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다미는 다시 홈스쿨링을, 오니는 늦은 입학을 했다.
* 오니 패션의 특징은 양말을 있는 대로 올려 신는다는 것.
코로나 19로 인해 등교 수업이 계속 미뤄지자 끝내 큰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 마음이 쉽게 동의가 돼서 다시 학교에 정원외 관리 신청을 했다. 풍천초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잠시나마 학적이 등록되었지만 하늘이 아름다워 바람도 머물다 간다는 이 학교는 아이에게 영영 경험해보지 못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교실에 가보니 아이의 이름이 붙은 책상도 있고 아이 교과서도 있다. 모든 게 갖춰져 있지만 그곳에 우리 아이가 없을 뿐이다.
홈스쿨링을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평범해 보이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이 39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게까지 특별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39만 명의 이유가 제각각임을 고려할 때 우리 아이가 홈스쿨링을 선택한 것은 조금 특별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긴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에게 부모로서 한 가지 가르쳐주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배움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지식보다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잘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학교에서 가르쳐줄 수 없는, 스스로 깨달아야만 하는 바로 그 질문을 아이에게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아이가 '자기 자신'을 알게 하고 싶었다. 그것을 알고 나서 배움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 2019년 통계 기준
물론 이 질문에 정답도 없고 평생 알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주입식으로 무엇인가를 아이에게 욱여넣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인생의 과정이 아닐까. 모태신앙이지만 모태신앙이니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 중에서 답을 주는 것들을 무작정 수용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자신의 답을 갖길 바랐다. 예를 들면 동성애 같은 것.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회 현상과 이슈들에 대해서 세상은 어느 한쪽 편만 들게 하거나 정답을 줘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인생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세상의 지식 혹은 관점의 습득은 자기 인식을 통해 생겨난 가치관이 있는 상태에서 가져야지만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에게 유일하게 가르치고 싶은 한 가지가 그거였다. 그래서 아이와 깊고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불과 8살짜리가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홈스쿨링을 결정했다.
하지만 제주도 일 년 살이를 결심하고 나서 여러 정보를 얻던 중에 도내 초등학교는 도시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학급에 20명 내외 수준의 적은 학생과 한 학년이 한 학급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6개 반이 끝이라는 사실. 무엇보다 학교별로 특성화 교육이 있는데 우리 관내에 있는 풍천초등학교는 수영과 승마를 가르친다는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1년 정도는 학교를 다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아이와도 얘기를 해보니 처음엔 싫다고 하였으나 제주에서 지내며 친구도 사귀고 하다 보니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다녀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학교에 다시 학적을 등록하고 2학년 편입 시험을 보게 됐다. 아이에게 가르쳐본 적이 없는 국어, 수학 문제들을 풀어내는 것을 보며 놀랐다. 한글도 혼자서 배웠고, 수학도 혼자서 배운 아이였기에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는 합격. 풍천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된 것이다.
기쁨도 잠시 코로나 19로 인해서 등교일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제는 학적에 등록된 학생이다 보니 클래스팅 앱에 가입해서 매일 EBS 방송을 듣고 있다고 댓글을 달아야 했고 코로나 19 자가진단 문진표를 작성해야 했다. 분명 학교를 다니는 것 같은데 학교에 가질 않는 상황. 그렇게 등교가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아이도 실망감이 적지 않았으리라. 끝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등교를 불과 며칠 앞두지 않은 상태였기에 아이를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처음 홈스쿨링을 하게 된 계기와 거리가 먼 일관성 없는 훈육이라고 생각되어 설득보다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일시적인 마음인지 정말 진심인지 들어보고자 했다. 아이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입학일이 늦춰지자 학교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고 무엇보다 EBS로 혼자 공부하는 게 재밌으며, 엄마, 아빠와 함께 이렇게 시간 보내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학교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충분한 설명으로 중화시켰지만 이 패턴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내심 노는 게 좋은 아이기에 결국 다시 정원외 관리 신청을 했다. 사실 공부보다는 더 놀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아내와도 쉽게 합의가 됐다.
