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대구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던
3남 1녀 중 장남인 남자의, 첫 딸로 태어났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땐 장가도 안 간 총각 삼촌들과 함께 살았다.
큰삼촌도 같이 살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대부분 작은삼촌이었다.
어느 날, 작은삼촌이 나를 심부름 보냈다.
담배를 사 오라고 했다.
어떤 담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88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담배를 사러 가려면 ‘고향슈퍼’라는 가게에 가야 했다.
슈퍼로 가는 길에는 쌀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쌀집 앞에는 ‘검둥이’라는 이름의 발바리가 있었다.
묶여 있지도 않았고, 마당도 없는 가게 앞에서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던 개였다.
검둥이는 거의 매일 쌀집 앞에서 으르렁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봤고,
특히 나만 보면 어김없이 짖었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지금 같으면 그런 개를 풀어놨다고 다들 난리 났을 텐데,
그 시절에는 그런 집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개가 무서웠다.
우리 집에도 대문 앞에 묶어놓고 발바리를 키웠지만,
그 아이는 아무리 내게 달려들어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검둥이는 달랐다.
나만 지나가면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짖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담배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검둥이가 나를 보더니 또 짖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리기 시작했고, 그러다 넘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의 기억은 끊겼다.
다음 기억은 동네 약국이었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약사와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약사는 내 머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거 꿰매야겠네예. 아까징끼(빨간약) 가꼬 안됩니더.”
결국 나는 큰 길가에 있는 병원에 가서 머리를 꿰맸다.
그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날의 느낌은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며칠이 지나고,
우리 집에는 새로운 강아지가 한 마리 생겼다.
삼촌이 새끼 세파트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처음엔 그 개가 좋아서 신났다.
처음엔 그리 크지 않았는데, 금세 자랐다.
그래도 나보다 커진 세파트 위에 올라타 놀기도 했다.
검둥이는 작고 무서웠는데,
세파트는 우리 집 개라서 그런지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 세파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커져버렸고,
결국 합천에 시집간 셋째 이모 댁으로 보내졌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그날에 대해 작은삼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검둥이가 니 머리 깨묵고,
내 친구 민식이 집에서 세파트 낳았다 카길래
내가 바로 전화해서
5만 원 주고 델고 왔다 아이가.
니한테 짖으면 검둥이 그 노무 새끼
물어직이삘라꼬.”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 말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린 조카가 겁에 질려 울고,
피 흘리며 병원에 가야 했던 그날,
작은삼촌은 어떻게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방식이 개 한 마리였을지라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작은삼촌의 어설픈 사과,
말보다는 행동으로 전해진 감정,
그리고 그날의 공포.
어쩌면,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날의 첫 번째 상처이고,
처음으로 받은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