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코스프레가 나쁜 이유.

세민의 연애가, 시작되지 못하는 이유.

by 오도

형석 씨가 물었잖아요. 왜 연애할 수 없느냐고. 근데 나는요, 내가 좋은 사람이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못해요.

연애. 그게 되게 어려워요. 남들은 다 곧잘 하는 거 같은데, 난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형석 씨는, 형석 씨 말대로 좋은 사람인 거 같아서, 두려워요.


'나랑 연애할래요? 나 되게 좋은 사람인데.'

형석 씨가 나한테 한 그 말이 안 잊히더라고요. 어떻게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 있지. 이 사람은 자기가 좋은 사람인 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되게 신기했어요.


근데, 나는요.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나는 연애만 하려고 하면 되게 비겁해져요. 연애만 시작하면, 오래가지도 못하고, 상대의 나쁜 점만 보여요. 그리곤 '아. 내 운명이 아닌가 보다. 헤어지자. 이런 생각하는 것조차 저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다.'싶어서 헤어져요. 근데, 저 사람에게 예의가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쉽게 끝내는 게 예의가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내 연애는 오래 쉬었어요. 시작을 못해서. 계속 두려웠거든요. 누군가를 알려고 하면, 너무 무서웠거든요. 내가 또 나쁜 사람이 될까 봐.


근데 나는 사실, 그럼에도 내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냥 단지, 나를 다 보여줬다가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해버리면 어쩌나. 내가 또 혼자 남으면 어쩌나 싶어서, 내가 먼저 버리는 거라고. 나쁜 걸 알지만, 그게 내가 덜 상처받는 것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나쁜 건 맞지만,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최근까지만 해도, 연애가 하고 싶었어요. 내 진정한 짝을 만나면, 내 비겁함도 사라질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꽤 오래 보았던 사람을 좋아하기로 했어요. 두려움을 적게 가지려고요. 하지만 결국, 또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렸죠. 내 마음이 그렇게 가벼웠나, 실망스럽더라고요.


근데. 내 상대는 항상 몰랐겠죠. 내가 이렇게 나쁜 년일 줄. 그래서 더 배신감이 들고, 더 나를 미워하겠죠. 나를 계속 싫어할 거예요.


그래서 나는 형석 씨와 만날 수 없어요. 내 비겁함의 끝은 내가 나쁜 사람이란 걸 인정하는 거였거든요. 인정하고 나니까, 나는 좋은 사람은 평생 못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비겁해졌죠. 비겁함을 인정하면 좋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비겁함을 인정하니 나쁜 사람이 되더라고요. 내 평생소원이 결혼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 소원 없애버리려고요. 누군가를 좋아하다, 그 사람에게 버려지면 너무 비참하잖아요. 나는 그걸 알면서도 여태 그렇게 살아왔고요.


근데, 나는 계속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거든요. 나쁜 짓만 하면서, 나쁘게만 살면서, 그래도 내가 좀 괜찮은 인간이면 좋겠거든요. 또 상처 주고, 비겁해지고, 외로워지고 싶지 않거든요. 형석 씨를 오래 봐왔는데, 우리의 마지막이 이렇게 초라해서 미안해요. 내가 나빠서 미안해요.


오래도록, 이런 생각을 해온 세민이었으나, 세민의 입에서는 아주 짧은 문장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나쁜 사람이에요. 형석 씨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그래서 우리는 못 만나요. 미안해요."


그 말을 하고, 세민은 카페를 나왔다. 그리곤 생각했다. 그저, 자신에게 상처를 받을 사람이 한 명 없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자고. 사실 세민은 형석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절하지 않았고, 결국 그의 입에선 만나 달라는 말이 나왔다. 세민도 형석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또 상처를 줄 것 같았기에, 그의 물음에 승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둘의 연애는 시작되지 못했다. 애초에 끝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가장 서로가 좋을 때, 상대가 싫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자신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것은, 세민에겐 예견된 일이었다. 그래서 세민은 시작이 항상 두려웠다. 그 두려움으로 아예 형석과의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항상 생각했지만, 세민은 나쁜 사람이니 무시했다. 그리곤 나쁜 사람에 알맞게, 형석에게 끝을 고했다.


호감이 없던 것도 아니었으나, 또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세민은 나쁜 사람이었으니까.


오늘도 세민은 나쁜 사람이었고, 내일도 나쁜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세민의 평생소원이었던 결혼은 인생에서 삭제되고, 세민은 혼자 외로이 죽어갈 것이다. 그게 세민에게 맞는 결말이었다. 세민은 나쁜 사람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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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카페를 나가자, 형석은 오히려 이성을 되찾았다. 최근 세민과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자신에게 선을 그었다. 분명 전에는 없던 선이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선이 생겨버린 걸 알 수 있었다. 세민은 갑자기 형석의 전 애인에 관해 묻고, 미련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당황했고, 세민과의 시작을 망치고 싶지 않아, 주제를 돌렸으나, 세민은 포기할 줄을 몰랐다. 뭔가 이상했다. 오래 사귀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세민과 만나보고 싶었다. 무언가 불안한 것이 있다면, 그걸 고쳐주고 싶었다. 형석은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세민은 가끔, 자신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말했으나, 형석은 알고 있었다. 세민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세민은 항상 고민을 가지고 살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그런 사람이 나쁜 사람일리가 만무했다. 특히 그녀는 누군가 고민이 있다 하면,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더라도 밤을 새워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아파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찌 나쁜 사람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라고 계속해서 말해왔기에, 무슨 사정이 있거나 좋은 사람의 기준이 높다고만 생각했다. 자신이 계속해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석은 세민과 시작도 못해보고 끝이 났다. 그러나 형석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 말하는 세민이,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형석이 계속 지켜본 세민은, 자신보다 좋은 사람이었기에. 과거 인연들에게 나쁜 말을 하며 끝을 고했지만, 계속 미안해했던 세민이었기에. 나쁜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그녀를, 그녀의 과거 인연들처럼 놓치지 않고, 꽉 잡아야겠다고. 그리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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