖은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이기심의 추악한 저변을 드러내게 되는 욕망으로 종종 그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내 유기견의 재입양률은 전국 꼴찌 수준(11.45%)인 반면, 안락사율은 전국 최고(58.01%)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 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은 마당 딸린 이 아름다운 집에 반려동물이 있으면 화룡점정일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들의 상황과 무관하게 강아지를 입양하여 키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떠날 때 육지로 데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다수가 유기견 처리된다. 그 결과는 위의 통계에서 보는 바와 같다.


집에 점점 강아지 소품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밥그릇, 사료, 간식, 목줄 등... 버려진 강아지가 아닌 우리와 함께 사는 식구로 받아들인다. 강아지도 우리를 식구로 받아주길...


주인집 강아지도 그렇게 유기된 강아지다. 한달살이를 하고 떠나는 사람이 버리고 간 강아지를 사장님이 떠맡아 버렸고 그 전엔 어쩔 수 없어 안락사시켰으나 이번엔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다는 인간적 양심에 키우게 됐다. 일 년 살이로 온 우리 가정 역시 아이들이 너무 원했지만 이러한 말로를 충분히 알았기에 절대 반대했고 결국 주인집 강아지를 우리가 같이 키우는 방법으로 대리 만족했다.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사장님을 위해 중성화 수술 지원, 유기견 지원 등의 방법을 알아봤지만 관료적 행정 시스템 하에서 그러한 지원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이 강아지는 임신을 했고 따뜻한 어느 봄날 6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온 가족이 뛰어가서 출산을 축하해주고 미리 준비해둔 맛있는 먹이를 주었더니 허겁지겁 먹었다. 새끼를 품느라 움직이지 못하던 어미개가 내가 가니 반겼다. 꽤 오랜 시간 같이 지내면서 나와 상당히 친해진 터라 가능했다.


이러한 기쁨 뒤에 사장님의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이름처럼 슬픈 나그네와 그 나그네의 새끼 역시 그러한 운명을 타고났을까 사장님은 6마리를 모두 키우는 것이 부담이었고 그렇다고 유기시키자니 안락사당할 것이 뻔해 그러지도 못하고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일장 있는 날 파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과거의 상황으로 봐서 가져가는 사람도 결국 유기시키게 될 것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축하받아야 할 새 생명이 결국 처리 문제로 고민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인간 세상에서도 최빈국의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가난하면서 왜 낳았냐는 질타를 받는 상황이 겹쳐 보였다.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견생도 불공정할까. 이 시각 부잣집의 반려견으로 새끼를 낳은 어떠한 강아지는 소고기 미역국을 먹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태어나자마자 이런 고민으로 충분히 축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내일은 나도 소고기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줘야겠다.


집 앞 신풍목장으로 달리기를 나갈 때면 나그네가 종종 따라온다. 왕복 4킬로미터의 꽤 긴 거리를 든든하게 내 옆을 지켜주며 이제 나도 식구로 받아줬구나 느껴 고맙다.
나그네 새끼 '여여(언제나 그렇게라는 뜻)'가 신발을 베고 잠이 들어있다. 새끼들은 정말 금방 금방 자란다.


나그네는 참으로 순한 개다. 특히 눈을 보고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다할 것 같은 표정을 항상 짓고 있다. 본능일까? 제 형제들이 이미 하늘나라고 가버렸다는 것을 아는 걸까? 그래서 자기는 살고 싶은 걸까? 모를 일이다. 나그네는 참 똑똑한 개다. 손님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그래서 절대 손님에게는 짖지 않는다. 하지만 사장님이나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방문객은 어떻게 알고 짖는다. 가스 배달원, 전기 요금 고지서 배달원 등이다. 그걸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난다. 내 주머니를 지켜주는 것 같아 고맙다.


하지만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흠일 때도 있다. 손님이 오면 반가운 마음에 꼬리 치며 달려가지만 금세 훌쩍 커버린 나그네는 몸집이 꽤 큰 개이기 때문에 손님 중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놀라게 마련이다. 종종 개를 묶어두라고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사장님은 어쩔 수 없이 나그네를 묶어둔다. 하지만 묶여있는 나그네는 참으로 안쓰러워 보인다. 우리 사장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이 있다. "나는 개를 싫어해." 근데 그런 개를 위해서 오늘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남은 음식들을 봉지에 싸가지고 오신다. 나그네는 그런 마음을 잘 아는지 잘도 먹는다. 첫째 아이는 개를 볼 때마다 "아 귀여워!"를 남발한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더 귀엽다.


