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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Oct 30. 2023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며

프롤르그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화학시간, 쉉그날따라 선생님께서 조금 늦게 들어오셨다. 선생님께서 들어와 계셔도 수업을 시작할 때 까지는 웅성웅성, 재잘재잘 시끄러운 교실이 당연히 조용해질리가 없었다. 50명도 넘는 말만한 처녀들의 수다를 그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한 5분인가 10분쯤 뒤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는 화가 잔뜩 나셔서 떠든 것에 대한 벌이라며 과학관련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셨다. 그것도 다음 시간까지. 

 나름 모범생이었던 나는 숙제를 하기 위해 읽을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그날 밤을 새워 읽고 다음 날은 또 저녁 늦게 까지 독후감을 써서 이틀 뒤에 숙제를 낼 수 있었다. 반 친구들 절반 정도는 숙제를 안 냈던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도 홧김에 내신 거라 그랬는지 숙제를 내지 않은 애들한테 별다른 후속 조처는 하지 않았고 이틀간 그 숙제때문에 노심초사 했던 것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무슨 내용의 책이었는지 제목 조차도 기억 나지 않지만 어떻게 글을 썼는지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 당시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나는 나만의 이름을 따로 지어 어쩌다 한번씩 일기를 쓸 때 그 이름을 적어놓고 마치 살아있는 친구에게 쓰는 양 그날 그날 있었던 일도 적고 나의 감정 상태도 적곤 했었다. 내가 고른 과학 관련 책에 관한 독후감을 쓸 때도 그렇게 썼던 것 같다. 

은비야,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데 블라블라, 읽다보니 정말 시기한 내용이 있더라 블라블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내가 그런 숙제를 냈는지도 생각 안 날 만큼 시간이 지난 어느날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안 지났을 수도 있다. 그땐 공부할 것도 많고 내야 할 숙제도 많았던 때라 오래 전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화학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지난번에 쓴 독후감을 읽어보니 글을 참 잘 썼다며 앞으로도 당신이 쓰라고 하는 글을 좀 써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왜 내 글을 보고 잘 썼다고 하시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공부하기도 바쁜데 언제 글을 쓰라는 건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하고 교무실을 나왔지만 그때부터 무슨 체증이라도 시작되는 듯한 부담감이 생겼다. 그 뒤로 한번씩 부르셔서 '추석', '운동회' 등등 글감을 주셨지만 당연히 한 글자도 못썼고 별다른 수확이 없어서인지 더 이상 그걸로 부르시진 않았다. 다 잊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저런 주제들이 생각나지 싶지만 웬지 번뜩 생각이 난다. 

 나는 피한다고 피했지만 혹시 그때 부터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숨어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고 글쓰기 온라인 연수 참여, 오프라인 연수 참여, 100일 글쓰기 활동을 했고 몇년 전에는 어떤 싸이트의 '365글쓰기'에 참여해 매일매일 뭐라도 쓰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딱히 글쓰는 솜씨가 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매일 글쓰기를 하고 나면 웬지 뿌듯하고 인생을 조금은 제대로 사는 것 같았다. 나 스스로 힐링이 되고 살면서 알게 모르게 받는 상처들이 낫고 새 살이 돋는 느낌을 받는다고나 할까? 그래서 다시 시작 해보려고 한다. 매일 글쓰기. 연재라는 의무가 있으면 잘 되지 않을까 싶어 일단 시작하고 어찌어찌 끌어가 볼 계획이다. Just do it! 

  글의 주제는 따로 없다. 그냥 매일 한편씩 쓰는 데 의미를 두고 이미 쓴 글을 다듬기도 하고 그때 그때 사건이나 감정의 증폭, 때로는 누군가랑 나눈 대화를 그대로 복사해서 올려 볼까도 한다. 혹시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이 정도 글이면 나도 쓰겠다' 라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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