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7. 꿈에 그리던 달리기
걷기만 하다가 달리기 시작한 지 4달이 넘었다. 중간에 부상으로 달리기를 쉬었던 날을 제외하면 달리는 날은 겨우 30일 정도다. 그래도 나는 나를 달리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왠지 그게 더 멋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오래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릴 적 오래달리기는 일종의 체벌이었다. 체육 시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오래달리기는 어느 날 갑자기 체력장을 한다며 운동장을 몇 바퀴 뛰어야 한다고 공지한다. 그리고 몇 분 안에 달리기를 마쳐야 그게 점수가 된다. 체력이라고 해봤자 등굣길과 하굣길이 전부인 아이들에게 갑자기 운동장을 최소 5바퀴에서 10바퀴를 돌라고 한다. 그렇게 무리해서 달리기를 하고 며칠은 근육통 앓이를 한다. 그렇게 오래달리기는 싫어하는 운동이 되었다.
오래달리기는 그냥 운동장을 도는 거로 생각했지 제대로 된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어느 정도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달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러닝용 신발이 아니어서 엄지발가락에 무리가 가고 금방 염증이 생겼다. 의사가 엄지발가락 끝을 바늘로 찔러보면 '여기서도 농이 나오면 심한 건데' 하면서 바깥쪽에서 바늘을 찔러보더니 (정말 아팠다) '에고, 여기도 곪았네요. 농이 다 나와야 해서 아프더라도 참으세요.' 하면서 발가락 끝을 쥐어짤 때가 아직 생각난다.
그렇다. 러닝을 위해서는 내 발 모양에 잘 맞는 신발이 필요하다. 러닝을 하면 발이 붓고, 열이 나기 때문에 통풍도 좋아야 하고, 발바닥 근육이 단련이 안 된 초보 러너를 위해서는 쿠션이 좋은 러닝화가 필요하다. 게다가 나는 족저근막염을 앓은 적이 있어서 꽤 푹신하고 두꺼운 밑창의 러닝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발볼이 넓은 편이라 개구리 발처럼 발가락이 자유자재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러닝화기 필수였는데, 그냥 집에 있는 발에 너무 꼭 맞는 운동화를 신고 뛰다가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발가락이 다 낫고 나서는 어깨가 아파서 또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달리다가 어깨 아파서 병원 오시는 분은 또 오랜만이네요.'라고 웃으셨다. 팔을 흔드는 자세와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게다가 몸에 근육이 다 빠진 상태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다 보니 체지방 감량에는 도움이 되지만, 달리기하면서 가해지는 충격을 몸이 버텨내지 못했다. 달리기할 때도, 등산할 때도 근육 운동이 필수였다. 부랴부랴 집에서 거울을 보며 스쿼트라도 해본다. 오늘은 40개만 했는데도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리가 아프다. 내일은 50개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해두고 까먹는다. 이래서 개인 PT를 받는구나. 내 몸도 먹는 것만큼 사랑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망가진다. 그게 대자연의 이치라고 몇천 년 전의 철학자들이 그렇게 말했더라.
요즘은 옛 성인들의 기록을 읽는데 푹 빠져있다. 몇천 년 전에도 허리 아파서 고생하고, 서두르다가 발을 헛디디고, 뭔가를 놔두고 와서 몇 십리 길을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때는 모두가 러너였을까?
러너라는 말은 멋지다. ‘러너’라는 말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고 있는 자기를 보살피는데 충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예전부터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공원을 뛰는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만 하고 왜 직접 달려볼 생각을 안 했을까? 왜 내 몸을 아낄 생각을 안 했을까? 이렇게나 후회하다가 또 후회하면 뭐 하나 하는 생각에 스쿼트와 팔굽혀펴기 하나라도 더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그런 달리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멀고 또 멀다.
2024년 5월 27일 월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