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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Sep 13. 2023

2002년 뉴욕과 인연을 맺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곳, 뉴욕


부제- 뒤늦은 미국 여행기 1-2002년 뉴욕과 인연을 맺다.

 지금은 과거가 되었지만 난 한때 중학교 영어교사였다. 영어 문법과 독해를 열심히 배웠는데 내가 교사가 되어 가르칠 때쯤엔 그동안 배운 문법과 독해는 아무 쓸모없고 듣기와 말하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막 강조하기 시작한 때였다. 늦은 나이에, 언어학적으로는 이미 언어를 배우기엔 뇌가 굳어버렸다고 하던 시점에 말하기 듣기를 배우고 가르치느라 엄청 힘들었고 내가 왜 좋아하지도 않는 영어를 전공해서 그런 고생을 하는가 후회막급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좋고 나쁜 것은 항상 같이 온다고 듣기 말하기를 현지에 가서 배우고 오라면서 방학이면 한 달씩 영어권 국가로 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2002년 여름 나도 50명 중의 한 명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미국과 호주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미국을 선택했고 연수 장소는 미국 동부 뉴저지주에 있는 러커스 대학이었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라는 드라마에서 남주인공을 맡았던 차인표 씨가 다녔던 대학으로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어서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여행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신기함 그 자체였다. 난 신혼여행 때 제주도 가면서 탔던 비행기 말고는 장거리로는 처음 타는 비행기여서 가방을 꾸릴 때 짐의 무게가 제한된다는 것도 몰랐다. 연수받으러 가니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줄 알고 겨우 한 달 가면서 몇 년씩 유학이나 가는 것처럼 책을 많이 싸서 짐의 무게가 30kg 가까이 되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어림없지만 그때는 사정하면 그냥 통과해주기도 했었다. 그 무거운 가방에 들어있던 책은 연수기간 내내 한 페이지도 열어보지 않은 것은 안 비밀이다. 나라마다 시차가 다르다는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여기서 일요일 낮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다시 일요일이었던 것도 그저 신기했다. 내가 쿨쿨 자고 있을 때 여기 사람들은 쌩쌩하게 일하고 걸어 다녔다는 거지 싶으니 참 기분이 묘했다. 연수장소인 러커스대학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의 놀라움도 지금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가 배정받았던 기숙사의 시설은 엄청 낡았고 그 더운 여름에 선풍기도 없어서 푹푹 찌는 듯한 더위를 온몸으로 겪었다. '미국이 선진국 맞아?' 하던 순간 강의실과 도서관은 최신식 시설에 에어컨 바람은 마치 남극의 바람처럼 서늘해서 우리끼리 학생들 보고 기숙사에 있지 말고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라고 일부러 기숙사를 덥게 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무튼 이래저래 새롭고 신기한 것 투성이던 그곳에서 가장 신기하고 별천지였던 것은 맨해튼이었다. 9시부터 시작한 수업은 오후 2시면 끝났고 수업받던 건물에서 냅다 20분쯤 뛰어가면 2시 25분에 맨해튼 33번가에 있는 Penn Station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끝나는 종이 쳐도 수업을 끝내주지 않는 교수님은 우리 모두의 눈총을 양껏 받았을  정도로 2시에 끝나는 수업이 정시에 끝나는 것은 너무 중요했다. 25분 출발 기차를 못 타면 1시간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Penn 역에 내려 맨해튼 거리로 나가면 대충 4시, 그때부터 밤 10시, 11시까지 거리거리를 쏘다니며 즐겼던 기억은 내 인생에 가장 Hot한 기억 중의 하나로 남았고 한 달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벌써 뉴욕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꼭 다시 오리라고 다짐하며 왔었다. 그때는 모든 게 처음이어서 너무나 미숙했고 서툴렀고 촌스러웠지만 그때의 모든 경험들이 내겐 너무도 소중한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다.

Met에서 봤던 수많은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잊지 못하고 그 후로 꾸준히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고 전시회를 찾아보곤 했다. 비록 졸면서 보긴 했지만(앞으로 뮤지컬 관람기도 따로 쓸 예정이다) 오페라의 우령, 레미제라블을 보고 너무도 황홀했던 기억을 갖게 되었고 가끔은 우울할 때 그때의 기억을 곱씹으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때 맨해튼을 쏘다니며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내 경제적인 소비의 최우선순위를 여행에 두고 있다. 은행원과 교사였던 우리 부부에게 재벌은 아니어도 준재벌쯤은 되는 거 아니냐고, 둘이 벌어서 꽤 돈을 모았겠다고 말하는 지인들이 있는데 아이들 어학연수 보내고 방학이면 여행 다니느라 모아둔 돈이 없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20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언젠가는 꼭 뉴욕에 다시 가야지 하는 생각을 수시로 했었고 올 4월 드디어 뉴욕에 다시 가게 되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두 번이나 변할 만큼 긴 세월이 흐르고 간 뉴욕은, 아니 맨해튼은 여전히 날 설레게 했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맨해튼에서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나에게는 떠나면서 그리운 도시가 몇 곳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영이 그렇고 물건너에 선 뉴욕, 파리, 이스탄불이 그렇다. 21년 전에 처음 인연을 맺었던 뉴욕 맨해튼은 기회가 되면 반드시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이 글을 올리려고 그때 사진을 찾아보니 20년 전인데도 몇 장면들은 생생히 기억난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미술책에서나 보던 고흐, 르느와르, 몬드리안, 드가 등의 그림을 실물로 영접하고 눈을 떼지 못했던 일이며 스토리 위주의 뮤지컬이었던 레미제라블을 보며 절반 이상은 졸았던 일등이 떠오른다. 아, 헤밍웨이가 앉아서 글을 썼던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던 일도 있었지. 무엇보다 20년전 30대였던 내 모습을 보니 낯설다. 

 미국에 가기 전에 20년전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그때 갔던 장소에 가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다음 기회에 또 가게 되면 한 번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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