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연우를 사랑해

by 로엘라

Hush, little baby, don't say a word,

Mama's gonna buy you a mockingbird.


연우를 재울 때면 늘 자장가 hush little baby를 부른다. 몇 번을 불러도 꺄르륵 웃기만 하고 도무지 잠들 기미가 없으면, 같은 멜로디에 내 마음대로 가사만 바꿔 흥얼거린다.


엄마는 연우를 사랑해. 연우도 엄마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부터 시작해서 온 가족이 등장하는 데다 어린이집 친구와 선생님까지 다 나온다. 가사는 단순해도 등장인물이 많아 나름 긴 호흡이 필요한 자장가다. 연우가 잠들 때까지 반복해서 불러주는데 그럴 때면 ‘할아버지’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날이 있다. 어제가 그랬다. 자장가를 부르며 친할아버지가 연우와 놀아주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문득 슬퍼졌기 때문이다.


연우는 친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나도 직접 뵌 적은 없다.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뵈었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사드리고 싶어 용기 내어 찾아갔는데, 지금도 그 선택이 참 고맙다.


암 투병 중이시던 아버님은 생전에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한번 없을 정도로 선비 같은 분이라 했다. 그런 분이 중환자실에 누워 ‘나는 며느리도 손주도 없다’며 옆 병상에 찾아오는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셨다는 이야기는 어머님께 스무 번은 더 들은 것 같다. 그 때문일까, 이렇게 가끔 아버님 생각이 난다.


어머님을 만나면 식사는커녕 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않으신다. 그 대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연우를 바쁘게 쫓으며 어떻게 안아볼까 기회만 엿보신다. 이미 천방지축인 연우가 쉽게 안길리 없다. 그래도 갓 잡은 연어처럼 힘 좋게 팔딱이는 아이를 잠깐이나마 겨우 안아보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활짝 웃으신다. 이제 막 뽀뽀하는 법을 배운 연우가 할머니에게 침 묻힌 입술로 아- 벌리며 할머니 뺨에 입을 맞추니 소녀처럼 까르륵 웃음소리가 터진다. 아기를 안 좋아해서 어린 조카들도 안아준 적 없다던 어머님이다. 그럼 아기를 그렇게 예뻐하셨다는 아버님은 연우의 볼뽀뽀를 받으면 어떤 웃음소리를 들려주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연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아니 초음파 사진을 봤을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아빠 판박이라 했다. 내 친구들이 아빠만 쏙 빼닮아서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연우의 개구진 표정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남편의 어린 모습이 겹쳐 보일 때에도 아버님 생각이 난다. 자기 아들을 똑 닮은 손주라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지금의 우리처럼 그 시절 젊은 아빠가 아들에게 쏟은 어설픈 사랑이 미안해서, 연우에게는 훨씬 더 노련한 사랑을 보여주셨을 거다. 남편이 고등학생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손 편지를 써주셨다는 아버님이라면 연우에게는 그 다정함이 곱절은 되었겠지. 사랑하는 아들이 낳은, 사랑하는 아들이라니. 어머님의 말을 빌리자면 아들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을 거다.


얼마 전 상주가 된 친구가 펑펑 울며 말했다. “손녀 예쁜 모습 볼 날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데 왜 이렇게 빨리 가셨을까. “ 친구 아버지의 발인 날 저녁, 손녀는 거기서 첫걸음마를 떼었다. 커가는 모습을 미처 다 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친구 아버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도 조용히 저려온다. 그래도 그분은 손녀를 직접 품에 안아보셨지. 안타까운 마음의 반대편에선 부러움도 든다.


연우가 쉬이 잠들지 않으니 할아버지라는 단어에 자꾸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할아버지는 연우를 사랑해. 연우도 할아버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한번 더 자장가를 부르며 연우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전한다.


연우를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셔. 지금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 앞으로도 많이 보여드리자.


Grandfather’s Visit, Leopold Loeff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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