작은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에 입학했다. 오니는 항상 유치원에 가고 싶어 해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서 유치원에 못 갔던 시간도 즐거웠고 유치원 입학을 한 이후에도 즐거웠다. 6살짜리 작은 아이를 볼 때면 이 아이야말로 진정한 '카르페 디엠'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루만 산다. 내일은 없다. 그래서일까 매번 학교에 데려다줄 때 뒷모습을 보면 처량하고 안쓰러워 보이지만 집에 올 때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온갖 일들을 설명한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아침에 '출근'하는 작은 아이인지라 무얼 해도 기특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등교할 땐 아빠는 정문까지밖에 가지 못한다. 아이는 정문에서 학교까지 100여 미터의 거리를 혼자 터벅터벅 걸어간다. 항상 늦게 가기 때문에 이미 수업이 시작해 운동장에서 체육 과목을 하고 있는 형, 누나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걸음마다 호기심 천국이다. 땅에 앉아서 개미를 관찰하기도 하고, 형, 누나들의 체육 활동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도 한다. 곧장 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정문에 서있다. 지켜보는 게 결코 심심하지 않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 그런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육아휴직 중인 아빠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걸리는 등교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감사하다. 하지만 오래간만의 유치원 생활이 고됬는지 집에 오면 누나랑 싸우기도 하고 짜증도 많이 부렸다. 잘 달래면 이내 잠이 들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날씨 좋은 매일매일 집에서 자고 싶을 리 만무했다. 유치원 가방은 이미 차에 던져놓은 이후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넓은 정원으로 뛰쳐나간다. 잘 크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육지에서 다니던 유치원에선 항상 자신이 분위기 메이커와 같은 위치에 있던 아이였는데 이곳에선 그런 역할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아이와 함께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대화를 나누면서 잘 달래 보았다. 그래도 유치원은 졸업시키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무엇보다 둘째 아이는 유치원을 너무 좋아하던 아이 었기에 그냥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같은 교회를 다녀서 먼저 친해졌던 한 여자아이가 유치원에서는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아이는 심각할지 모르겠으나 사실 이유가 참 귀엽다고 생각됐다. 유치원생이 벌써부터 여자 친구니 남자 친구니 하는 얘기를 보니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그게 요즘 세대의 모습이다. 그 아이의 부모님과도 소통하며 우리 집에 초대해서 같이 놀게도 하고 교회에서 만나면 조금이라도 더 같이 놀 수 있게 해 줬다. 몇 번 그런 시간을 가졌더니 또 금세 좋다고 유치원 계속 다니고 싶단다. 아이들은 참 단순하다. 그리고 솔직해서 좋다. 아빠 직업 때문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의 한 해마다 옮겨 다녔기에 적응 못하면 아빠 탓도 있지 않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었는데 다행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무너질 뻔했던 우리의 일상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미는 시간 되면 EBS 방송을 틀어서 시청한다. 아빠는 신문을 읽고 엄마는 성경을 읽는다. EBS 선생님이 좋다고 한다. 그중에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특별 편성되었던 기간에 나왔던 전해은 선생님이 좋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엄빠에게도 은근히 전해은 선생님이 관심사가 됐다. 호랑이 선생님과 꿀단지 선생님도 좋아했다. 그렇게 부모 나름의 방법으로 아이에게 관심 가져준다. 야옹 클래식 같은 방송은 어른들에게도 재밌어서 같이 보기도 한다. 더 듣고 싶다고 하면 유튜브로 찾아서 클래식을 들려주기도 한다. 수학에 조금 약한지 수학 과목을 할 때 질문을 많이 했다. 아이에게 아빠는 지식백과 같은 존재였다. 끊임없이 질문했다. 아빠는 결코 아이의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른들의 언어 그대로 설명해준다. 그래서 질문이 끝없이 더 이어진다. 이런 시기에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마음이었다. 