KakaoTalk_20200821_125425628.jpg 첫 출산에 여섯 마리를 낳은 나그네는 젖 먹이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그래도 강아지들이 젖 먹는 동안 기특하게도 가만히 있어준다. 하지만 날로 야위어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나그네는 아마 믹스견인 듯하다. 진돗개라고 하기엔 꼬리가 너무 펴져 있고 제주개라고 하기엔 또 뭔가 부족한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생겼다. 이마에서 코로 내려오는 선이 참 예쁜 개다. 어찌 됐건 개도 잘생기고 볼일인 것 같다. 이곳 타운을 방문하는 거의 대다수 손님들이 나그네를 참으로 좋아하신다. 이제 새끼까지 있어서 그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러 일부러 아침부터 나와 산책하시는 분들도 많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강아지와 마주하는 게 이곳에서의 일상이다. 더러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강아지를 무서워하니 묶어달라고 요청해서 강아지를 묶어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강아지를 보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잘 모르고 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그네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직업의 특성상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기보다는 잦은 이사를 다닌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런 경우를 '고속도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홍천, 양평, 용인, 서울, 대전이다. 농담처럼 최전방이 서울이었다고 얘기한다. 레바논 파병은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어찌 됐건 대다수 근무지가 서울 근교 거나 대도시였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그네 인생을 살았다. 이삿짐을 채 다 풀어놓지도 않고 다닌 적이 오래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장난감과 책이 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제주도에 올 땐 빌트인 하우스인 관계로 짐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내 짐이 고스란히 대전의 아파트에 남겨져있다. 다시 육지로 올라갈 땐 제주도와 대전 양쪽에서 이사를 해야 한다. 또 나그네인 것이다.


KakaoTalk_20200821_125456714.jpg 달리기를 하다 포구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나그네도 옆에 와서 같이 바다를 바라본다. 이 녀석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제주도에서 태어난 개는 평생 이 풍경이 익숙할 테지.


그래서일까. 나그네를 보면 참으로 정감이 간다. 다행히 사장님이 나그네는 그래도 키우신다고 다짐하신 관계로 나그네는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닐 수도 있겠다. 이제는 이곳의 주인 노릇을 할 것이다. 종종 들어오는 고양이도 쫓아내고 다른 개들도 쫓아내기도 한다. 나그네였던 나그네가 이제는 나그네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그네처럼 불안한 견생을 살지 모르겠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타고 오는 사람들마다 반겨주지만 또 그 사람들이 떠나면 나그네 입장에선 정들었다가 또 남겨진 것이 되니 이 또한 마음이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 나그네는 떠나는 사람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로 온 사람을 반기는 모습을 봐서는 참으로 행복한 개구나 싶다.


아름다운 제주 땅에서의 삶은 이러한 이면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이러한 면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유기견 문제, 쓰레기 문제, 부동산 문제 등 제주도가 앓고 있는 남겨진 고통은 모두 그런 데서 시작됐다. 우리의 양심에 대해 되묻는다. 내가 사랑하는 이 땅 제주는 언제든 내게 쉼을 주는 곳이길 바라고 더불어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케 해줄 나그네가 우리가 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 생을 살아가는 나그네다. 죽어서 몸 뉘일 땅 조차도 영원할 수 없기에 잠시 머물게 되는 그 어디라도 내 흔적이 없이 떠날 수 있길. 나를 남기는 것에 욕심내지 않길. 그저 그렇게 살아가길.


KakaoTalk_20200908_020120331.jpg 사냥 본능이 남아있는 나그네는 가끔 풀숲에서 꿩을 발견하고 저렇게 웅크리고 있다가 쫓아간다. 사냥 성공 확률은 대략 0%에 달한다.


Tip. 제주도에는 제주시, 서귀포시에 각각 유기견 담당자가 있다. 제주 유기견 센터를 통해서 유기견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당근 마켓에도 이와 같은 정보들이 올라온다.(제주 유기견 센터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jejuanimalshelter/) 장기간 제주에 머물길 희망한다면 제주에 개를 데려오는 것은 가능하지만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떠돌이 개가 언제든 집 마당으로 올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견의 경우 집 밖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떠돌이 개에 의해 임신이 될 수도 있다. 제주도 마당은 대다수 외부와 연해있는 경우가 많아서 마당을 원천 봉쇄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산책을 나갈 때도 목줄을 하는 것이 필수다. 혹여나 묶여있지 않은 다른 개들에 의해 공격을 당할 수 있으니 이 점도 유념해야 한다. 산책로 상에 풀어놓고 기르는 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개를 방치하듯 사육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일이 그것에 대해 따지고 들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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