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10. 7개의 달이 떴네
동쪽 하늘 그러니까 한강의 상류 방향에서 허여멀건한 달이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루비처럼 붉은 달이 떠오르곤 해서 한강에 산책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묶어놓곤 한다. 고대에도 항상 그 자리 있었던 달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을 때는 달과 관련한 무서운 꿈을 꾸곤 했다. 구미호라든지, 사냥개와 호랑이, 늑대 인간과 드라큘라 같은 것들. 한밤에 가장 빛나고 밝은 것 중 하나가 달이었을 텐데 낭만에 젖은 달만큼이나 공포의 상징인 달이 왜 그렇게 많을까. 밤에 나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을까?
의미나 상징을 빼고 지금 밤하늘의 달만 보면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도시의 조명을 이기고 존재감을 발산하는 거대한 자연유산에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강원도 경포대 오르면 다섯 개의 달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희고 선명한 하늘의 달, 둘째는 아른거리는 경포 호수의 달, 셋째는 일렁이는 동녘 바다의 달, 넷째는 술잔에 담긴 달, 마지막은 님의 눈에 비친 달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故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두 개의 달이 더 있다고 알려주었다. 님의 눈에 비친 달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고,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여기 마음에 있다고.** 그러니까 한강에도 적어도 다섯 개의 달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늘 위에 하나, 한강에 둘, 러너의 눈동자에 셋과 넷, 러너의 마음에 다섯. 이렇게 달이 뜬 날은 다섯 개의 달을 짊어지고 달린다.
어느 날은 보름달이 되기 전 아쉬운 모양이라서 내일 달 뜨는 시각을 알아뒀다가 일찍 나와야지 하고 선 늘 달리기를 시작하는 서쪽이 아닌 달이 뜨는 동쪽 편으로 달려갔다. 멀리서도 보이는 건물 사이의 구름의 움집에 먼저 서글퍼지는 마음. 혹시나 하고 저쪽 다리 밑까지 자리를 옮겨보지만 커다란 구름이 작디작은 달을 가리고 말았다. 오늘의 달은 몇 시간 동안 없을 예정이다. 구름이 없었다면 저 빌딩보다 커다랗고, 저 조명보다 붉은 달을 보며 감탄에 젖었겠지...
감탄에 젖는다는 것은 오늘의 내가 얼마나 작은지 또 깨닫는다는 것이고, 이 땅 위의 것의 아름다움이 하늘의 저 거대한 돌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내 마음에 밝히는 것. 그 속에서 또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겠지... 숨이 가쁘다.
내 달리기의 우선 목표는 30분을 쉬지 않고 뛰어보는 것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올해 안에는 달성하기를 바라며 더운 여름이 얼른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여름이 지나가길 고대해 본 것은 이번 여름이 처음이다. 다만, 9월이 와도 여전히 여름일 것 같고, 9월이 되어서야 예전의 여름을 체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9월이 기다려진다. 게다가 겨울에 달리기는 해본 적이 없어서 더 학수고대하는 것도 있다. 수영장의 '찐'이 겨울에 있듯이 '찐' 러너도 겨울에 있는 것만 같다. 칼바람을 마주하고 달리는 사람들을 그전에는 유심히 본 적이 없다. 방한 러너 용품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려나... 벌써 겨울 아이템에 관심이 간다. 아직 여름이 한창인데 겨울 달리기를 준비하는 걸 보면 지금까지 먹은 나이가 아깝다.
구름을 앞지르지 않으면 달을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름에게 자비를 구하는 듯이 달에게 달려간다. 또 어떻게 달리면 구름을 앞지를 수 있을 것 같은 발걸음, 서울 한 바퀴를 다 돌아도 결국 보지 못한 달인 걸 알면서도 달에게 매달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 애써 달이라도 보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 같은 마음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추신. 이 더운 날에도 달과 함께 더위를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쪼록 무탈한 러닝 되시길 바란다.
*트래블투데이 traveli.co.kr
**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수오서재, 2016
2024년 5월 24일 금요일에 발견한 이야기.
※ 밀리로드에서 동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