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랑은 늘 물음표였다. 사랑하는 거는 같은데 어쩐지 확신이 없었다. 대체로 다정했지만 사랑한다면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아빠는 스스럼없이 했다. 본인 감정이 상하면 다짜고짜 큰 소리부터 치는 바람에 아빠와 있으면 언제 폭발할지 몰라 늘 긴장되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다고 하니 아빠도 그렇겠지 하고 대충 어림잡아 추측했다. 더 알려고 하면 사실이 아닐까 봐 두렵기도 했다.
아빠의 사랑도 엄마처럼 부드럽고 따뜻했으면 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아빠는 자주 욱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들 눈에 비친 아빠는 “우리 공주~”를 외치는 딸바보였지만, 내가 본 아빠는 화가 나면 식탁 위로 숟가락을 내던지던 사람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밥상 정도는 뒤엎어야 경상도 아빠지’ 하며 여전히 아빠를 딸바보라고 믿었다.
나만 보지 못했던, 나만 끝내 알 수 없었던 아빠의 사랑.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게 늘 궁금했지만 끝내 보지 못한 채 사춘기를 지났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확신했다. 아빠의 사랑은 엄마의 것에 비하면 훨씬 작고, 보잘것없다고. 말이 없고 화부터 내는 아빠는 엄마처럼 나를 보듬지도 않았고 속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았다. 나는 보지 못했고 아빠는 말하지 않았다.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였다. 어른, 그것도 남자 어른들이 가득한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에게 사랑은 다정함과 동의어였다. 반면, 5,60년대생 가장들에게 사랑의 다른 이름은 책임감이었다.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늘 아빠에게 완전무결한 사랑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면, 그건 내가 품고 있던 유아기의 환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리 채프먼 박사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다섯 가지 언어가 있다고 했다. 다정한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희생, 스킨십. 나는 다정한 말과 함께하는 시간을 원했지만, 아빠는 늘 책임과 희생으로 사랑을 표현해 왔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몰랐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어느 하나 사랑이 아닌 것이 없구나.’ 연우가 처음 태어났을 땐 매일 청소하느라 바빴고 조금 지나서는 아기 피부에 집착했다. 지금은 안전에 제일 신경 쓴다.
엄마들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아이가 먹는 모든 음식은 직접 요리해서 준비하는 엄마. 음식은 사서 먹이더라도 매일 산책하고 문화센터를 다니며 놀아주는 엄마. 워킹맘이지만 함께 하는 평일 한 시간만큼은 꼭 안아주고 뽀뽀해 주는 엄마.
아빠도 사실 사랑의 언어는 계속 바뀌었었다. 내가 제대로 듣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일상에서 아빠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기념일이나 여행지에서만큼은 추억이 많았다.
우리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 일 년에 몇 번쯤은 ‘애플 경양식’에 가서 외식을 했다. 후추 뿌린 수프와 우리 자매가 눈사람빵이라 부르던 모닝빵과 딸기잼, 돈가스 위에 뿌려진 사과 소스, 부모님의 밝은 표정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한 번뿐이었지만 깊은 밤에도 대낮처럼 밝은 레스토랑에서 아빠가 사준 길리안 초콜릿도 생각이 난다. 어린 입맛에도 고급진 맛을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어 하루 한 알씩 아껴 먹었다. 그 이듬해엔 크리스마스 선물로 똘똘이 인형도 하나씩 받았다.
여름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는 건 우리가 수험생이던 고3까지 계속되었다. 그 해엔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포항에서 번지점프도 했다. 물론, 아빠 빼고. 제주도에 갔을 때도 아빠는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다음은 어디가노’를 외쳤다. 그때는 몰랐다. 아빠가 여행보다, 여행을 위해 가족을 태우고 달리는 그 시간 자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 아빠의 방식이었다는 걸.
아빠의 사랑은 단지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것일 뿐, 실제로는 아주 구체적인 순간마다 존재했다. 사춘기 때부터 사회 초년기까지 아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흘려보낸 시간이 못내 아쉽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사랑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사랑이었을 뿐이다.
나는 연우에게 다정한 말과 일관된 태도로 사랑을 전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말이 없이도 온전히 닿도록, 스킨십과 시간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사랑은 숨기거나 추측하게 만드는 감정보다, 함께 웃고 기대게 만드는 감정이길 바란다. 나는 연우에게 그런 사랑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렴풋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것이 사랑이라고 안심시켜 주는 따뜻하고 분명한 언어로.