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6. 아름다움에 대해 나눌 수 있다면
그 시간, 그때에 그곳에 있다면 누구든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밤 하늘을 벌겋게 물드는 노을을. 서쪽 하늘의 색이 유난히 다른 색이라는 것을. 서쪽으로 달리는 사람들은 그저 앞을 향해가면 되고, 동쪽으로 달리는 사람들은 잠깐씩 서서 뒤를 돌아보아야 하는 그날을. 어중간한 자리에 멈춰 서서 핸드폰 카메라를 켜는 그대들의 마음이 내 마음 같기도 하여서 그 같음에 내심 슬퍼지기도 기뻐지기도 하는 그런 날을.
노을의 아름다움에 나눌 수 있는 다른 생명이 있다면, 이 붉음과 푸름이 섞이는 그리고 그 사이에 잠깐씩 섞어지는 색과 그 빛을 받아 순간적으로 붉게 물드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나의 인생 중 어느 막의 부분. 그리고 처연하게 이어지는 독백.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의 이야기를 다룬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노을에 관한 장면이 등장한다. 강제 노역으로 지친 채 별 든 것이 없는 허여멀건한 수프로 속을 달래는 사람들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와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고 말한다. 그들이 걸친 옷도, 그들을 둘러싼 건물도, 그들이 쥐고 있는 수프 그릇, 그들의 얼굴과 눈빛조차도 잿빛이었으나 그때의 하늘은 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끊임없이 색과 모양이 변하는 구름에 둘러쌓여져 있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않을까? 나의 상태가 어디쯤에 이르러 있고, 나의 일생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하늘은 미치게 아름답고 아름다울 것이다.
하늘은 매일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인생에 기억에 남는 하늘은 그리 많지 않다. 첫 번째 내게 기억에 남는 하늘은 17살 하교 시간에 비가 마친 뒤에 보았던 하늘이었다. 하늘 위에 빠르게 움직이는 뭉게구름 사이로 분홍색, 주황색, 연보라색, 다홍색들의 향현이 펼쳐져 비에 젖은 운동장에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았다. 첫사랑에 색을 부여한다면 저런 색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두 번째 하늘은 여름날 남해 바다에서 노란 튜브에 둥둥 떠서 본 하늘이었다. 그때도 해 질 녘에 가까워져 있었고, 물에 젖어 조금 추웠지만 바다에 구름이 반사되어 마치 하늘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것을 보려고 여행을 가는 것인가. 바다에 가는 것인가 싶을 정도의 감상이었다. 여행에서의 슬픈 기억은 그때의 하늘이 묻혀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좋았었다.
인생에 기억이 남을 정도의 하늘을 보는 것도 얼마만큼의 공을 들이느냐도 중요하다. 운이 거의 다 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의 일생 동안 그대에게 그리고 또 나에게 몇 개, 기억에 남는 하늘이 펼쳐지기를. 그대도 나도 그곳에 있을 수 있기를. 조금 소망해 본다.
2024년 6월 16일 월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