아이에게 공부에 관해서는 강요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 다만 친구들이 한다고 하면 너도 해볼래 정도는 물어봤다. 할머니가 빨간펜 회사에 다닌 적이 있어 시작하게 됐던 도요새 잉글리시가 거의 유일한 사교육이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은근히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못 보게 하진 않았다. 자기 패드가 있어서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찾아보도록 해줬다. 네모 아저씨의 색종이 접기를 가장 좋아했다. 색종이 접기를 시작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에 8시간씩도 색종이를 접는다. 드래곤 접기를 자주 도전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결국 아빠가 접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해보려는 자세가 참 기특하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자기도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는지 혼자서 찍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담담이 채널'을 만들어서 운영했었는데 어느 순간 또 맘에 안 들고 부끄러운지 동영상을 다 지웠다 새로 올렸다 하길 반복한다. 구독자는 엄빠, 할머니, 고모, 삼촌, 숙모 정도가 전부지만 즐거워하는 모습이 재밌다. 우리 집 소개로 시작했던 콘텐츠는 이후 색종이 접기, 호떡 만들기, 마술 시범 등 다양했다. 색칠 공부도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다. A4용지를 잔뜩 사서 구글에서 검색한 컬러링 페이지로 원하는 그림에 색을 칠할 수 있도록 해줬는데 정말 좋아한다. 초등학교 2학년생의 수준이 색칠 공부할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재밌으면 하는 거다.
4차 산업 혁명에 심취한 아빠가 아이에게 코딩을 가르쳐보기도 한다. 엔트리를 이용한 코딩 교육은 아빠에게도 즐겁다. 서로 코딩한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하나의 놀이처럼 이것저것 해본다. 아이는 금세 잘도 따라 했다. 무엇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아이다. 몇 날 며칠에 걸쳐 자기 나름의 생각을 엔트리를 이용해 프로그래밍한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한다. 코딩이 재밌지만 완성하고 나면 금세 또 시들해진다. 이런 경험을 해봤다 정도로만 만족해도 충분하다. 창의적으로 놀이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인형극을 하기도 하는데 이야기를 만들고 인형극 소품을 만들어서 공연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다. 이야기는 사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을 짜깁기 한 수준이지만 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노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저 기특할 뿐이다.
홈스쿨링을 하다 보면 두 가지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이 아이가 어떤 이상이 있어서 그렇게 하게 됐는가 하는 시선. 두 번째는 이 아이가 무언가 특출 난 재능이 있는가 하는 시선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이상한 것도 없고 특출 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행동과 생각들이 홈스쿨링을 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 아이와 부모의 선택이었고 이 아이가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으로 보내는 여섯 해. 그냥 놀아도 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자기 인식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개학이 종료되고 실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는 지역도 있고 계속 온라인으로만 학습하는 지역도 있다고 한다. 제주도는 5월 경부터는 개학을 했지만 학교 한 번 안가보고 다시 정원외 관리 대상자가 돼서 선생님께서 집에 방문하여 다미와 면담을 하시기도 했다. 제주도는 아무래도 교육환경이 육지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그래서일까 다미는 EBS 수업도 잘 따라가는 등 풍천초등학교 2학년 학생 중에서는 잘하는 편이라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부모는 그런 것 같다. 아이의 학업 성적을 갖고 얘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하니 안심이 된다. 이내 마음을 다시금 고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보다는 행복한 아이였으면 한다. 공부도 잘하고 행복하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행복에 더 집중할 때라고 생각한다.
