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아빠는 아이가 결혼하는 상상만으로도 울컥한다는데, 아들 엄마인 나는 연우가 군대 가는 상상만 해도 울컥한다.
지금 떡뻥을 쥐던 손으로 언젠가는 진짜 총을 쥐고 서 있겠지. 요 쥐콩만한 게 대한민국을 지킨다니, 아무리 상상해도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배냇머리를 밀던 날, 연우가 샛노란 미용 가운을 두르고 아빠 무릎 위에 앉았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맞은편 거울 속 자신이 신기한지 한참 구경하는데 별안간 바리깡을 쥔 손이 머리의 정중앙을 가로지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바리깡이 지나간 자리마다 맨들 해지는 머리통이 수묵화처럼 점점 붉은빛으로 짙게 번진다.
작은 모터가 빠르게 돌아가는 소리, 머리에 닿은 차가운 촉감이 싫은지 아기 눈썹에 힘이 들어가며 금세 얼굴이 구겨진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못난이 인형의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인다. 울음을 눈치챈 남편이 아이의 두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달랜다. 아기는 금방 그쳤지만 우는 표정을 짓느라 아기 볼이 물풍선처럼 길게 처졌다. 말랑한 볼이 만지기 좋은지 남편이 슬라임을 주무르듯 조물딱거린다.
나풀거리던 연우의 배냇머리는 어느새 바닥에 나뒹굴고, 거울 앞엔 귀여운 동자승이 아빠 무릎 위에 앉아있다. 아기는 쉴 새 없이 어루만지는 아빠와 조잘대는 엄마 때문에 우는 타이밍도 놓쳤다. 이십 년 뒤에 연우는 두 번째 까까머리를 하겠지. 마음 같아선 그때도 똑같이 무릎 위에 앉혀두고, 앞에 서서 ‘우르르~ 까꿍!’을 외치고 싶다. 스무 살 연우는 질색팔색 하겠지. 훈련소 가기 전날까지도 빡빡이가 되기 싫어 잠들 때마다 발로 이불을 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나 역시 연우를 보내기 싫어 똑같이 발로 이불을 차고 있을지도.
‘필승!’을 외치며 경례를 하고, 군가를 부르고, 군장을 메고 행군하는 모습. 아직은 장면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유치원을 보내고, 태권도장을 보내고, 1박 2일 수련회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적응하게 될까. 엄마 품을 떠나 결국엔 군대로, 사회로,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곁으로 보내야 하는 아이.
벌써부터 마음이 아쉬워 연우를 품 안에만 붙들어두고 싶다. 하지만 연우는 이런 엄마 마음도 모르고 자꾸만 멀어져 간다. 잠깐을 안으려 해도 발버둥 치기 바쁘다. 이제는 졸릴 때나 무언가 필요할 때만 엄마 품을 찾는다. 졸려서 엄마 몸을 타 넘으며 치댈 때는 그렇게 귀찮더니, 언젠가 떠나는 걸 생각하면 마르고 닳도록 안아주고 싶다.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힘껏 잡아당기면 다시 돌아오는 요요처럼, 언제까지나 엄마 허리춤에 묶어두고 싶다.
아니, 연우는 더 넓은 곳으로 가야지. 그땐 허리춤에 묶었던 줄을 기쁜 마음으로 풀어야지.
나는 여전히, 줄을 만지작거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