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렇게 살아요?

by 로엘라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일 때마다 통과의례처럼 드는 생각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이게 가능한 삶이라고? “


스물일곱 처음 취업했을 때, 취업 준비 기간이 그렇게 길었는데도 기쁨보다는 앞으로 정년퇴직 전까지 일만 해야 한다는 것에 뜨악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직장인들은 이미 그렇게 다들 산다는 거였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새삼 내 일이 되면 막상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나는 못하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자연스레 척척 잘 해내고 있는 거지 싶었다.


주 52시간 근무가 지켜지지 않던 시절, 서로의 다크서클을 걱정하며 밤 열두 시에 똑같이 퇴근을 해도 아침 풍경은 서로 달랐다. 옆자리 선배는 늘 단정했다. 어깨가 다 젖도록 머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헐레벌떡 출근시간에 맞추던 나와 달랐다. 반듯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휴지를 펼쳐놓고 연필을 뾰족하게 깎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제 나처럼 축 늘어져 퇴근한 사람이 맞나 싶기도 했다. 사무실의 일은 나 혼자 다 하는 것처럼 뚝딱거리던 시절이었다. 결국 나는 8년 차에 퇴사를 했다. 못 해냈다.


취업보다 훨씬 놀랍고 충격적인 세계가 바로 출산과 육아다. 의료파업 중일 때라 마취과 인력 부족으로 자연분만을 하더라도 무통주사를 놔줄 수 없다고 했다. 쌩으로 낳아야 하다니... 자연분만의 고통은 몇 번쯤 들은 적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왕절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별로 안 아파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나?’ 고민할 것도 없이 수술날짜를 잡았다. 긴장감도 없었다. 그리고 수술하고 눈을 뜨고 나서야 어김없이 이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했다고? 이렇게 아픈걸 왜 아무도 말 안 해준 거지?”


남들 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을 나만 혼자서 요란스럽게 겨우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의 유약함을 마주하며 좌절했다. 그저 나의 성격이라고 해맑게 넘기기엔 이제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데… 하면서도 너무 아파서 병실 침대에 누워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엉엉 아파~ 너무 아프다고~ 흐엉엉~”


유약하긴 해도 고민이 깊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퇴원할 무렵엔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 결론지었다. 5박 6일 퇴원할 때쯤이면 ‘하나 정도는 더 낳을 수 있겠는데?’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육아였다.


“진짜 다 이렇게 산다고? 정말 이렇게 힘들게? ”라는 생각을 이제는 하루 걸러 한 번씩, 거의 매일 하고 산다.


다들 힘들지만 버티는지 아니면 정말로 즐기는지 알 겨를이 없다. 인터넷 맘카페에선 다들 힘들다고 우는데 밖에서 실제로 보는 엄마들은 하나같이 평온하고 인자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집은 언제나 정리정돈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남들 눈엔 저렇게 보이려나?’ 그러고 보니 나도 연우와 밖에 나가서 힘든 내색을 보인적은 없었다. 오히려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보다 더 인자한 표정으로 연우를 바라봤던 것 같다. 거실바닥은 엉망진창에 싱크대에 먹고 치운 그릇들이 탑을 쌓아도 밖에선 모를 일이다.


놀라운 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찌어찌 찌그덕거리며 나도 해내고 있다는 거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 준비를 하고 그날 아이가 먹을 간식과 저녁을 싸둔다. 퇴근 후엔 아이를 씻기고 재운다. 아이가 잠들면 밀린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한다. 저녁을 거르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열한 시쯤 끝나는 일과다. 시간이 남으면 장보기 어플로 식재료도 사고 핫딜이 뜰 때까지 기다렸다 물티슈와 기저귀를 산다. 아이가 먹을 식재료도 손질해야지. 안방에 제습제도 바꿔야 하고 옷장 정리도 해야 하는데.. 아이와 관련이 없는 거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흐린 눈을 한다.


누가 깨우지만 않는다면 17시간은 거뜬히도 자던 나였다. 요즘 나의 평균 수면시간이 다섯 시간은 될까. 여전히 밥보다 잠을 택하고 있지만 이제는 잠보다 연우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이제는 아기가 잉- 소리만 내도 벌떡 일어나 연우방으로 기어들어가 함께 잠을 청한다. 출산 전부터 아이와 분리수면을 다짐했건만, 요즘은 연우가 아니라 남편과 분리수면 중이다.


육아에 지쳐 오히려 회사에서 쉬다 간다는 워킹맘들을 볼 때마다 짠한 눈빛을 보냈다.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나도 어쩐지 그 비슷한 눈빛을 받는다. 날이 좋으면 그나마 낫다. 비 오는 날은 내가 봐도 내가 처량하다. 어린이집 가방을 거북이 등딱지처럼 등에 달고, 어깨엔 내 가방을 멘다. 그리고 한 손엔 우산을, 다른 한 손으론 연우를 번쩍 안아 든다. 낮잠 이불까지 달려오는 금요날 날 비가 온다면 남은 어깨 한쪽마저 빌 틈이 없다. 그런 적이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오히려 실성한 듯 웃음만 났다.


그런데 엄마가 되면 강해진다더니 나도 이제 좀 센캐가 된 걸까. 생각보다 할 만하다. 그래서 오늘도 한다.

그런데, 내일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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