3학년으로 진학한 어느 학부모의 이야기에 따르면 도덕 시간에 동성애에 대해서 언급된다고 한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하고 말고의 가치도 아니고 좋고 나쁘고의 가치도 아니다. 그냥 그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사회가 이렇다 저렇다에 대해서 얘기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아휴직을 함으로써 앞으로 여러 면에서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선택한 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좋고 나쁘다의 이분법적 가치로 세상의 잣대를 설명한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칼로 두부를 썰듯 세상을 나누지 않았으면 한다. 역시 자기 인식의 문제다. 나는 누구인가. 그것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은 인간이라면 평생에 걸쳐해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서 사회를 인식하는 자신의 시선을 깨닫는다. 자기가 싫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는 것도 자기가 좋다고 해서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
세상에 관심 갖기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더 관심 가져보라고 얘기해준다. 나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다미, 오니에게뿐 아니라 나와 아내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았기에 제주도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참으로 오지랖도 넓다. 온데 관심 가지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 여유가 넘쳐나나 보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윤동주 시집이라도 한 번 펼쳐보라고 권유해주고 싶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정말 오늘 죽을지 모르는 약자들에겐 관심 가져야 한다. 굶어 죽는 아이들. 전쟁터에서 도움받고 있지 못한 아이들과 같은 경우가 그 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돌잔치를 하지 않았다. 돌잔치 대신 월드비전에 가입해서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받아보는 성장 카드를 통해서 자기 또래의 친구 누군가는 그저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렇게 어렵게 산다는 것을 깨닫고 기왕이면 마음 따뜻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일단 자기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얼마나 풍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이 불평의 대상일 수밖에 없기에.
다미의 하루 일과는 9시 30분에 EBS 방송과 함께 시작한다. 점심 먹기 전까지 알아서 방송을 보고 숙제를 하고 도요새 잉글리시를 마친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1시부터는 완전한 자유시간이다.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밖에 나가 종일 놀기도 하고, 색칠 공부를 하기도 한다. 동영상을 찍거나 새로운 인형극 제작에 몰두하기도 한다. 색종이 접기를 가장 많이 하는 편이다. 어찌나 놀기만 하는지 가끔 걱정될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한 재밌게 신나게 노는 거다. 우리 아이들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정해주고 싶진 않다. 아이는 내 소유물이 아니고 그저 나와 전혀 다른 한 명의 또 다른 인격체일 뿐.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한다. 너무 알려주면 길을 정해줘 버리는 게 될 수 있고, 너무 안 알려주면 방임이 되어버릴 수 도 있다. 그 경계선이 참으로 모호하다.
그렇기에 욕심을 내기보다, 조바심을 내기보다 하루하루 아이와 그저 신나게 놀아준다. 물어보는 것이 끊임없을지라도 끝없이 답변해준다. 매일 밤 성경공부를 통해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도록 해본다. 육아휴직을 하며 동료들이 제주도에 가서 홈스쿨링 하면 아이에게 무얼 가르칠 거냐고 묻길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철학이랑 세계사라고 했다. 철학이 별거 있을까. 그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사는 것이 철학 아닐까. 아이에게 오늘도 묻는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아직은 이 아리송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적어도 오늘 하루 신나게 놀고 난 후 앞니가 4개나 빠져 우스꽝스러운데도 활짝 웃는 미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미, 오니! 네 행복을 응원해!
Tip.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이 제주도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어쩔 수 없이 제주시 쪽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도심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교육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이점이 제주 이곳저곳에 많다. 하도리에는 해녀 체험이 있어서 8세 이상의 자녀들은 해녀 교육을 받아볼 수 있다. 여름에는 마을마다 서핑 학교가 열린다. 농촌, 어촌, 임야가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학습을 해볼 수도 있다. 축구와 같은 대중적인 스포츠는 인프라가 잘되어 있어서 어린이 축구 클럽들도 꽤 많다. 국제 바칼로레아 시범학교로 선정된 학교는 표선고등학교와 한림고등학교가 있으며, 유수의 초등학교도 바칼로레아 학습을 시키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이 교육 방향이 홈스쿨링을 하는 목적과 맞기 때문에 제주도에 산다면 학교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 19 청정지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등교 개학을 한 이래로 꾸준히 학교에 등교해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학교별로 많은 이민 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14개의 공공도서관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서적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없는 도서는 신청하면 구입해준다. 시골 쪽은 확실히 사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편이다. 아이들을 키우기에 병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일 수 있는데 제주도는 세종시를 제외하고 1인당 의사수가 전국 꼴찌다. 열악한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는 점은 분명히 문제지만 이비인후과, 어린이 치과, 정형외과 등 아이들이 주로 방문해야 할 병원들은 제주시, 서귀포시 등에 잘 갖춰져 있는 편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