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9. 매미의 계절
※ 참고: 매미 사진 없음.
여느 때처럼 해가 질 때를 기다려 한강으로 가는 길이었다. 길 한가운데 떨어진 죽은 벌레가 신경이 쓰여서 발로 슬쩍 차서 길 안쪽으로 밀었다. 그때 그것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쭈그리고 앉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매미가 되려는 유충이었다. 약간 연한 연두색을 띠고 있었는데 우화羽化하려는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았다. 바닥에 뒤집어진 채 기운을 잃어가다가 성장기가 먼저 찾아온 것이었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구해 뒤집어진 유충에게 가지고 가니 나뭇가지를 움켜쥐었다. 화단에 유충을 바로 일으켜 주었다. 우화하려는 매미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호기심과 놀라움이 휩싸였다. 과학책을 즐겨보는 10살의 내가 된 기분이었다. 매미는 나무줄기에 단단히 매달려서 껍질을 벗고 날개를 펼치겠지. 관찰 일기를 찍어볼까 하다가 껍질을 벗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 걸 알기에 다시 달리러 갔다. 돌아오면서 살펴보면 될 일이었다. 매미는 매미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하면 되니까.
‘매미가 나오는 시기구나.’
어떤 때는 매미 우는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시간은 나의 태도를 바꾸는 마법을 지녔다. 달리는 동안 매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땅속에서의 몇 년과 땅 위에서의 며칠. 땅 위에서의 며칠을 위해 땅속에서의 몇 년을 견뎌내는 것이겠지. 견뎌낸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정정한다. 땅속에서도 재밌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땅 위의 며칠보다 땅속에서의 몇 년이 더 길 테니까. 그럼에도 땅 위에서 매미의 며칠이 더 찬란한 까닭은 무엇일까.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매미 유충이 뒤집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개미 몇 마리가 매미를 덮치고 있었다. ‘개미는 매미의 천척이구나’ 나뭇가지를 주워 유충을 태운 다음 낮은 돌 위에 두었더니 계속 보도블록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다시 유충을 나뭇가지에 태워 제법 그럴듯한 나무에 유충을 올려주었다. 매미가 되기도 전에 실패하는 생生들이 훨씬 많겠거니 생각하니 시무룩해진다.
아까 구한 매미 유충이 생각나서 다시 그 자리로 가보았다. 아뿔싸 개미 떼가 우화 중인 매미 유충을 휘감고 있었다. 우화 중에 개미한테 습격당한 듯 날개는 연두색을 띠고 펼쳐지지 못한 채 접혀 있었다. 매미를 이리저리 굴려 개미를 떼어내고 개미가 없을 법한 돌 위에 올려두었다. ‘아마 우화를 마치지 못한 매미는 내일이 오기 전에 죽었을 테고, 경비 아저씨는 돌 위에 있는 매미를 쓸어내겠지.’ 하는 생각으로 자리를 떠났다. 오는 길에는 죽은 매미 성충을 둘러싼 개미 무리를 보았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생은 억지로 떠먹여지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는 소설 속 대사가 맴돌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싫어하지만, 이건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 안쓰러움인지, 동정인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 없었다. 아직 나는, 날개 달린 매미가 되어 울지 못하고 있다는 동질감인 것 같기도 했다. 한여름의 매미가 되길 포기하고 살아가는 누군가가, 그리고 완성되지 못하는 생이 훨씬 많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만드는 외출이었다.
나에게 30일 동안 ‘괜찮은’ 어른으로 살 수 있는 날을 준다면 정말 바쁘지 않을까. 그래서 매미가 그렇게 시끄럽게 우나보다.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기 위해 매미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나무뿌리와 줄기의 수액을 먹고 사는 매미는 나무에는 유해한 생물이었다. 게다가 토익 시험을 치고 있는 사람에게도 상당히 위협적이다. 밤에도 밝은 조명 때문에 낮인 줄 착각하고 울기도 해 여름밤 불면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천적이 많지만, 큰 덩치 덕분에 유리한 점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과학적인 기록물을 읽으면 문과적 감성에서 살짝 멀어져서 오히려 다행이랄까, 빈 답안지를 제출하는 느낌이랄까.
나에 대해서도 몇 줄의 글로 설명할 수 있겠다.
“20세기 말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기혼 여성. 글을 쓰고 읽는 것,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직 그것으로는 크게 성취한 바는 전무함.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나 현재는 폭염으로 쉬고 있음. 매미가 울지 않는 시기가 오면 다시 달릴 것으로 사료思料됨. 휴休닝(러닝을 쉰다)은 있어도 절絶닝(러닝을 끊는다)은 없기를.”
2024년 7월 10일 수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